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독후감, 독서

일제 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꿈꾸는 세상살이 2016. 9. 8. 07:20

일제 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선안나/ 피플파워/ 2016.08.01 초판/ 309쪽

 

선안나 : 경남 울주 태생으로 성신여자대학교에서1950년대 동화 아동소설 연구로 국문학 박사를 받았다. 이후 건국대 인문과학연구소, 성신여대, 단국대 등에서 근무하였다. 199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고, 한국어린이도서상, 세종아동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열린아동문학상을 받았다. 현재는 서울교육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집필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저서로『온양이』,『삼거리점방』,『천의 얼굴을 가진 아동문학』,『잠들지 못하는 뼈』등 수십 권이 있다.

 

이 책은 광복을 염원한 사람들, 기회를 좇은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말하자면 일본이 우리를 강제로 지배하던 시기에 얼마나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했느냐 아니면 자신의 영달을 위해 노력하였느냐 하는 것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던 인물 아니 알기는 잘 알고 있었지만 속속들이 정말 어떤 사람이었는가는 잘 알지 못하던 인물들에 대하여 세세히 거론한 것은 정말 마음에 드는 대목이다. 저자는 이 책을 어린이들이 보면 좋겠다고 하였다. 물론 성인이 보아도 좋다. 그만큼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하여 적었으니 올바른 역사관 혹은 민족사관을 키우는 데 좋다는 말이다.

지금 박근혜는 국사교과서를 바로 잡아 다시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졸속으로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국정 국사교과서를 만들겠다고 장담하고, 거기에 올바른 국가관을 집어 넣겠단다.

그런데 그 책을 누가 집필하는지는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말하자면 사관이 비뚤어진 사람들이 집필하면 국민들이 들고 나서서 반대할 것을 두려워하여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책을 쓰겠다는 뜻이다. 그것은 자신이 그런 내용을 인정하는 꼴이다. 이런 사실들을 모르는 국민들은 훗날 이렇게 하여 쓰여진 국사 교과서를 놓고 배우면서 조상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국가를 위해 일했는지 왜곡하여 섬기게 될 것이다. 이런 사관이 바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이런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이 일제 치하가 끝난 뒤에도 계속하여 권력을 잡고 지도자라 자칭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래서 지금처럼 친일분자를 처단하지 못하고 민족사관이 올바르게 심어지지 않게 된 것이다.

우리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이름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이근택, 김갑순, 배정자, 현영섭, 방응모, 김활란, 백선엽을 들어 민족의 반역자 혹은 극도의 친일주의자라 부르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자진하여 친일을 한 자이며, 그런 사람들은 조선인을 볼모로 혹은 조선인을 고발하고 처단하는 일에 앞장 선 사람들이다. 친일주의자는 일본인이 보기에는 어떻게 조선인을 믿을 수 있느냐고 한다. 그래서 본보기로 더 심하게 조선인을 학살하고 악랄하게 추적하여 밀고하는 사람들이 바로 자발적으로 친일주의자가 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기회를 보아 자신을 부정하거나 혹은 숨기면서 일본인으로 이름을 바꾸거나 혹은 아예 창씨를 하여 새로 생긴 성씨로 일본인처럼 행세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동포를 이용하여 부자가 되거나, 그들의 노동력을 수탈하여 경제력을 쌓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찾아 밀고하거나 직접 나서서 훼방하고 응징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일본에 빌붙어 일본을 바라보면서 아부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기회가 되면 이익을 좇아 나서고 조금 불리하다 싶으면 지금은 기회가 아니다 하면서 잠시 뒤로 빠져 있는 이중인격자로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권력을 이용하다가 전세가 뒤바꿔져 목숨이 위태로울 때에는 다시 등장한 권력자에게 아부하여 목숨을 구걸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이런 사람들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당시 조선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지배를 당하던 시대였고, 이런 상황에서 많은 조선인들이 비분강개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하였던 시기였다. 이들은 자신의 안위와 가족의 염려는 뒤로 하고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의 자금으로 사용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하는 독립운동과 더불어 민족혼을 일깨우는 운동에 앞장선 사람들이다. 이들은 나라가 어려운 때에 자신의 영달보다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위해 매일매일 고군분투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느 한 가지 국가의 도움 없이 반대로 자신들 개인의 힘으로 국가를 지키기 위하여 헌신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해방이 되면서 미군은 한국의 정치 질서 안정화에 나설 인물을 찾아야 했다. 거기에는 조선의 지리를 잘 알고 조선인의 특성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사정에도 밝은 사람이면 더욱 좋았다. 그래서 등장한 인물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간 사람들이며, 이미 서양 문물을 익힌 사람들 즉 일본식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소위 친일활동으로 닳고 닳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군은 이런 속사정을 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한국의 정치질서 안정화 과정에서 미국의 지시 전달을 잘 이해하고 지도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친일분자를 권력자의 자리에 앉히고 만다. 이 일로 인하여 한국에서의 친일분자 색출은 불가하게 되었고, 오히려 그런 자들이 민족을 지배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그들은 경제력을 쥐었고, 권력을 쥐었다. 그들은 미국이나 일본의 권력층과 연계하여 상호 이익을 좇아 나서게 되었으며, 그들의 비호아래 지금도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요즘에도 정치권에서는 자신의 입지가 조금 약하다 싶으며 으레 미국에 가서 미국 대통령의 우호적 발언 즉 찬성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아직도 친일분자들이 쓰던 그런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긴 뼛속까지 철저하게 친일분자이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들 가는 미국을 왜 안가느냐고 물으니 노무현의 대답이 걸작이다. 내가 왜 미국에 가느냐, 차비 아깝게 뭣하러 미국에 가느냐고 한 것이다.

 

이에 반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초개와 같이 버린 사람도 소개하고 있는데, 이회영, 안희제, 남자현, 이육사, 안재홍, 김마리아, 장준하가 그런 사람들이다. 이들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감옥에 가는 것은 다반사이며, 심한 고문으로 불구가 되거나 정신적으로까지 당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감옥에 투옥되기는 일상 있는 일이며, 가족마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서는 것은 정말 지금 읽어도 눈물이 날 정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들은 잡아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 즉 같이 일하다가 변절하여 자진 친일분자가 된 사람들이 문제였다. 예를 들면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를 방해하고 오히려 일제를 부추긴 사람들, 이로울 때에만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사람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겉으로는 국민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본의 비호를 받으며 경제적 지원을 받아 조선인을 회유하고 선동하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국가를 팔아 개인의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었다. 군인으로서는 독립군을 잡으러 나선 일본군 장교 백선엽, 그리고 이 책에서는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두 군데나 나오는 동일 배역의 박정희, 지식인으로서는 내선일치를 부추긴 이화여대 총장의 김활란과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이면서 조선의 스파이로 접근한 배정자, 언론인으로서는 일본의 대변지 역할을 자임한 조선일보의 방응모 등 우리 기억 속에서 좋은 사람,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했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사람들이지만 사실은 그 이면에 숨겨진 과거를 고백하거나 사죄하지 않고 오히려 큰 소리 치면서 살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보고 나서 책을 덮어도 오른 혈압이 내리지 않는다. 나의 혈압이 오르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정당한 성과라면 상관이 없을 것이지만 조선이라는 국가와 백성을 이용하고 배신하여 이룬 값이기에 치가 떨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장사를 하여 부자가 되었다면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 조선 사람들을 이용하고 국가를 팔아서 부를 축적하였기에 화가 나는 것이다. 민족혼을 팔고도 모자라서 독립군의 등을 치고 간을 빼먹는 행동을 하였기에 그런 것이다. 혼자 보기 아까운 책이다.

'내 것들 > 독후감,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스이즈 타이완  (0) 2016.09.12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0) 2016.09.08
내 서재 속 고전  (0) 2016.09.05
디스이즈 오키나와  (0) 2016.09.05
김우중과의 대화  (0) 2016.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