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약에 속지 않는 법
미요시 모토하루/ 박재현 역/ 랜덤하우스/ 2006.03.18/ 193쪽
미요시 모토하루 : 일본 의사로 저서에『병의 미신』,『의사가 가르쳐주는 클래식 다이어트』,『위험한 화학물질로부터 몸을 지킨다』등이 있다.
박재현 : 상명대학교 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일본외국어전문학교를 통하여 일한 통번역학과를 마쳤다. 계속하여 일본도서 저작권 에이전트로 일하면서 출판 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문장으로 보는 유럽사』,『최강의 가르침』,『유럽인명구조대』등이 있다.
현대는 과학이 발달하고 의학이 발달하여 사람이 살아가는데 매우 편리한 세상이라고 한다. 또한 자연을 정복하고 사람의 노화를 방지하면서 생명을 많이 연장시킨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죽음이라는 명제 앞에서 작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환자들이 의사에게 매달리고 자신의 목숨을 맡기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의사들은 환자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처럼 여기지는 않는다. 물론 진정으로 환자의 생명을 돌보는 의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대다수의 의사는 진정성보다는 상업적인 경제논리로 대한다는 말이다.
본 도서의 저자인 미요시 모토하루는 이러한 의사들의 행태에 대하여 쐐기를 놓는 돈키호테에 비유할 수 있다. 자신도 의사이면서 의사들은 어찌하여 진정한 치료를 원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의사들이 환자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서 병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는 다고 생각하여 이러한 책을 쓴 것이다.
굳이 저자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환자들 역시 자신의 주치의인 의사가 자신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으며 병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생각은 한다. 그렇지만 당장 약에 대한 처방이나 수술 등 시간을 다투는 급한 환경을 대처할 방법이 없어 자신을 맡기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정 또한 의사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의사들은 진정한 처방을 하지 않으며, 진실을 외면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의사 역시 경제적인 동물로서 자신의 처해진 환경에서 적응하고 견뎌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환자의 생명에 관한 것을 그렇게 외면하면서 경제적 잇속을 챙기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생각이 든다.
저자는 한창 유행하던 신종 폐렴 사스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다. 사스는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세균에 대한 치료제 즉 항생제로 잡을 수가 없다고 한다. 즉 현재의 약품으로는 처방을 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방법으로 잡을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가정용 합성세제다. 세탁기에 넣고 세탁을 하거나 화장실용 청소 용제로 사용하는 합성 세제가 바로 그 유명한 사스에 천적인 셈이다. 그것도 1리터의 미지근한 물에 단 5~10cc의 적은 양인 100:1의 희석제로 말이다. 그러나 어느 의사도 매일 사용하는 합성세제로 인한 우리 피부의 알레르기나 아토피는 지적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이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또한 우리 현대인들이 나이가 들면서 겪고 있는 골다공증에 관한 처방도 문제다. 요즘은 의학 상식에 건강 상식이 넘쳐나서 골다공증 예방에 칼슘이 좋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칼슘이 풍부한 식품을 찾아 먹고 때로는 칼슘 제재를 복용하기도 한다. 노인이 있는 가정에서 칼슘제를 먹지 않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 비해 골다공증 환자는 더 늘었다. 이러한 현실은 먹는 것으로 또는 약으로 처방해 준 약품이 골다공증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단적인 증거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부정하면서 골다공증 처방제를 거부하는 환자는 아무도 없다. 이것이 바로 약에 대한 의사에 대한 믿음에서 파생된 사실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의사들에게 들은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을 액면 그대로 믿을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만든 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느 날 갑자기 오른 팔이 위로 올려지지 않으면서 뒤로 돌리면 아파서 마음대로 내두를 수가 없었다. 하루는 그냥 잘 쉬면 낫겠지 하였으나 다음 날도 다음 날도 낫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병명이나 알아보자는 심산으로 병원을 찾았다.
병원은 개인병원이지만 잘한다는 소문이 나서그런지 사람들이 북적대서 내 차례가 되려면 잠시 기다려야만 했다. 접수를 한 후 어디를 다녀올까도 생각해봤지만 혹시나 그러다가 내 차례를 놓치면 더 늦을 수도 있다는 걱정에 그냥 죽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내 차례가 되어 진찰실에 갔는데,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고 묻더니 이야기를 듣자마자 X레이를 찍자고 했다. 그러려니 했는데 사진을 보더니 어깨의 뼈가 길어져서 서로 마주치니 수술로 잘라내야 한다고 했다. 대뜸 듣는 수술이라는 단어에 놀라서 수술은 무슨 수술이냐고, 이런 일로 수술을 한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다 수술을 해야만 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의사는 왜 이런 것을 가볍게 보느냐고 핀잔을 하면서 어제도 젊은 학생이 나와 똑 같은 증상으로 수술을 하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도 수술을 해야 하는데, 집에서 입원도구도 가져와야 하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일들을 정리한 후에 다시 오겠다고 말하면서 그냥 돌아 나왔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다른 정형외과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어깨가 나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전부터 인연이 있어 사혈을 하던 곳에 간 김에 어깨 이야기를 하면서, 병원에서는 수술을 하자고 한다고 말했더니 그런 것은 굳이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잠시 보자고 하였다. 대략 5분 정도의 사혈을 한 후 이제 자고 나면 어깨가 나을 것이라고 하였고, 정말로 다음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짱하게 나았다. 사혈하는 사람은 이런 현상을 어깨의 뼈에 석회질이 모여서 서로 엉켜 붙은 것인데 이런 정도는 피를 잘 돌게 하여 백혈구가 이물질을 없애주면 된다고 하였다. 의학적인 상식이야 있든 없든, 이론적으로 잘 설명을 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나의 어깨는 예전처럼 거뜬하게 되었으니 그의 말이 맞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훗날 나는 예전에 어깨가 아파서 어떤 병원에 갔더니 바로 입원하여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가까운 지인에게 이야기하니, 그 사람은 자기가 아는 의사가 아주 잘 한다고 소문이 나서 떼돈을 벌 지경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 의사는 이러 저러한 이야기를 잘 해주어서 자신은 믿고 따른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말하려고 한 의사가 바로 그 의사라고는 말하지 않았고, 어떤 의사가 그렇다고만 하였다. 왜냐면 그 의사와 내가 아는 지인 역시 내가 다니는 교회의 장로라는 것 때문에 차마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좀 설명이 장황하였지만, 사실 어느 의사나 교회 혹은 절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생각하는 기준이 무엇이고 가치관이 어떠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다. 실제로 의사들은 찾아오는 환자마다 각기 다 다른 상황에 있으며 증상 역시 다 다른 상황이다. 그러기에 모든 의사들이 의사고시를 치르고 어렵게 취득한 면허 외에 실무를 습득하기 위한 과정을 거치고, 많은 임상을 할 것이다. 또한 히포크라테스선서를 하면서 의로운 의사가 되기를 바라고 진정한 의사로 거듭나기를 꿈꾼다. 환자에게 이로운 일을 할 것이며 해로운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많은 의사들은 첫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현실에 젖어들고 만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판단하여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으로 아무도 그것에 대하여 잘잘못을 지적할 처지가 못 된다. 다만 양심에 맡길 뿐이다. 그러나 다른 의사들 보다 더 존중하고 존경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슈바이처나 장기려 같은 사람들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허준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환자를 위하는 것이 바로 내가 아는 의사의 본분이다. 그러나 일부는 (지극히 일부는)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서 의사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본 도서의 저자 역시 이런 의사들에 대하여 환자들이 혹은 국민들이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매를 맞아도 왜 맞는지는 알고 맞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랑의 매인지 아니면 분풀이용 매인지는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근래 들어 이런 책을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요즘 우리 집안에 아픈 사람이 많아 어쩔 수 없이 이것저것 보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 대체로 의사들은 특히 양의는 환자에 대해 너무 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당장은 내가 아쉬워서 찾아가기는 하였지만 속으로는 의사 말을 듣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안 해도 되는 수술을 하라고 할 때도 그랬었고, 약을 이제 그만 먹어도 될 것 같은데 계속해서 먹으라고 할 때도 그랬었다. 헌혈을 할 때도 그랬었고 다른 병원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자기 병원에서 다시 사진을 찍으라고 할 때도 그랬었다. 특진료라는 명목으로 비싸게 받을 때도 그랬었고, 간단한 검사를 하는 것까지 개인병원보다 비싸게 받을 때도 그랬었다. 의사는 주차 요금과 자신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하겠지만, 지인의 병문안을 갔을 때에 주차 요금을 받는 것을 두고도 그랬었다. 한 마디로, 의사가 병을 고치고 몸을 회복시켜 주는 사람이 아니라 돈 잘 버는 직업인으로 거듭났을 때에 그랬다.
그러나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약국에서 약을 살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병원을 찾고 의사를 만나야 한다. 다리가 부러졌는데 나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는데 내가 아는 사람들을 동원하여 수술을 할 수가 없으니 병원에 가고 의사를 찾아야 한다. 또한 이런 저런 생각에 이 약은 먹고 싶지 않은데 다른 약을 먹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그 약이라도 먹어야 하니 찾을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현 제도가 그렇고 현 사회의 분업화상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찾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면서도 의사들이 진정으로 나를 자신 다루듯이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국민을 담보로 하여 의료분쟁이 일어났을 때에 절실하게 느낀 감정이다.
그렇다고 모든 의사들에게 허준처럼 행동하라고는 강요하지 않겠다. 모든 의사들이 장기려처럼 자신의 월급까지도 환자에게 도와주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모든 의사들이 슈바이처처럼 오지의 의료적 기회가 적은 사람들에게 많은 기회를 혹은 균등하게 주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다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기회에 할 수 있는 만큼은 히포크라테스선서를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말은 하고 싶다. 그것도 환자들을 위해 해당되는 항목에서 만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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