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돌베개/ 2004.08.05/ 399쪽
신영복 : 1941년 밀양에서 태어났고 1963년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한 후 1965년까지 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숙명여대의 강사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지내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단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옥살이를 하는 동안 서예를 배우고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가족 사랑으로 주고받은 편지를 책으로 냈다. 1988년 8월 15일 특별사석방되어 1989년 성공회대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하였고 1998년 3월 13일 사면복권되어 성공회대 교수로 정식 임명되었다.
저서로『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엽서』,『더불어 숲』, 역서로는『외국무역과 국민경제』,『사람아 아! 사람아』,『노신전』,『중국역대시가선집』등이 있다.
무기징역형을 받고 징역살이를 하는 사람의 편지를 모아 엮은 책이다. 여기에는 그의 다른 생각이나 의견은 없고, 단 한 차례의 억울하다는 불평이나 불만도 없이 오로지 편지로 주고받은 내용 중에서 자신이 가족들에게 보낸 내용만 적었다. 가족으로부터 받은 내용은 내용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가족 자신에 대한 신상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싣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또 그런 가족이 보낸 편지까지 책으로 묶기에는 너무 분량이 많아 다 싣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 책은 내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였지만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구한 것은 아니다. 우연히 수선집에 작업복을 수선하러 갔다가 한 쪽에 놓여있는 책을 보고 가져온 것이다. 주인에게 말하기를 몇 번 망설이다가 이 책을 보아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가져다 보라고 흔쾌히 말하였다. 나는 그러다가 내가 안 가져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고, 그래도 그냥 부담 없이 가져다 보라고 하였다. 그 말은 안 가져오면 어쩔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니 내가 미안은 하지만 그래도 내가 전부터 보고 싶었던 책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 뒤 나는 다른 책을 한 권 가지고 가서 주인에게 주었다. 그랬더니 수선집 주인은 벌써 책을 다 읽었느냐고 반색을 하였다. 나는 이 책이 두껍고 내용이 딱딱하여 생각보다 쉽게 읽히지 않는 다고 느꼈고, 사실 빨리 읽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아직 다 읽지 못하였다고 하였더니, 주인은 내가 준 책을 펼쳐보더니만 이 책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하였다.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 책에 관해서는 벌써 몇 해 전부터 지인이 좋다고 선전하던 책이라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래 사색이란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므로 어떤 내용이든 모두가 사색이라서 맞는 말이니 그렇게 해석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사색은 사상적인 사색보다는 일상적인 사색 즉 마음 속의 생각이라고 느껴진다.
사실 이런 생각으로 읽다보면 다산 정약용의『유배지에서 보낸 편지』가 생각난다. 남의 책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사람의 책을 이야기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감옥이나 옛날의 감옥인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점은 공통으로 대동소이할 것이다. 또 받은 편지 내용보다는 보낸 편지의 내용을 적은 것이라고 본다면 말이다.
사실 감옥에서 지내는 일상은 단조롭기 짝이 없다. 더구나 그런 삶에서 편지를 보내는 것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것도 한두 통이 아니라 내가 세어본 것만 해도 241편이나 되니 말이다. 그런 241통의 편지 가운데 내용이 겹치고 반복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매번 내용에 변화를 주변서 신변잡기를 알리듯 하는 것은 마치 매일 마주치며 살아가는 일상의 사람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밖의 생활에도 많은 교감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몸은 비록 메였지만 마음은 높은 담장을 넘어 세상을 날개짓하며 날아다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이 책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가지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사실 옥살이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속의 삶이 어떤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밖에서 일반인들이 짐작하는 것은 그냥 짐작에 불과한 것이다. 마치 군대를 안 가본 사람이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이 얘기하는 곳에 끼어들어 지금까지 주워들은 군대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옥살이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자기 자신만의 시간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물리적 시간으로 따지자면 개인 시간이 충분하지만 여건상 그런 시간을 충분히 혼자서 누릴 수는 없는 곳이 바로 옥이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도 책을 읽고 그 책을 모다 다시 집으로 반송하고, 편지를 쓰고 편지를 읽으면 사색하는 것은 참으로 절제된 생활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내가 이 책에 매료되는 것이며, 그런 책을 쓴 사람이기에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것이다. 나는 저자와 얼굴 한 번 대면한 적 없으며, 사진으로라도 만나본 적조차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가 옥살이를 하기 전 즉 숙명여대 강사와 육군사관학교 교수로 있었기 때문이 아니며, 그가 3년 동안에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마쳤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옥살이를 중도에 마치고 가석방되어 나오자마자 바로 복권되었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었기 때문도 아니다. 나는 그가 열악한 환경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공부하고 가족 간 사랑을 실천하며, 자신과 비슷한 신분이 아닌 동료들과도 잘 어울려 지내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서 배울 점을 찾아 사색한다는 것을 높이 산 것이다. 그들은 무슨 잘못을 하여 왔는지 알 수 없으나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것이며, 그뿐 아니라 그런 것과 상관없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능률적이고 효율적인 일을 하는 것에 대하여 감명을 받을 수 있는 자세가 돋보이는 것이다. 여느 사람들은 그곳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지겹고 마치 죽지 못해서 사는 것일지 몰라도, 저자인 신영복에게는 밖에서 살던 하루와 또 다른 하루라는 점을 인식하고 일생일대에 다시 오지 않을 하루를 성실히 그리고 후회 없이 알차고 값지게 살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존경스러운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마음 속으로는 참으로 귀한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이 처해진 환경이 고달프고 힘들더라도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였다. 나는 내 삶에 만족을 못 하지만 그래도 남에게 비교하면 아주 귀중하고 소중한 삶 즉 그렇게 고대하고 갈망하던 삶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현재의 내 삶이 소중함을 느낀다. 내가 숨 쉬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도 역시 감사할 일이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 바로 우리 인생 그 자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