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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 속 고전

꿈꾸는 세상살이 2016. 9. 5. 18:49

내 서재 속 고전

 

서경식/ 한승동 역/ 나무연필/ 2015.10.04 2쇄/ 263쪽

 

서경식 :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 조선인 2세로 출생, 와세다대학교 문학부 프랑스문학을 전공하였고, 도쿄게이자이대학의 현대법학부 교수로 있다. 2006년과 2007년 성공회대 교수로 근무한 경험이 있고, 한국의 다양한 지식인과 예술인 등과 함께 교류하였다. 19995년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수상하였고, 2000년 마르코폴로상, 2012년 김대중학술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국내 편찬 책으로『나의 서양 미술 순례』,『청춘의 사신』,『소년의 눈물』,『디아스포라 기행』,『난민과 국민 사이』,『언어의 감옥에서』등이 있다.

 

한승동 : 1957년 창원 출생으로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1988년 한겨레신문을 창간할 때부터 현재까지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32년간 도쿄 특파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저서로『대한민국 걷어차기』,『지금 동아시아를 읽는다』, 역서로는『우익에 눈먼 미국』,『시대를 건너는 법』,『나의 서양음악 순례』,『보수의 공모자들』등이 있다.

 

이런 유형의 책은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어느 유명인사의 서재를 중심으로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인이란다. 처음에는 이름을 보면서 왜 굳이 번역까지 해가면서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가 한국인이라는 선입견에서 말이다. 그러나 첫 페이지를 펴는 순간 재일 동포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렇다면 일본어로 쓰인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나온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일본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그러면 서경식이라는 사람은 우리 한국인이 알아야 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인가. 아니면 그렇게 보아 주어야 할 정도로 앞으로 전도 창창한 사람인가.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그가 한국에 정통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한국인의 후예로 재일 동포 2세라는 것도 무시 못 할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활동하였었다는 것은 우리 정서를 잘 알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빼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 그의 형은 19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즉 사상과 관련하여 복역하였고 저자가 그의 구명운동을 주창하였다는 것이다. 이 사건 이후로 저자는 일본의 우경화를 우려하면서 글을 썼고, 예술과 정치의 관계, 국민주의의 위험성 등을 화두로 글을 쓰기도 하였다. 이른바 이념적 갈등의 극복이라는 주제로 묶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여러모로 한국의 실정에 부합되며, 한국인의 정서로 일본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던 것에 대한 저변이 깔려있다고 보아도 될 듯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런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안는다. 말하자면 그런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고, 오히려 문학적인 내용이 많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읽는 문학서라 하더라도 순수문학의 비판 정도가 아니라, 왜 그런 내용이 나왔을지에 대한 원론적인 비판을 가하면서, 사람의 기계에 대한 몰락 혹은 사람의 물질화 등에 대하여 회의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을 인간답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고, 사람을 도구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에 인간의 단편화를 저항한다는 말로 머리말을 장식한다. 그리고 내용으로는‘클래식의 감명, 그 심연의 뿌리를 캐는 즐거움’으로 시작하여, 살아남은 인간의 수치, 그럼에도 희망은 있는가로 이어진다. 다음에는 노예노동의 고통조차 넘어서는 인간에 대한 탐구욕, 그리고 망각의 절망 속 어렴풋한 희망의 가능성에 대하여,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동시에 읽어내는 즐거움을 다룬다.

그 다음에는 현대의 지식인들이여 아마추어로 돌아가라, 그대는 침묵으로 살인에 가담하고 있는 것은 아니가, 비관적 현실을 냉철하게 응시하는 낙관주의자를 만나다, 관용은 연민이 아니라 생기발랄한 관심이다, 미감을 즐길 시간은 오렌지 향보다 길지 않다, 죽음을 금기시한다는 건 삶을 방기하는 것, 인간이라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기 위하여, 백장미를 기억하던 이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풍화되는 투쟁 하지만 정의의 실천을 게을리 말라, 참극의 유대인 거리에 남은 것과 변한 것, 용기 있는 패배자 식민주의 섬기던 이성을 구원하다, 인간 해방을 실현하는 그릇으로서의 국가를 옹호하다, 자본주의 시대의 인간 그 고뇌의 원형을 다룬다.

끝으로 서경식과 권영민, 이나라, 이종찬 등이 대담을 하고, 그 내용을 글로 표현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인용한 책 혹은 자신이 아끼고 있는 책들의 목록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지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나도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책들은 거의 전부가 고전적이면서 전문적인 책들이지 싶다. 말하자면 저자는 탁월한 지식의 소유자이면서 식견이 매우 높다고 표현해야 맞을 듯하다.

예를 들어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은『사이드 음악평론』,『오리엔탈리즘』,『문화와 제국주의』,『지식인의 표상』등이 그렇다. 그런가하면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하여 돌아온 프리모 레비의『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이것이 인간인가』가 그렇다. 빈곤을 정면으로 묘사한 프리드리히 엥겔스의『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조지 오웰의『버마 시절』,『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동물농장』,『카탈루냐의 찬가』,『1984』, 루쉰의『고향』, 「망각을 위한 기념」, 니콜라이 바이코프의『위대한 왕』도 있다. 이브라힘 수스의『유대인 벗에게 보내는 편지』, 네델란드 석학 요한 하위징아의『중세의 가을』, 미셸 드 몽테뉴의『몽테유 여행 일기』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의 『수상록』보다 더 유명한 책이다. 케네스 클라크의『그림을 본다는 것』,필리프 아리에스의『죽음의 역사』, 가토 슈이치의『양의 노래』, 원제는『백장미』인 잉게 숄의『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원제가『이탈리아 레지탕스 사형수의 편지』였던 피에로 말베치 외 여러 명이 엮은『사랑과 저항의 유서』,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어느 가족의 대화』, 가와시마 히데아키의『이탈리아 유대인의 풍경』,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의『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 마르크 블로크의『이상한 패배』, 빈센트 반 고흐의『반 고흐 서간 전집』등이 소개되었다.

 

이름만 들어도 어려운 냄새가 나고 발음도 잘 돌아가지 않는 책들이다. 그러니 내용도 어려울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잘 안 읽으니 이런 책을 읽은 사람들은 유식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남들이 하는 것을 안 하면 뒤처지지만 그렇다고 남들이 하는 대로만 하면 남보다 앞서갈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남보다 앞서 가려면 남이 하지 않는 것을 추가로 하여야 한다. 세상살이가 참으로 묘한 이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사건은 1943년 10월 16일, 독일이 이탈리아에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처음으로 유대인을 무차별 체포하기 시작하여 1022명을 인질로 잡았으며, 이들이 6일 밤낮을 기차로 달려 포로수용소에서 수용 된 후,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자는 겨우 15명이었다고 한다. 그간 얼마나 잔혹한 참상이 있었는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