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땅이 받아줍디까
한승오/ 강/ 2004.02.25/ 240쪽
한승오 : 1960년 부산태생으로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출판사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2001년 2월 충남 홍성으로 귀향을 하여 농사를 짓고 있다.
책 제목을 보면 땅이 아니 농토가 처음 귀농한 사람 혹은 낙향한 사람을 쉽게 받아주었는가 하는 질문처럼 들린다. 어쩌면 땅이 아니라 그 마을 사람들 즉 시골 사람들이 처음 들어오는 이방인을 허락하였느냐는 말로도 들린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면 땅이 쉽게 받아들이느냐가 아니라, 시골이라는 개념을 가진 땅 즉 농토가 처음 접하는 초보 농사꾼을 잘 이해하고 놓아두느냐는 것을 말한다.
모든 것에는 이력이 있다. 처음 하는 사람들은 그것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때로는 잘 이해하지 못하여 낭패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도 초보 농사꾼이 농사를 이해하고 농법을 익히기까지 어떤 어려움을 겪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으로 하는 설명은 아니니 부담은 가질 필요가 없다. 글자 그대로 시골에서 보내온 편지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집 뒤뜰의 대나무가 내는 소리와 그의 후손을 퍼트리는 즉 죽순의 생명력에 놀라는 초보 농군, 강아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어설픔, 재래식 전통 화장실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기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들, 수돗물을 사용하던 습관에서 우물물을 이해하기까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 오리농법에 사용될 오리를 건수하는 기술조차 없던 초보 농사꾼이 겪은 시골 정착기다.
사실 시골 생활은 도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낭만적이거나 참을만한 것은 아니다. 수시로 나타나는 뱀도 그렇지만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드는 쥐 또한 골칫거리다. 그보다 심한 것은 언제 어디서든 찾아드는 불청객 모기와 파리는 힘에 부칠 정도다. 그런가 하면 아주 귀한 거름이 되는 퇴비나 분뇨는 고역 중의 하나다. 이러한 불편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 그보다 힘든 노동을 견딜 수 있는 사람, 아니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자식처럼 길렀던 작물을 헐값에 혹은 그냥 버려야 할 때의 심정을 잘 조절할 수 있는 능력자라야 할 것이다.
누구든 평화로워 보이는 농촌의 삶을 동경하기도 한다. 조용한 마을의 한 쪽에서 누구의 간섭도 없이 마음 편히 살고 싶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시골은 마음 편이 사는 곳이 아니다. 몸도 편히 쉴 곳은 아니다. 그것을 완성해갈 것은 오로지 자신의 신념일 뿐이며,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만큼 얻는 대신 버릴 것이 아니 스스로 포기할 것이 많다는 얘기다.
사람들이 연어의 귀향을 언급한다. 늑대로 죽을 때에는 고향을 바라본다는 말도 있다. 물론 사람도 회귀본능이 있다. 죽을 때는 고향의 정겹던 시절을 떠 올리고, 부모를 생각하는 것들이 그렇다. 그런가 하면 죽기 전에 고향에 가서 한 바퀴 돌아보고 싶다는 말도 한다. 또한 죽어서 땅에 묻히는 것까지 모두 회귀본능에 속한다.
이러한 시골 본능이 바로 농토에 의존한 삶에서 비롯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지금도 농토에 의한 삶은 지속되고 있다. 농업은 생명 산업인 것이다.
그런 땅을 잘 이해하고 농업을 잘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비록 초보 농사꾼이라 하더라도 진정한 마음으로 대하면 땅이 그를 받아줄 것이다. 저자는 이런 의미에서 땅이 받아줍디까 하고 물었을 것이다. 알량한 학문으로 땅을 대하지 말고 땅이 요구하는 것으로 대접해주라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시골 사람들이 순박하면서 자연에 순응해 살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연을 이해하면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평화로운 것이다. 그냥 마음만 먹고 살았다고 넉넉하고 평화로울 수는 없다. 이것도 자연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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