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김태훈, 남해의 봄날, 2016.11.21, 304쪽
김태훈 : 경남 창원의 경남도민일보 문화부 기자를 거쳐, 문화컨텐츠에 관심이 많았고 정책 및 홍보 그리고 음악에도 일했다. 신문사 공동으로 스토리텔링 연구소를 설립하여 소장을 맡았으며, 또다른세상협동조합도 설립한 후 사무국장을 맡았다.
성심당은 1965년 밀가루 두 포대를 자산으로 삼아 대전역 노점 찐빵으로 시작하였다. 60년 이후 더불어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신념으로 매월 3천만 원 이상 기부하여왔다. 2005년 화재로 위기를 맞았으나 직원들이 헌신의 노력과 시민들의 호응을 힘입어 재기하였다.
2014년 카톨릭 교주 프란치스코 교황을 맞아 성심당의 빵으로 점심을 제공하는 영광을 입었다. 교황이 대전에 들렀으나, 사전 탐방으로 물색한 하루 식사인 것이다. 교황은 카톨릭의 대부로 종교적 처세와 가르침을 본 삼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선정한 식사와 장소도 교인들에게 합당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성심당(聖心堂)이라는 당호는 성인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며, 교인으로서 더불어 돕고 살아간다는 듯이 담겨있다. 한국전쟁 때 흥남의 1.4후퇴를 구사일생으로 은혜를 입었으며, 카톨릭 교회를 방문하여 목숨을 부지하였다. 게다가 거저 얻은 밀가루 두 포대를 많은 포부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은혜 받은 것에 감사하여 되돌려 줄 수 있는 처지와 남을 거둬 살릴 수 있도록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얻은 이익금이 남고, 얼마든지 남의 눈치를 보면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내 성심을 다하여 떳떳이 베푸는 것이며 남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포부라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은 종교적 약속이며 절대자에 대한 서원이다.
종교인의 회개와 충성은 일반인과 차원에서는 약간의 이론적 차이가 있겠으나, 성심당은 일하며 돈을 비축하는 목적이 있으나, 미사에 참석하기 쉬운 성당에 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성당에 가까운 부지를 얻어 신장개업을 하였다. 당시 빵을 만들고 판매하는 장소가 유망한 곳이 아니라 번화가 한 블록을 지난 곳이었다. 성심당의 시작은 출발부터 인간적인 판단을 넘어 절대자에게 충성하며 의지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 즉 인간적 삶의 목적을 초월한 종교적인 삶을 지향하였다. 한동안 많은 자금을 얻었지만 자신이 치부하기보다는 종업원들에게 배분하며, 종업원 차원을 떠나 경쟁자의 입장으로 권장하며 지원하기도 하였다.
기업의 성장이 어떤 계기가 있을 것이지만, 성심당은 독과점의 유도대로 만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신제품의 개발과 소비자의 형편을 헤아리는 마음을 실천하였다. 종교적인 차원에서는 보이지 않는 도움이 오면서, 다시 노력하는 각오와 달란트를 채우는 희생이 따르는 것이다.
경쟁 빵집에서 고발한 성심당의 증축한 공장을 빌미를 놓고, 시에서 강제 철거를 집행하였다. 소위 철거 용역동원 반장이 돌아가서 시에 사정을 하였다. 자신이 어렸을 적에 성심당의 도움을 받은 것을 배신할 수 없다는 사유였다. 성심당은 철거로 인한 파산을 모면하였으나, 도움을 제공한 덕으로 부득하게 얻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이 종교적 차원임을 실감하였다. 개인의 도움을 받더라도 그 대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에게 복종하며 모든 것을 돌려드리며 참 종교인이 되기를 원하는 의도였다.
우리 주변에 성심당처럼 오랜 역사가 있는 빵집이 있다. 다른 빵집에는 성심당처럼 파악한 내용이 없다. 형편이 다르겠지만 헤아릴 정도의 가치는 있을 것이다. 지난 역사에서 살펴보면 패악하고 물질적 폭리를 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제 2017년 3월 10일, 세월호 파선시에 머리를 만지며 잘했다고 큰소리친 사람이 탄핵되었다. 법적인 책임이 없다고 인정하는데도 자신의 부정과 불공평을 주장한 것은 잘못이라는 주문이다.
익산에는 이런 기업이 없는가? 발군하면 있을까? 뒷받침하여 국가적인 기업으로 키워 볼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도중인 3월 6일 특정 시의원을 불러냈다. 내가 무엇인지 부탁하려고 아부한 것이 아니라, 시의원은 시민과 시를 위한 심부름꾼이라고 하면서 밥값은 형편이 나은 시의원이 지불하라고 하였다. 공감한 시의원은 기쁜 마음에 동조하였다. 익산에 성심당처럼 홍보할 기업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였고, 바쁜 선거 준비 보다 더 시급한 사안이 무엇이냐고 물어도 공감하였다. 남들이 나를 쉽게 잊히면서 덮어줄 때, 나는 무엇보다 일분일초가 더 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단초를 실행하였다고 말하자 박수치고 성원하였다.
성심당이 이전 개업한 공장이 은행동 153번지는 어떤 곳인가. 당시 부지 확대 지역인데 한적한 이면도로 인근 대흥동이다. 모나미153이라는 볼펜 한 자루로 성공한 모나미는 어떤가. 정말 어떤 숫자의 의미가 있는가? 살아가면서 자칫 잊고 마는 기업과 기업의 모토를 쉬이 버릴 것인가.
먼 미래를 담보로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을 공정하며 정통 코스를 가는 것이 바람적한 기업이라 말할 수 있다. 경제력의 몰빵으로 긁어모은다고 하더라도 영원한 기업이 되는 보장도 없다. 성심당의 더불어 사는 기업은 어려운 때에 서로 이해하며 돕는 것이 상생기업의 생리라고 말할 수 있다. 아직 성심당의 빵 한 조각을 구경조차 못하였지만 승승하면서 오랫동안 이어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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