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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봄의 기적

꿈꾸는 세상살이 2017. 3. 26. 13:52


 

바라봄의 기적

 

주대준/ 마음과 생각/ 2012.05.10/ 265쪽

 

주대준 : 경남 산청 산골 태생으로 초등학교 때 부모를 여의였다. 그 후 야간고등학교를 고학으로 마치고 육군 전산장교를 통하여 사회를 시작하였다. 그 후 청화대 전산실 창설을 통하여 들어갔으며 정보통신처장, 초대 행정본부장, 경호차장을 역임하여 정년을 마쳤다. 그리고 카이스트대학교의 초청으로 홍보부청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런 경력만을 본다더라도 화력하다. 어린 시절에 곤난한 시절을 보냈지만 특이한 기독교의 신앙심을 가지고 이었다. 일반이라면 설명하지 못하고 설득하지 못하겠지만, 어린이라면 일방적이면서도 여리고 유순하면서 신앙심이 싹 텃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청와대에서 20년 간을 근무한 사람이다. 일반이라면 절대 허용하지 않는 군주의 측근을 놓고 거느리겠지만, 대대 이어가면서 근무하였고, 집권자가 바뀌면서도 승승 진급이 올라가는 케이스였다.

 

왜 이런 특이한 사람이 있었는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사람들의 일이란 어느 귀신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처럼 자기 스스로 노력하면서 모든 것을 계획 세우고 실천하다가 이룬다는 것은 없다. 더구나 저자인 주대준처럼 청와대의 근무에다가 20년 간을 한 층 더 진급한다는 것은 인력외의 도움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의 도움이라면 그것도 불가할 것이다.

 

오로지 자신이 임금처럼 믿고 의지하면 믿고 거느린다고 할 수 있겠지만, 현대에서 5년마다 변하는 권력이라면 권불 10년이 아니라 권불 5년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심장에서 20년간을 근속한 것을 비유하면 권불 5년이 아니라 20년의 절반인 권불 10년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면 일개 하급부 직원이 승승 진급하면서, 상급자가 내치는 사람이 버텨낼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종교적인 차원에서 기독교의 주이신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본다. 그것은 사람의 희망대로 그리고 자신의 신념대로 노력하여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청와대에서 기독교 신도들의 모임 즉 신우회를 주관하여 이끌어 나가는 것이 종교적인 차원인 정부이기 때문에 터부시키고 내모는 격이 있다. 그런데 그런 빌미로 타락한 사람 즉 현지에서 도태되고 물러나는 사람이어야 하겠지만 오히려 상급자를 물러내고 하급자가 그 직급으로 올라가는 것이 되었다. 말하자면 사람의 힘으로 계획하고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애초에 계획된 대로 이끌어가는 사람이 된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영화를 보면, 애굽이라는 세력권을 벗어나 가나안으로 이끌어 가는 사람이 모세가 있다. 모세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며 적절한 계시를 통해 민족의 지도자가 된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계획대로 지도자로 인정받은 사람이다. 그것은 순전히 모세 의도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대로 유대인들의 지도자로 삼았던 것이다.

 

우리의 주대준은 모세와 비교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한정된 역할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의도대로 이끌어지는 심부름꾼인 것이다. 그런다면 심부름꾼은 자기의 의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시하는 지배자의 의지대로 실행하는 뿐이다.

 

기독교인들의 심정이라면 당연한 것이 되겠지만, 비기독교들의 생각이라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 믿기도 힘든 사실이다. 어느 귀신이 도와야 한다는 말을 한다면, 조상의 말대로 이를 곧이 듣는 다면 어느 귀신이 도와야 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어떤 귀신보다 힘이 센 귀신은 누구일까. 귀신은 여러 파가 있고, 자기가 가장 세다고 나불대지만 기독교에서는 만물의 권력자이며 귀신들을 모두 정복하는 힘이 센 사람 즉 하나님이 유일하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에서 유일신이며 병을 낫게 하시기도 하며, 귀신의 임기응변식 처방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준비된 것을 계획대로 착착 실행하시는 신, 권력자들의 왕이신 분은 하나님이라 귀결된다. 물론 종교적인 해석이다.

 

많은 기독교들이 있으면서 주대준처럼 희망을 가진 꿈이 있다. 예를 들어 주대준처럼 꿈꾸는 사람이 20명 동시다발이라면 그런 일을 20명에게 부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사람의 소망대로 펼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의지대로 펼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 제목이 바라봄의 기적이다. 꿈을 현실로가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심장에서 기적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일반 기독교들이라면 누구든지 주대준의 제목을 비난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내가 사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대로 산다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