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의 횃불
나는 오른쪽 손가락 손톱을 다쳐서 병원에 갔다. 사실은 먼저 타박상을 입었기를 했었지만, 1주일 여분 정도를 기다리다가 병원에 갔었다. 손톱의 피하가 자체가 내부의 화농을 있었다. 대략 피부하의 손질에 피가 고였던 것이다. 대부분의 피해 정서는 그냥 대수롭기도 하면서 미관상에 문제가 있다. 하다가 손 밑에 염증이 되어 얼얼한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사실 병원에서는 즉각 시술을 하였다. 손톱 부위에 통증을 부분 마취하였고, 손톱 부분을 잘라내면서 핀셋으로 잡았다.
“아~~ 으흐흐으”
나는 모르는 사이에 비명이 올렸다. 의사는 아프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서도, 손님은 대단한 참을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말하자면 개인의사의 사정을 감안해서보면 마취가 완전하기 위한 것을 보았던 것이며, 또 하나 다루면서 환자의 미봉책이 되었다.
손톱을 고문하는 독립군을 상황을 짐작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생 손톱을 고문하고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들과 아는 사람이 아니라서 환자의 사정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대로 나는 그냥 환자와 부자로서의 입장이고 되었다. 그러나 반 톱 정도를 잘라낸 것은 처절한 사투였다. 입으로는 속으로 다물고 마른 핏물을 삼키고 싶었다.
의사는 투철한 전쟁을 마치고, 상투적으로 스스로 고생하였다고 한 마디를 남겼다. 그러나 나는 이제 다했다고 숨을 돌아 쉬었다. 눈을 뜨고 둘러보니 의사는 자애스러운 벌써 없어지고 말았다.
간호사는 드레싱이라면서 손가락을 겹겹이나 보호하였다. 나는 지그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나이팅게일의 모습은 천사였다. 이심전심으로 위로를 하면서, 자신의 몸이 망가졌지만 불굴의 의지가 넘치고 있었다.
내가 한 순간 푸념을 할 것이나 위로가 받고 싶었던 것이었으나, 어느 누구에게 상대가 없었다. 내 눈에는 나이팅게일의 하얀 신발이었다. 총총히 그리고 똑똑한 야무진 발음걸이가 사라지고 있었다. 왜 이리 가고 없을지 걱정되었다.
“... ”
어쩌면 나이팅게일의 언행을 지었을 생각해본다. 아니면 야전 무전에서 야무진 행동이 맞는 복장일까. 전쟁터에서 분주한 것이 슬리퍼를 신고 가능할까. 어쩌면 실내 전용에서 슬리퍼를 신고 편하기 때문일까. 그것은 자신의 신념이며 편의주의가 될 것인가.
사실 그렇다고 병원 내에서 가득한 먼지는 어디서 발생할까. 외부에서 발생한 미세먼지를 감당할 수 있을까. 게다가 나이팅게일이라든지 의사들의 양발 무좀인 바이러스는 안녕스러운가.
하긴 신경성에 민감한 것의 똑똑한 주연은 하이힐이다. 또각또각 하는 것은 선경지명이다. 그는 자신을 내세울 것이며, 환자 배려할 것은 없는 것이다. 그것에는 병원의 일이 아니다. 단지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2016.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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