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발렌타인데이에 먹는 그 맛

꿈꾸는 세상살이 2020. 2. 15. 11:55

발렌타인데이에 먹는 그 맛

 

입춘이 지나 낮 기온이 18, 포근한 느낌이 드는 날이다. 그래서인지 먹는 맛은 입에 달콤하기는 물론 마음도 녹여내는 그 맛이다. 그런 초콜릿 맛이 발렌타인데이 맛이 아니라는 것도 다 안다. 더 확대시키면서 초콜릿을 먹는 풍습으로 번져왔다.

나에게는 214일 금요일이 모임 날뿐!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니 달갑지 않았다. 그러자 간단한 점심으로 결정되었고 펄펄 끓는 곰탕으로 낙점하였다. 나는 초콜릿을 준비할까 고민하다가 곶감으로 정했으나 막상 시간에 대느라 잊고 말았다.

 

300년 경, 로마제국 클라우디우스 2세 황제가 강한 군대를 유지하기 위하여 금혼령을 내렸다. 그 와중에 죽고 못 산다는 연인이 나타나자 발렌티누스 주교가 혼배성사를 집전하였고, 눈이 뒤집혀진 제독은 214일 주교를 처형하였다.

496. 교황 겔라시우스 1세는 발렌티누스가 독재에 거역하며 순교한 날을 기념일로 정했다. 세월이 흐른 1382년 영국 시인 제프리 초서가 성일을 연인간의 사랑으로 대변하는 시를 지었고, 15세기에 이르러 순교라는 종교적 이미지가 사라졌으며, 단순한 연인 간의 사랑을 표시하는 종이카드에게 지위를 빼앗겼다. 19세기에는 초콜릿과 쿠키 등 달콤한 고백이 혀끝을 녹여냈다. 달콤은 입에 좋으나 먹으면 몸을 망친다는 명언만 남았다.

한국에서도 214일에 순교한 사람도 있다. 어머니께서 낳으시고 길러주신 분이 계셨기 때문에 성인이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 있을 뿐이다. 의로운 사람, 우러러 존경하는 사람, 조마리아와 안중근이 떠오른다.

안중근은 근대법을 따라 1910326일 중국의 뤼순감옥에서 집행되었지만 사형을 선고받은 날이 바로 214일이었다. ‘살아남기를 희망하지 말라, 억울하다며 항소하지 말라는 당부 아니 국가와 국민에게 누를 끼치지 말라근엄한 명령이 있었다. 친엄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독자생존하는 이립에 선 31살의 장남, 손가락 9개를 깨물다가 안타깝고 애처로운 자식을 놓아 보냈다. 어머니의 성품에 따라 단지를 보여준 기개. 숭고한 모전자전이 길길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동방에서 1936년 일본의 제과업체를 살리자는 아이디어가 번득거렸다. 안중근 의사의 죽음과 기미독립운동을 묻어버리려고 첫맛을 업고 초콜릿으로 포장하는 기발한 상술, 세뇌기술의 극치를 펼쳤다.

초콜릿데이 맛은 먹기 좋았으나 파헤쳐보니 변질된 기피 식품이었다. 나는 잊었다고 변명하지도 않았다. 발렌에 초콜릿이 편승하면 불가불가이지만 초콜릿에 발렌을 차용한다면 불가즉불가다. 내가 선택한 것은 국산이었고 두고두고 우려낸 맛이 바로 애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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