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춘순례
최남선/ 심춘독회 역/ 신아출판사/ 2004.05.06 초판/ 397쪽
최남선 : 1890년 4월 26일 서울 태생, 부친은 최헌규로 본관은 동주(현 철원), 자는 공륙(公六), 호는 육당(六堂)이다. 경성학당과 동경부립제일중학교, 와세다대학 고등사범부 역사지리과에서 공부하였다. 우리나라 근대 잡지의 효시인『소년』을 창간하여 신체시「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였으며,『아이들보이』,『새별』,『청춘』등의 잡지를 발간하였다.
민족대표 48인 중의 한 명으로 삼일운동에 참여하여「독립선언문」을 기초하였고, 이로 인해 2년 8개월간 복역하였다. 시대일보 사장,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 조선사편찬위원회 위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만주 건국대학 교수 등을 지냈다.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1957년 10월 10일 별세하였다.
심춘독회 :특별히『심춘순례』를 해석하기 위하여 만든 독서모임이다. 이들 모임에는 전주문화원 사무국장인 김진돈, JTV 전주방송 손상국PD, 국립민속박물관 이문현학예관, 신아출판사 이종호편집국장, 전라북도청 김승대학예연구사, 고래서예원 서홍식원장, 동국사 주지 종걸 등이 참여하였다.
언젠가 신문에서 이 책이 발간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당시 마치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적힌 내용이었는데, 나는『심춘순례』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있던 차에 그것이 무에 그리 대단한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립도서관에서 최근에 들인 책 서가에서 발견하여 궁금한 가운데 기쁜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봄에 방문하여 여행길을 순례하였다는 이 책은 한문투로 쓰였으며 물론 한글로 적은 곳도 있기는 하지만 그 당시 어투로 보아 현재와 사뭇 다르기 때문에 요즘 세대가 혼자서 원본을 읽기는 어려운 편이다. 이렇게 일부러 공력을 들여 해석하여 내놓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읽기에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보통의 수필이나 여행기처럼 쓴 것이 아니라 역사와 지리를 머리에 넣고 현 정세와 자연 그리고 학문에 관한 모든 것을 곁들여 적은 여행기이기 때문이다.
최남선은 독립선언서를 기초할 때에 불교계 대표로 나서기도 하였다. 이는 그가 불교 신자였다는 것이며, 당시 유명한 학자로 불교계에서 내로라하는 인물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불교 계통의 의미 외에 다른 일반 민속 즉 토속적인 토테미즘을 무시하는 듯한 느낌이 약간 들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일방적으로 깔아뭉개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무 효험이 없는 헛된 일이다 하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물론 현대적인 감각으로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전 풍습으로 보면 그것이 최고인 것으로 알고 살았던 조상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던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당시 육당이 이 책을 쓸 시점은 강점기로 숨이나 제대로 쉬고 있을 때인가. 그러다보니 1925년 3월 28일부터 약 50일 동안 순례길을 떠났으나, 그 중 4월 22일까지 26일 간에 걸쳐 호남과 지리산 서남부 일대를 순례한다는 것이 녹녹한 일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열차로 출발하여 대전을 거쳐 익산까지 온 후 협궤열차로 전주까지 이동하는 경로 역시 거리상으로 그리 만만치 않았다. 또한 당시 교통편 역시 현재와 다르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더하여 그 이후의 모든 여정을 거의 걷다시피 하여 적었으니 보고 느낀 육당의 감정을 고스란히 적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즈음에 전라도를 여행하고 민족 자긍심을 일깨우는 글이 나왔으니 희대의 이슈가 되었을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이 여행기를 신문『시대일보』에 연재하고 나서 1년 후 그 절반의 분량을 책으로 엮을 때에는 책의 제목은 오세창이 쓰고, 표지 삽화는 고희동이 그리고, 표제지는 정인보가 썼다. 다시 말하면 당시 최고의 지성들이 기쁜 마음으로 이 책에 대한 중요성을 표현한 것이다.
육당은 순례에 동행했던 석전 박한영과 함께 느끼고 때로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지금(당시) 조선이 하나하나 깨우쳐야할 것 그리고 지금 당장 바로 잡아야 할 것 등을 논하기도 하였다. 잘못된 곳이 있으면 바로 잡고 고쳐야 할 것이 있으면 미루지 말고 조선인의 기개를 높이며 그것은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말하기도 하였다.
육당이 지나간 길을 보면 서울에서 출발한 이후 첫 기착지에서 ‘백제의 옛 땅으로, 모악산에 오르다, 삼층 법당의 금산사, 최치워의 태산유적, 노령을 넘으며, 황매화 피는 백양사, 물외암으로 약사암으로, 경담선사의 운문암, 이백 년 선불장이던 구암사, 유군치 넘어 내장산, 삼신산을 끼고, 변산의 4대 사찰, 낙조의 월명암, 거룻배로 고부만을 횡단하다, 선운사와 도솔산, 병바위를 지나고 고창을 지나, 돌짐대를 찾아서 담양으로, 김덕령 장군의 고향, 성스러운 무등산 순례, 무등산 정상에 올라, 다시 무등산을 횡단하다, 조화의 절창인 적벽가, 모후산의 유마사, 조선불교의 완성지 송광사, 의천속장경의 새로운 발견, 방장 삼천 칸, 송광사의 암자, 장군봉 넘어 조계수 건너, 교학의 연총인 선암사, 조계산 비로봉에 오르다, 황량한 대각국사의 유적, 해동 선풍의 선양지 태안사, 섬진강을 끼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이런 코스가 바로 육당이 지난 길이었으며, 그곳에서 육당이 느낀 점을 적은 수필이라 할 것이다.
‘심춘독회’는 이런 코스를 찾아 답사를 하면서 예전에 보이던 것과 현재의 차이점을 알려주기도 한다. 오래전 사진을 첨부하고 현재의 모습과 비교하여 고증적인 감각도 선사한다. 덕분에 나는 내가 마치 100년 전 조선시대에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사는 곳이 호남이니 가본 곳이 많으며, 여행을 좋아하니 들러본 곳이 많으며, 무슨 일이 없어도 일부러 찾아가기를 좋아하니 구경해본 곳이 많다. 이 책에 나온 곳도 거의 대부분 가본 곳이기는 하지만, 옆으로 지나가거나 현지에 방문하였어도 미처 세부적인 곳까지는 들르지 못한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언제 시간을 내어 세세한 곳까지 다시 들러봄직한 곳이다.
또한 이 책은 곁에 두고 다시 읽어볼만한 책이다. 그냥 한 번 훑어보고 덮어서는 읽었다는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마치 흥미 소설처럼 치부하여 읽고 던져두기에는 아깝다는 말이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아름다운 시구가 되고 자연을 한 장의 종이에 옮겨놓은 듯한 수채화를 연상시킨다. 참으로 아름다운 글이다. 그래서 두고 두고 읽어도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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