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산책
장 크리스토프 뤼팽/ 신성림 역/ 뮤진트리/ 2015.06.10/ 278쪽
장 크리스토프 뤼팽 : 1952년 프랑스 부르주에서 출생하였으며 의사이면서 세네갈과 감비아의 대사로 외교관을 지냈다. 국경 없는 의사회의 부회장을 역임하였고, 1997년 45세로 작가로 데뷔하여 2001년『붉은 브라질』로 최고 영예인 그랑프리상을 수상하였다. 공직을 마친 후 산티아고를 방문한 순수한 순례자로서 어떤 흔적도 없이 다녀왔으나, 훗날 기억에 의존하면서 쓴 여행기『불멸의 산책』이 2013년 출간되어 30만부가 팔렸다.
신성림 : 이화여대와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제10대학에서 대학원 박사과정으로 미학을 마쳤다. 저서로『사각형의 신비』,『반 고흐, 영혼의 편지』,『살다, 생각하다, 바라보다』,『화가로 보는 서양미술사』,『미술은 똑똑하다』,『미완의 작품들』,『수런거리는 유산들』등이 있다.
먼 거리였다. 우리나라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어놓으면 고속도로로 약 400km에 달한다. 그러나 장 크리스토프 뤼팽이 다녀온 성지순례는 아주 멀고 험하며 길을 잃을만한 곳도 아주 많다. 거리로는 보통 1,000km 혹은 2,000km에 이르기도 한다. 물론 모든 순례자들이 이렇게 긴 길을 걷고 또 걸어서 가는 것은 아니다. 누구는 가까운 곳에서 출발하기도 하고 누구는 먼 길에서 출발하였지만 도중에 자동차를 타거나 자전거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목적은 오로지 원하는 그곳 성지에 간다는 것으로 동일하다.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않으며, 다음번에 도전하여 결과적으로 성공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런 긴 여정에서 순례자들은 지치고 힘들어하기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신에 대한 부족함을 배우며, 적어도 자신의 철학적인 자아를 발견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성지순례는 그냥 그곳에 걸어가는 것 외에도 영적인 자신을 일깨우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자신의 삶을 즉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해야 하는 성지순례자의 보따리는 그야말로 만물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보따리가 편리하며 풍성할수록 순례자를 지치게 만든다. 그러니 가장 편한 복장으로 가장 적은 무게의 짐을 가지고 가는 것이 원칙인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은 뒤에 알아내는 교훈일 뿐이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필요할 것 같은 모든 것을 지고 가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고 오랜 길을 걷다보면 꼭 있어야 할 것 같았지만 어느새 필요 없는 물품으로 변해버린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는 이미 자신을 초월한 상태이며 벌써 성지순례를 마친 고뇌자가 된 듯한 깨달음도 찾아온다. 이것이 바로 성지순례가 주는 자아 발견이다.
장 크리스토프 뤼팽은 이런 순례길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과거 한 나라의 대표자로서 대사였던 사람이 허름한 옷에 땀이 찌들어 거지같은 차림으로 사람 한 명 만날 수 없는 아득한 길을 걷고 또 걸어서 간다는 것, 전화 한 통화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던 위치에서 돈을 주고도 해결할 수 없으며, 내가 원하는 일이 있어도 어느 누구에게 시킬 사람이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비로소 사람의 고마움과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성지순례는 그냥 육체적 단련뿐 아니라 정신적인 성숙과 함께 신에 대한 충성을 보여주는 순간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여정을 마친 뒤 그 징표로 사도의 동상에 포옹하는 것은 역시 신에 대한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저자는 이런 의미에서 동상에 포옹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정말 진정한 순례자로서 자신을 발견한 의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의도야 그냥 운동으로 혹은 재미 삼아서 갔던 길이라 하더라도 그 길이 순례길이 되었다면 진정한 순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진정한 순례자는 신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는 것이며, 신에 대한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깨닫는 것이다. 어떤 순례자가 역을 물었을 때, 거리가 너무 멀면 버스를 타고 가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순례자는 역에서 열차를 타려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마를 더 가야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니 버스를 타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순례자와 일반인들의 차이이다. 순례자는 모든 것을 초월한 도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외길을 한참 가다가 만난 주민에게 목적지를 물었을 때, 잘못 왔다며 되돌아가라고 하는 경우도 가끔씩 있다. 그러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물으니 아까 갔던 그 길이 맞는 길이었을 때 순례자는 엉터리 말 한 마디에 되돌아왔던 길을 다시 떠나야 한다. 이것이 바로 순례자가 지닌 숙명이다. 이로써 순례자는 고통을 참으며 도인이 되고 성자가 되는 것이다. 남을 미워하지 않으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순례자가 된다.
하지만 이런 고난의 순례자를 상대로 영업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가기를 바란다. 맛이 없어도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가기를 원한다. 한적하고 외진 곳이라 오는 손님이 없으니 어쩌다 나타나는 순례자라도 그냥 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각종 감언이설로 꼬드겨서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먼 길에 대하여 험하고 고난의 길이니 미리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가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남은 여정은 그리 어렵지 않은 길일 수도 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항상 이와 같은 작용 반작용이 존재하는 법이다. 그러나 내일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순례자로서는 단 하루 오늘을 성실히 살다가는 것이며, 오늘 할 수 있을 때 조금 더 하는 것이 그 본분이다. 내일을 기약하는 오늘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순례자의 길이다.
순례자! 그 이름만으로도 존경스러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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