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뒤흔든 16인의 왕후들
이수광/ 다산초당/ 2010.06.14/ 357쪽
이수광 : 추리소설과 역사서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군의 실력을 나타내고 있는 작가로, 비교적 약자의 편에서 살아왔으며 그러한 사상이 작품에 나타나고 있다. 왕후들을 이야기하면서 실록 외에도 여러 종류의 서적을 참고하여 행간에 숨어있는 의도를 짚어내는 노력은 독보적이다.『사자의 얼굴』로 제10회 한국추리문학상을 수상하였고 계간 미스터리의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에『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나는 조선의 국모다』등 다수가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4부로 나누어 조선의 운명을 바꾼 여인 4명과 조선의 산천초목까지 다스린 정치적 왕후들 5명, 조선을 울린 비극의 왕후 3명, 왕에게 버림을 받은 비련의 왕후 4명을 다루고 있다. 이들은 조선의 초석을 다진 킹메이커 원경왕후 민씨,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은은한 리더십 소헌왕후 심씨, 격변의 세월을 넘어 개역 군주의 파트너가 된 효의왕후 김씨, 무너지는 조선을 일으켜 세우려 했던 명성왕후 민씨, 조선왕조사상 가장 큰 권력을 휘둘렀던 여인 문정왕후 윤씨, 권력을 되찾기 위해 인공의 세월을 견딘 인목왕후 김씨, 북벌을 위해 역모 사건을 파헤친 인선왕후 장씨, 수렴청정으로 여군의 권세를 누렸던 정순왕후 김씨, 대원군 독재의 시대를 연 신정왕후 조씨, 왕위를 찬탈당한 비극의 여인 정순왕후 송씨, 후궁의 권력 아래 숨죽여야 했던 장렬왕후 조씨, 당쟁에 희생당한 가련한 여인 선의왕후 어씨, 조선왕조사상 가장 불행했던 폐제헌왕후 윤씨, 폭군의 아내로 비운의 생을 살다간 연산군부인 신씨, 7일 만에 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난 단경왕후 신씨, 희대의 요부로 기억되어야 했던 희빈 장씨 등이 등장인물이다.
이들 여인들은 대체로 간택이라는 형식을 거쳐 궁중에 들어온 사람들로 이름은 거창한 조선 왕의 부인이 되었다. 그러나 간혹은 공개 간택의 형식을 빌리지 않고 특별하게 지목하여 발탁된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하여 어느 가문의 딸인지조차 조사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인에 대하여 후한 점수를 주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실록이나 기타 여러 기록에 의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내심의 본색까지야 다 드러내지 않는 것이니 기록자가 그것을 간파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대체로 이들은 사대부가의 자녀로 인물이 뛰어나며 재능 역시 특출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한 나라의 내조자로 그 역할을 하였을 것이라 믿어진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자신의 의지를 전혀 펼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위로는 상왕이 있고 대비가 있으며 혹은 수렴청정으로 왕이 실권이 없으니 왕비인들 실권이 이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왕조에서의 궁중 암투라 할 것이다.
우리는 밖에서 보는 궁궐이 화려하고 우아해 보이지만 실상 속을 들여다보면 권력 투쟁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에 이런 권력 투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조선 왕조는5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의 경우 한 나라의 흥망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는 것이 그런 예이다. 물론 중국의 경우 권력 투쟁이 없어서 빨리 패망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과정에서 긴장하고 더욱 분발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은 나라의 흥망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 전쟁의 연속이었기에 빨리 망했다고도 볼 수 있는 나라에 속하기도 한다.
얼마 전 사도라는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제목에서 보듯이 사도라는 것은 사도세자를 의미하며, 죽은 후에 그 뜻을 기리고 추모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사도는 영조의 아들로서, 부푼 꿈에 세자비로 간택된 여인은 왕비의 자리에 오르지도 못하고 말았다. 그뿐이 아니라 남편이 그것도 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참극을 보아야 했다. 이것이 조선왕조의 여인들 삶이었다. 물론 그런 것이 반드시 조선왕조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어디든 권력의 투쟁과 승계라는 구도에서는 항상 일어날 수 있는 조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반정으로 집권을 하거나 반정으로 실각하는 경우는 왕후 역시 그와 같은 대우를 받았다. 그래서 그 집안이 멸문가로 전락되고 생사조차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권력과 부를 위해서는 부자지간에도 싸운다는 말이 성행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니 그 부인들 역시 그런 권력 투쟁에 앞장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피한다고 하여 피해지는 것이 아니니 어쩔 수 없이 참여하거나 아니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이 내조자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조선을 뒤흔든 여인이 비록 위의 16명 왕비들뿐이었겠는가. 아니다. 결코 그럴 수는 없다. 각양 각지에서 각기 다른 분야에서 많은 여인들이 남정네들을 그리고 조선을 뒤흔들었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왕후 16명을 선정하여 나열할 것뿐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저자는 16이라는 숫자에 매료되어 있다. 기생도 16명, 살인사건도 16건, 연애사건도 16가지를 선정하여 책으로 낸 사람이다.
인간의 삶이 생로병사이며 국가의 존립이 흥망성쇠이듯이 모두 4가지 항목에서 시작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또한 각자가 맡은 한 분야에서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희로애락이 있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삶의 연속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4가지로 나누고 그의 4배수인 16을 적용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물론 이런 추측과 저자의 의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도 확실하다. 그런가 하면 16가지 정도는 되어야 비로소 한쪽으로 치우치는 우를 줄일 수 있고, 어느 편견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야 서로 비교를 하면서 객관적인 분석을 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내가 이 책을 읽었어도 조선의 역사를 훤히 꿰뚫지 못할 바에야 어차피 완전히 숙지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어느 왕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성격으로 대처하였는가도 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입장에서 보면 조선의 왕실 역시 어느 왕실과 마찬가지로 권력과 투쟁하는 그런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이 사색당파의 나라였다고 하지만 그것은 다른 나라와 객관적으로 비교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말이며, 어느 나라 어느 국가든 당파 없는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로 인하여 서로 견제하면서 학문적으로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한 것도 인정해야 할 대목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사색당파에 의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처형을 당하고 유배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러므로 인하여 역사의 흐름이 중단되거나 잠시 잠깐 멈추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모여 나라가 쇄국으로 치닫고 자꾸만 보수적으로 고착화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보수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발전을 하려면 기존의 틀에 진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보가 반드시 필요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진보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만약에 조선의 당파들이 진보를 허용하였다면 그것은 바로 다른 당파 역시 허용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상생을 의미하며 좀 더 편리하고 좀 더 유리하도록 개선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왕실에서의 권력 다툼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나라가 침략하여 정권을 찬탈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면서 상생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왕후들의 암투도 없었을 것이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피비린내 나는 권력 상쟁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견조차 모두 나의 선입견에서 시작되었음을 고백한다. 이것은 당시 유교 사상에 의한 역사가들의 판단에 따라 기술된 실록이며, 나 또한 내 입장에서만 주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당사자들이 어떤 상황이었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어떤 명분이 있었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왕후는 참으로 비운의 왕비였으며 어떤 왕후는 행복한 왕비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느 누구든 내 인생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속에서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분투하고 각성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 것들이 모여 조선의 500년을 이어오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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