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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랑 십자가(갈라디아서 6장 13절~15절)

꿈꾸는 세상살이 2016. 3. 2. 14:01

나의 자랑 십자가(갈라디아서 6장 13절~15절)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독교 교인 중에서 진실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그런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체적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갖기 원하여 기도하고 복을 빌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노력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그런 성도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그런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성도일까요.

그러나 사람은 혼자 힘으로 그런 굳건한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도우시고 성령 하나님이 도우셔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는 나의 삶을 포기하고 오로지 나를 보내신 분을 위하여 살 수 있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하였습니다. 바울은 거듭나기 전에 철저한 인간적 욕망에 사로잡혀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직접 손에 쥐고 있어야 인정하는 물질적 삶을 살았으나,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이와 반대로 자신을 죽이고 순전히 예수님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은 오로지 예수 한 분밖에 없지만 그 외에 어떤 다른 것으로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외에는 모든 것을 필요 없는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님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할례를 받았느냐 무할례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내가 거듭나는 지으심을 받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냥 거저 주어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사모하고 거듭나서 완전한 한 몸이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거듭나면 나의 삶은 바뀌게 됩니다. 육체적인 욕구나 필요는 더 이상 소용이 없으며, 오로지 천국을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 한 가지뿐입니다.

이렇게 거듭나는 것은 현재의 내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육체적으로 목숨이 끊어져서 죽는 것도 포함되지만, 이제껏 내가 행하던 욕망을 버리고 거듭나는 것도 영적으로 죽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거듭나는 길은 오직 한 가지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진리는 죽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거듭나는 길은 항상 깨어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기도는 십자가에 죽기 위한 기도여야 하고, 나를 부인하는 기도여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아주 작은 겨자씨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큰 산에게 명하여 옮겨지라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은 아주 작은 겨자씨보다 훨씬 작은 믿음만 있어도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믿음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적 욕구보다 오직 십자가만을 위하여 생각합니다.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갑니다. 세상의 요구보다 하늘나라의 축복을 생각합니다. 그래야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겪지 않고서는 절대로 내 안에 십자가가 들어올 수 없습니다. 바울처럼 내가 자랑할 것은 오직 십자가밖에 없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