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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발견

꿈꾸는 세상살이 2015. 8. 31. 07:39

 

 

중년의 발견

 

데이비드 베인브리지/ 이은주 역/ 청림출판/ 2013.11.29/ 317쪽

데이비드 베인브리지 : 수의사로서 리전트 파크의 동물학 연구소와 왕립 수의대, 코넬대, 시드니대, 옥스퍼드대에서 남성과 동물의 임신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임상 수의과 해부학자이며 세인트 캐서린즈 칼리지 인문학부 선임연구원이다.

저서로『X 염색체의 비밀』,『몸 안의 방문객』,『신기한 두뇌 여행』,『10대의 비밀』등이 있다.

이은주 :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영어교육과를 공부하고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에『외로워지는 사람들』,『내 인생 최고의 쇼』,『남자』,『150살까지 살 수 있을까』등이 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죽는다. 그 태어나고 죽음의 사이에서 젖먹이 시절과 어린 아이, 그리고 팔팔한 청년과 아직은 그런대로 쓸만한 중년이 있고 마지막으로 힘없어 소용가치가 적은 노년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이런 이름은 그냥 붙여놓은 것에 지나지 않으며, 사실은 태어나고 죽는 것까지 모든 것이 위대하고 숭고한 일임에 틀림없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문제일 뿐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였다. 이 말은 다른 동물과 달리 사람은 먹고 살면서 종족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것 외에 해야 할 일이 더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말도 사실은 인류가 활동하고 나서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다시 말하면 내가 살고 있는 현세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일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사람 역시 태어나고 죽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며 다른 동물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정의한다. 일반 동물은 혈기가 가장 왕성하고 건장할 때에 종족을 보존하는 일에 최우선을 두며, 이런 일이 끝나면 거의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래서 혈통이 좋은 후세를 얻기 위하여 고르고 고른 짝과 새 생명을 만드는 일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그리고 점차 늙어가면서 쇠약해지면 드디어 뒷그늘에서 쉬며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로 살아간다. 이것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본능 즉 자연의 법칙이며 사람 역시 그 범위를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년이 되어 생식 즉 종족 본능의 힘이 약해진 사람이 갖는 의미는 동물적 삶 외에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라고 본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에 가장 연약한 동물로 태어난다. 그래서 약 20년이 되도록 보호를 받으면서 먹고 양육되어지는 것이다. 이때까지 사람은 제 일을 하지 못하고 종족을 번성하는 일에 몰두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고 나서 중년이 되면 드디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몸은 늙어서 피부가 노화되고, 시력이 떨어지며 청력 또한 약해진다. 더하여 힘은 떨어지며 근육 감소와 함께 비만이 심해지고 각 장기의 역할이 기력을 잃어갈 때에도 정신만은 늙지 않고 살아 있어서 하고 싶은 일이 많으며, 기억 속에서는 아직도 종족 번식이 왕성하던 때를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삶이 바로 중년의 삶이다.

그러면 중년의 삶은 어떻게 하여 이루어질까. 그것은 수수께끼로 아직 다 풀 수 없는 문제이지만,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약 23,000개의 별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데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유전자는 다른 동물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반적인 유전자를 제외하고 사람에게만 있는 특별한 것을 지칭한다. 이 유전자는 인류 역사상 오랜 기간에 걸쳐 진화하면서 만들어졌다고 믿는 것이 우세적인데, 사실 아직도 아메바 단세포 동물이 있고 진화의 완성이라고 하는 사람이 공존하는 것은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가 없는 사항이다. 더구나 아메바와 사람 사이의 수많은 동물의 종류가 존재함으로써 아직도 진화가 되지 못한 아메바는 어떤 아메바일지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론적인 중년의 해석보다는 피조물인 인간적 중년의 해석이 더 어울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특별한 유전자는 사람의 중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언급 정도로 해석하면 좋을 듯하다.

중년의 특징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노화의 한 과정이며, 생식의 마감과 함께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도 하다. 저자는 후자의 것을 부각시켜 처해진 중년을 바로 이해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을 모토로 하고 있다.

인간은 중년이 되면서 벌써 많은 부분에서 퇴화하거나 기능이 상실되었지만 아직도 충분한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이 40이면 불혹이라 하였다. 이제껏 생식 본능을 달성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기존까지의 어떤 유혹에서도 자유롭다는 뜻이다. 이것은 물론 인간의 욕심 특히 성욕과 식욕 등 물질에 대한 욕심이 주를 이루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불혹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도 이제까지와 차별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저자가 얘기하는 중년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책의 제목과 같이 중년의 발견은 곧 현재 일어나고 있는 중년의 생태를 말한다. 육체적인 기능의 저하와 함께 생산적 불리함, 후손과의 결별 등으로 이어지는 시기가 바로 중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동물들과 달리 후손을 생산하지 않는 생식활동을 하며 여전히 자기 가꾸기를 비롯하여 자신을 알리는 일에 열중한다. 그것은 사람이 만물의 영장으로 여타 영장류와 다르며 일반 동물들과 다른 면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사람은 그 전에는 미처 그런 행복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중년 이후에 비로소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하며 그것을 찾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이 일반적인 동물들과 다른 점이며, 동물은 새끼가 독립하여 제 몫을 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어미가 새끼를 밀어내지만 사람은 사춘기에 든 새끼가 어미를 밀어내는 현상이 벌어진다. 그리고 더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부모는 자식을 안고 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위에서 언급한 23,000개의 색다른 염색체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말하는 본질은 사람의 중년을 있는 그대로 알아보자는 것인데, 사실은 중년은 아름다운 것이며, 그렇게 쓰지는 않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말로 귀결된다. 어린 아이들이 보는 중년에 대한 시각과 노인들이 보는 중년에 대한 시각이 다를 수 있지만 그런 것 하나하나를 모두 염두에 둔다면 명확한 판단을 할 수도 없으며 그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중년은 보이는 현상 그래도 보자는 말이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에 중년은 오랜 역사 속에서 발전 해온 즉 진화 해온 결정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중년이라면 노년과 소년은 어떻게 표현해야 옳을까. 그래서 나는 이런 중년의 특징은 진화에 의현 부산물이 아니라 원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현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유로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편에서는 아직도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최초의 동물과 마지막의 동물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은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중년의 특징은 신체의 노화, 가르치고 싶은 욕망, 자기 과시욕, 경제적 안정, 정신적 안정, 우수한 후손을 남기고 싶은 본능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른 동물에서는 볼 수 없는 생식활동 기간 외의 성생활도 빼놓을 수 없는 일부로 포함시켜 설명하고 있다. 어쩌면 상당 부분을 그렇게 강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영국을 바탕으로 하여 조사한 자료와 자신이 접한 문화적 사실을 근거로 작성한 것이므로 우리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중년이 겪는 중년의 특징은 과연 이 책과 똑 같을 것인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의 중년은 아직도 후손을 양육하고 좀 더 완전한 객체로 성장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단계에 있다. 하지만 그런 중년도 사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겪는 물리적 신체적 중년의 과정을 전혀 다르게 겪는 것은 아님을 알아주어야 한다. 다만 우리나라 문화 특성상 겉으로 드러내어 표현하지 못하며 어떤 것은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하지 못한 채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대한민국의 중년은 위기의 세대이다. 이 책처럼 성스럽고 평화로우며 고결한 세대가 아닌 것이다. 한국의 중년은 기러기가 되어야 하고, 비가 오면 어머니의 유언을 따른 대가로 울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아직 졸업도 미루고 있는 자식을 위하여 캥거루아빠가 되어야 하며, 발등에 자식을 얹고 행여 차가운 얼음에 떨어질까 종종걸음을 걷으며 먹을 것도 먹지 못하는 펭귄이기도 하다. 거기에 이런 모든 것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기대했던 직장에서 내몰리는 신세에 지나지 않는다. 나도 예외는 아니며, 너도 피해갈 수 없는 필요조건의 하나이다.

그러면 우리는 중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에게 중년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세월일까. 그도 아니면 영국의 중년과 한국의 중년은 전적으로 다른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중년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