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연대
이승욱/ 레드우드/ 2015.04.30/ 260쪽
이승욱 : 정신분석가로「닛부타의 숲」정신분석클리닉을 운영 중이다. 또한 팟캐스트「공공상담소」의 대료이다. 저서로『상처 떠나보내기』,『대한민국의 부모(공저)』,『포기하는 용기』,『애완의 시대(공저)』등이 있다.
이 책의 서두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날 즉 2014.04.16일 아침에 집필을 결심하였고, 드디어 2015.04.16 출간하게 된 책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저자가 정신분석가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굳이 정신분석가가 아니라 일반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이런 생각쯤은 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생각을 글로 옮기거나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어려워 실천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나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또 하나 그런 생각이 절절하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먹고 사는 일에 부딪쳐 즉 생업에 시간을 쫓기는 사람은 그렇게 실천하기기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이런 책을 냈다는 것은 여러 사람의 마음을 대변한 것 같아 반갑다고까지 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책을 펴는 순간 처음 접하는 말 즉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시작된 이 책이 정작 읽어 가면 읽어갈수록 세월호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끝까지 읽어도 세월호라는 단어가 열 번도 넘지 않는다. 이것은 책이 주는 내용은 단지 세월호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그 내용은 세월호에 연관되어 모두 다 그런 맥락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정신분석가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 같은 일반인은 세월호를 보면서 이 책을 쓰기 시작하였다면, 그 책은 세월호라는 단어가 적어도 수십 번은 나와야 할 것이고, 그로 인한 격분과 교훈을 구구절절이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책을 쓰게 되었지만 애써 세월호를 들먹이지 않아도 이렇게 한 권의 책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책의 제목이 마음의 연대다.
이것은 마음으로 연대를 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음의 연대를 하지 않고 물리적인 신체적 연대를 자주 혹은 늘상 하고 있다는 표현으로도 들린다. 정말 따지고 보면 우리는 육체적 연대를 거론하고 그렇게 실행하는 습관 속에서 살고 있다. 한 가족을 이루고, 한 동창생으로 엮여 있고, 한 직장이라는 조직원으로 묶이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 모두가 물리적인 연대 속에 있는 것이다. 이들은 어떤 목적을 위하여 서로 힘을 합하고 공통의 목적을 위하여 일사불란한 행동을 표출하기도 한다.
그에 반하여 겉으로 드러나는 연대 외에 마음으로 엮이고 마음으로 연대하는 것을 권장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 골자다. 그러면 마음으로 연대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예를 들어 지구촌 저 반대편의 어느 농부가 가꾼 유기농 제품을 보면서 그것을 내가 먹고 싶어 한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리고 그 제품을 구매하거나 혹은 나도 그런 제품을 가꾸고 싶다고 해보자. 이때 그와 나는 마음으로 통하게 되며, 그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친환경적인 비료를 사용할 것이고, 주변 여건도 그렇게 만들어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그가 하는 환경 운동에 내가 박수를 보내고, 몸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나도 여기서 환경 운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서로 연락을 하게 되고 범사회 즉 세계 환경 운동의 단체를 만든다거나 각자 나라에서 환경에 대한 입법을 강력이 주장하는 것 등의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런 경우 나와 그 유기농 농부는 같은 마음으로 엮여 있는 마음의 연대자가 되는 것이다. 둘은 서로 말은 안 해도 혹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도 서로 위로하고 서로 격려하며 어떤 목적을 위하여 힘을 합칠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마음의 연대를 필요로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유기농을 하는 농부가 정치 즉 국회의원에 기대거나 어떤 수익적 목적을 위하여 정치적으로 논다는 평을 들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바로 정치적 목적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유기농 제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전국적으로 독성이 강한 화학 약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아예 공장에서부터 만들지 못하도록 입법을 하는 것들은 진정한 유기농 애호자들의 할 의무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유기농 농부의 정치 참여는 지극히 당연하고 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들을 두고 정치적 목적에 편승하는 사람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며, 농부 역시 나는 정치적으로 놀지 않는다는 말로 방패막이를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절대로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유기농 농부든 잡목을 베어내고 사람에게 좋은 묘목을 심는 산림업자든 사실은 정치적으로 관여를 해야 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때 물리적인 단체에 편승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지만, 우선 이들이 서로 마음으로 연대를 해야 한다. 마음의 연대는 우선 같은 목적이어야 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여 더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서는 서로가 자기주장만 하는 그런 일은 없다. 마음으로 연대된 사람들은 목적이 같기 때문에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더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로 묶이게 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특정 개인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며, 나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지도 않는다.
저자는 마음의 연대를 설명하면서, 연말에 불우이웃 돕기를 하는 순간 재벌 회장이나 어느 단체의 지도자가 나서서 연탄을 나르며 김장을 하는 것들을 꼽는다. 이들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서로 돕자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들이 진정으로 마음의 연대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이들은 물리적인 연대를 하고 있을 뿐이다. 어려운 이웃을 보면서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윤리를 강조하고, 또한 그렇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육체적 연대이지만, 정작 마음의 연대를 동반하지 않고 있다. 이런 경우 마음의 연대를 하는 사람은 평소에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게 된다. 말하자면 어려운 달동네를 없애기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다. 우선 고개를 깎아 길을 평지로 낮추고, 많은 집을 지어 무상으로 하나씩 나누어 준다든지 하면서,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 등의 행동이 뒤따른다. 바꾸어 강조하면 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공감을 찾는 일을 한다는 말이다.
마음의 연대를 하는 사람사이에는 국경이 없어야 한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각 나라의 국경을 통과하면서 어떠한 제재를 받지 않는 것과 같이, 각자의 의견을 교환하면서 어떠한 방해를 받거나 어떠한 다른 목적으로 위하여 서로를 비판하지 않는다. 김일성이 자식에게 권력을 넘겨준 것 즉 김정일이 대를 이어 권력을 잡은 것에 대하여 북한 김일성 일가만 제외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비난을 한다. 그렇다고 대를 이은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다른 국민들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명확한 판단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마음대로 요리하고 처단할 수 있는 권력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그대로 물려받는 것은 안 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국민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이며, 어느 특정인에 대한 의견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또한 기업의 창업주에 이은 2세 3세의 경영권 세습은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기업이 경영 세습을 하는 것은 모두가 개인의 재산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주식회사로써 하나의 인격체를 가진 법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소유라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주주총회를 통해서 결정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는 있으나, 사실 그것 역시 경영자의 특정 목적을 위해 진행되는 각본이라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마저도 옳은 방법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며, 이때 벌어진 행위는 물리적 육체적 연대에 의해 엮여진 사람들의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주주총회에 참석해서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이 결코 마음의 연대로 묶여졌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별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단어가 그렇고 문장도 그렇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강하게 남는 그 무엇은 없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아니 나는 지금까지 강제적으로 물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엮여진 연대에 길들여져 있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내가 세월호의 학생 혹은 그 부모였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떻게 하면 육체적 연대가 아닌 마음의 연대를 할 수 있을까. 그러면 나에게 어떤 결과가 다가올까. 정부는 아니 국민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희생자는 그렇다 하더라도, 그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 즉 뭔가 느낀다는 사람들은 서로 연대하여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는 이런 사건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 부응하는 것이다. 그것도 육체적 연대보다는 마음의 연대가 더 중요한 시점이다. 획일화된 몸짓이나 한 목소리를 내는 구호가 없어도, 그냥 눈빛만 보아도 서로 이해하고 의미가 전달되는 그런 연대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연대는 남의 눈치를 볼 것도 없다. 요즘은 엄청난 구호와 불타는 화염병 시위에서 조용하지만 자유스러운 촛불시위로 변하고 있는 세상이다. 전자가 육체적 연대라면 후자는 마음의 연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가 연대의 중독 즉 반드시 함께 어울려 연대를 해야 한다면 후자는 그 현장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며 꼭 그 시간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모든 국민이 희생자 가족에 대하여 마음의 연대를 하고 있다면 입법자나 집행자나 아니면 방관자나 아무런 제재도 없을 것이고, 아무런 거부감도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현장에서 시위를 하고, 어떤 사람은 그런 사람들에게 교통편을 제공하거나 먹을 것을 주고, 어떤 사람은 그들을 옹호하는 글을 써서 홍보하고, 이런 환경이라면 세월호 희생자 가족이 죽음을 두고 흥정한다는 말도 듣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진정한 마음의 연대인 것이다. 마음이 통하면 어떤 방식이든 언제 어디서든 통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부모가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을 걱정하며 사랑하듯. 아마도 저자가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하여 마음의 연대를 이어가기 바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내 것들 > 독후감,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래 땅이 받아줍디까 (0) | 2016.04.12 |
---|---|
머무르고 싶은 순간들 (0) | 2016.04.07 |
끌리는 사람의 백만 불짜리 매력 (0) | 2016.04.04 |
K팀장은 삼각김밥을 좋아한다 (0) | 2016.03.29 |
우리는 가족일까 (0) | 2016.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