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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

꿈꾸는 세상살이 2015. 11. 30. 21:25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

 

팻 맥라건/ 윤희기 역/ 도서출판 예문/ 2002.11.25/ 238쪽

 

팻 맥라건 : 맥라건 인터내셔널의 회장으로 변화 관리 분야의 전문가이다. 수십 년 동안 GE, NASA, 시티뱅크 등 대기업에서 자문과 강연을 해왔다. 이 책은 저자가 30년 간 컨설팅한 결과와 많은 사람들의 능력을 펼쳐 보이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저서로『솔직함』과『참여시대』의 공저가 있으며 인터넷 라디오쇼의 공동 진행자이기도 하다.

 

 

윤희기 :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고려대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 강원대학교에서 강의를 하였으며, 번역가 및 출판사의 편집주간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역서에『소설』,『의심스러운 싸움』,『비평과 이데올로기』,『샤먼』,『물의 역사』,『마티스 스토리』,『무의식에 관하여』,『일상의 작은 은총』,『동행』등 다수가 있다.

 

 

이 책은 두 번째 읽은 책으로 예전의 읽은 기억은 희미하다. 이번에는 아예 느낌을 적을 요량으로 읽었기에 바로 이 내용을 적는다. 이 책은 직장인을 위한 자기계발서이다. 물론 직장인만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느 누구든지 자기계발을 원하는 사람은 읽어도 된다. 그러니 책은 어느 책이든 어느 누구든 읽어도 된다는 말이다. 다만 자기 수준에서 자기를 비추어 뭔가를 배우거나 변화를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책의 제목을 보면 바보들이 항상 결심만 하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책의 내용에서는 바보라는 단어는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언제 누가 결심을 하느냐도 나오지 않는다. 책의 제목이 원하는 바보가 결심만 하되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 다는 말은 모든 사람들이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다는 말을 빗댄 것이다. 혹은 잘 알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인데 그것을 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 조금만 노력하면 방법을 찾을 수 있고, 그렇게 하면 실제로 일이 해결될 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지적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책임을 전가하는 것에 익숙해있다. 지난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사건은 그 책임의 한계가 너무나 광범위로 걸쳐 일어났다. 예를 들면 세월호를 중고품으로 수입한 것부터 시작하여 배의 평형을 맞추는 물의 양을 조절하는 기능을 할 수 없도록 불법 개조한 것과, 정원을 초과하여 승선시키고 화물도 초과하여 적재한 것, 초기 침몰 당시의 상황 전파 및 보고와 그 대응이 늦었다는 것, 게다가 침몰하는 과정에서 배에 있던 승객들에게 대피명령을 내리지 않고 승무원들만 대피한 것, 구조를 책임질 기관과 그를 지휘할 기관이 서로 미루다가 일을 그르친 것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요인을 안고 있었다. 이처럼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 책임을 전가하기에 바쁜 것이 사람이며, 그런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일이 복잡하고 어렵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개인으로 비추어보면 차일피일 미루고 내 탓이 아닌 남의 탓으로 돌리다보면 그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잃게 되고 초기 대응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나중에는 타인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절대로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이것이 바로 바보들이 항상 결심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여 일을 그르친다는 말이다.

서비스업에서 불만을 제기하는 고객은 우선 다른 부서로 떠넘기기 급급하여 자신의 일에서 덜어내기만 바라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이러한 것은 사실 나를 위하고 자신이 속한 그룹을 잘 되게 하기 위한 좋은 지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은 우선 고객에게 욕을 먹거나 혼나는 일을 당하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이렇게 되고 만다. 좀 더 넓게 생각하면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잘못을 지적하여 준 고객에게 고맙다는 감사의 표시를 하며, 이 일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재빨리 개선하여 다른 고객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니 나를 나무라는 고객은 나의 스승이며 적군이 아니라 바로 아군인 셈이다. 이런 내용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바보라고 지칭하며, 바보는 항상 그런 것을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생각과 결론 즉 고객의 불만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환경이 변하고 시대가 변했다면 거기에 따라 나의 일도 나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예전에 하던 습관에 따라 행동하고 새로운 변화에 대하여 적응하기를 꺼려한다면 새로운 바보가 한 면 탄생하는 것이다. 이런 바보는 변화를 두려워하여 예전에 하던 방식을 고집하고 애써 고수하는 것이다.

삽으로 땅을 파던 시절에서 쟁기로 밭을 가는 것은 커다란 변화라 할 것이다. 그러다가 기계가 등장하면서 경운기로 밭을 갈고 좀 더 힘이 센 트랙터가 등장함으로써 일의 능률이 오르고 사람이 그만큼 편해지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삽으로 땅을 파기 원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이겠지만 그로인한 부작용이 더 커질 것이다. 말하자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역작용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이런 변화를 감지하고 새로운 방법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우리는 이때 삽으로 땅을 파는 사람을 바보라 부른다. 이처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엄연한 바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얼마나 바보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항상 삽으로 땅을 파겠다고 결심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삽으로 땅을 판다고 하여 누가 뭐라고 비평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처럼 숨가쁘게 돌아가는 경쟁 사회에서, 어느 누구든지 조금 늦은 바보가 있다면 그것은 그만큼 나에게 좋은 것임으로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트랙터로 논을 파는 시대에 삽으로 판다고 하면, 그 결과를 내 자손에게 물려줄 때 자손들은 뭐라고 말할까. 우리 아버지는 혹은 우리 할아버지는 삽으로 논을 갈았기 때문에 수확이 적어도 된다고 말할 것인가. 아니면 좋은 품종을 주어도 삽으로 땅을 팠으니 깊이 심을 수 없어 그런 품종이 필요 없다고 말할 것인가. 이것이 바로 바보들이 항상 결심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내가 바보가 안 되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결심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면 될 것이다. 고기도 놀던 방죽이 좋다는 우리 속담처럼 우리 사람도 하던 버릇 즉 길들여진 것이 더 편하고 좋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좋다고 하여 새로운 것에 도전을 피한다면 그것은 영원히 발전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고 만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변하지 않겠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결국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하고 만다. 마단 그 속다가 늦어 내가 못 느끼고 있을 뿐이다. 내가 아무리 밀레니엄시대가 두렵다고 해도 밀레니엄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냥 공중전화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하다가 삐삐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하는 사던 시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핸드폰을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남들은 모두 핸드폰 시대로 옮아갔다. 결국은 내가 그렇게 반대하던 핸드폰 시대에 나도 모르는 사이 접어들고 만 것이다. 이처럼 내가 반대한다고 해도 결국은 변하고 마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다. 그런데 그 속도를 조금 늦추고 싶어 그것이 마냥 진리인 것처럼 고집을 부리지만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나도 새로운 시대에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럴B바에는 차라리 새로운 변화를 주도적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방식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보가 되지 않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변화를 싫어할까.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를 기준으로 하여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남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하지 않기 위하여 그렇게 된다. 남도 나와 같이 변화를 해야 하는 데,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잔소리를 하고 그렇게 유도해야 하며 그러다보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불평불만을 토로하고 빈정댈 것이 두려워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다. 소위 말하는 변화를 강요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새로운 방법을 찾는 시도인지 아니면 기존에 하던 방식대로 하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알기 쉽다. 그리고 그 일을 하다가 막혔을 때 능력있는 사람으로 대우를 받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 누구든지 새로운 일을 하다보면 처음부터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에디슨이 999번의 실패를 거친 후 드디어 전구를 발명하였다고 한다. 물론 정확한 기록은 없어서 누구는 700번의 실패 끝에 성공하였다고 하고 누구는 9999번의 실패 후에 성공하였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정확한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만큼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성공하였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변화란 이만큼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명언이다. 그러나 우리는 변화를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단 한 번에 성공하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무능력자로 찍힐 까봐 아예 처음부터 변화 그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변화란 원래 어렵고 힘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내가 하는 변화 역시 두려울 것이 없다. 하다가 실패를 하더라도 원래 그런 것이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모두 이렇게 실패를 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전혀 두려울 것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변화라 하더라도 내가 시작하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반드시 동조를 하고 도와줄 것을 알아야 한다. 세월이 흘러가듯이 무슨 일이든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실 변화는 별 문제가 안 된다.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변화를 마치 나 혼자 해야 하는 것처럼 착각하여 그 일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거기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한다면 어떻게 할까 망설이던 사람은 물론이며 나에게 거부반응을 일으키던 사람조차 동조할 수 있는 분위기로 이끌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변화에 대하여 너무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새로운 학년에 올라가고 새로운 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기대하면 즐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새로운 연인을 만나 즐기면 결혼까지 이어간다. 만약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새로운 학년이나 애인을 만나 결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것과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거나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얻는 것조차도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변화에 대하여 너무나 과민한 반응을 일으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빨리 돌파할 방법을 찾으면 그뿐이다.

 

 

내가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잘 하면 되고, 남이 하지 않는 일을 잘 하면 더욱 좋다. 그런데 이것은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과 적응으로 해결되는 것들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하는 일을 조금 더 업그레이드 시키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 개선하면 된다. 어렵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한 시대의 영웅이 되느냐 마느냐는 내가 그 일을 주도적으로 하느냐 마느냐에 달려있다. 내가 조금 더 앞장서서 이끌고 나가면 영웅이 되는 것이고, 뒤에 처져서 따라가기만 하면 그것은 졸장부가 되는 길이다. 내 삶은 내가 개척하는 것이 바로 삶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는 방법이다. 이것은 곧 진리다. 오늘 그리고 내일 내가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무슨 일이든 주도적으로 나서서 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