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보아서 좋은 것/익산 00 교회 이야기

예수님이 보고 싶으십니까(누가복음 제17장 1절~7절)

꿈꾸는 세상살이 2015. 10. 29. 12:33

예수님이 보고 싶으십니까(누가복음 제17장 1절~7절)

 

사람들은 혼자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모여 살거나 서로 의지하고 힘을 합하여 살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하여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서로 형제로서 의지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보다 더 힘있는 사람 혹은 권력이 있는 사람을 따르게 되는데 우리 성도들은 믿음이 강한 사람을 따르게 됩니다. 이때 가장 힘 있는 사람은 길 잃은 양을 거두어들이는 목자가 될 것이며, 그보다 더 힘 있는 분은 역시 예수님이실 것은 당연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예수님을 뵙기 원하고, 최소한 예수님을 닮아가기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을 만나면 영육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를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사실 내 힘으로 어쩌고 어쩌는 그런 것이 아니고, 나 외의 어떤 강력한 힘에 의해 벌어지고 연속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뵙고 의지하면 그런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해결 방법이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내 생각이 틀리고 내 생각보다 더 나은 생각이 있을 수 있으며, 그도 아닌 다른 목적을 두고 이루어지는 일련의 과정일 경우에는 그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 다른 목적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즉 내가 원한다고 하여 예수님의 목적을 접어두고 해결해주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왜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 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게 되었는데, 그러면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묵상하고 기도하며 행동으로 실천하는 가운데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삭개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로마에 헌납하는 일을 맡았던 사람이었기에 모두가 싫어했던 것입니다. 거의 모든 세리들은 원래 부과해야 할 세금보다 더 많이 거두어들인 후 정해진 부분은 로마로 보냈지만 남는 부분은 자신의 수익으로 챙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런 세리들을 가장 경멸하는 직업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삭개오 역시 그런 일을 하면서 부자가 되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항상 허전하고 부족한 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돈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무엇에 대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런 삭개오는 예수님이 자기 마을을 지나가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그 무엇인가의 부족함을 채우고 풍요로워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리인 삭개오를 예수님 앞으로 인도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키도 작고 힘도 세지 못했던 삭개오는 나무에 올라가게 됩니다. 사람에 치이고 가려서 예수님을 볼 수 없게 되자, 삭개오는 자신이 뽐내는 세리장으로서의 위엄과 권위를 내던져버리고 돌무화과나무에 올라 드디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그런 삭개오의 정성을 아시고 먼저 삭개오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의 세리 삭개오보다 앞으로의 삭개오 즉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정성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였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방법을 총동원하여 노력하고 기회를 만들 때 드디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오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예수님을 만날만한 때가 되지 못하면 만날 수 없습니다. 즉 예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일이었을 때에 비로소 나타나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일에 나 개인의 욕심에 따라 어떤 기도와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인해 예수님이 찾아와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런 것조차도 예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일 혹은 그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한 조건으로써 말씀의 도구 즉 성령의 통로로 사용하실 때에만 가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