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야 미안해
코스모스가 한창 흐드러지게 핀 가을 길을 달리고 있었다. 넓고 곧지 않으니 한눈을 팔지 말자고 조심 또 조심, 안 그래도 신경을 써야할 농로 2차선 시골길이었다. 그런데 눈에 번쩍 들어온 것은 줄 선 전깃줄에 새까만 무리였다. 아니 벌써 제비가 떠날 시간인가? 아님 떠날 시간을 결정하려고 모이는 총회였을까?
‘제비가 왜 이렇게 크다니!’ 하며 바짝 다가보니 까마귀였다. 한동안 보기가 보물찾기를 넘어 천연기념물에 버금하였었다. 반가웠다고 내미는 손을 거부하면서 일제히 일어나 빈 논으로 내려앉았다. 중요한 말을 하는 중이라서 방해가 되었다는 반응표현을 보였었나보다. 까마귀와 나 사이에는 불통의 언어였음이 분명하다.
어릴 적에는 간식으로 까마귀를 잡아먹자고 눈을 뜨고 돌아다녔으며, 근간에는 까마귀가 몸에 좋다는 풍문이 돌아 씨를 말린 이유였다. 하얀 눈밭에서도 까만 옷을 입고 드러내는 떳떳함, 내로라 뻐기지 않으며 항상 겸손을 보여준 행실, 산야의 벌레를 먹다가 궁하면 곡식을 먹을 수밖에 없던 새였다.
삼국시대에는 ‘금갑을 쏘라’는 말을 알아들었고, 이어서 조선시대에는 오작교를 만든 ‘측은지심’과 먹었던 것조차 꺼내어 드리는 ‘반포지효’를 가르치는 효심을 눈치 챘다. 근래에는 구렁이로부터 목숨을 주고받는 ‘의리와 보은’의 귀감까지. 사람들은 먼 나라의 언어에 열풍이지만 정작 가까운 이웃 까마귀의 언어는 문외한이라니! 그런 까마귀의 속마음을 읽지 못해서 미안하고 미안했다.
한참을 서서 쳐다보았다. 다른 차가 달려오면 혹시나 놀라 날아 갈까봐 조바심을 넘어 흥분이 솟구쳤다. 그러고도 또 시간이 흘렀다.
춘삼월에 온 제비가 돌아갈 즈음 돌아온 까마귀였다. 제비가 한 눈을 팔면서 날갯짓을 설레발쳤다. 날렵한 재주를 믿다가 곤두박질 당했다. 강아지도 막대기를 물고 도와야 할 농사철임에도 시간을 내어 다리를 고쳐주었다. 이듬해 빈손으로 오기가 뭣해서 흔하디흔한 박씨를 물어왔다. 보은. 익히 알려진 진실이었으면...
까마귀에게는 그런 실화가 드러나지 않을까? 그것은 텃새 까치가 독차지하려고 조작한 결과임이 밝혀졌다. 인가 위에 틀어 앉아 ‘까치밥’까지 통째 먹고사는 새, 이미 우리나라를 떠난 철새를 두고 들먹이는 ‘오비이락’이라니... 까마귀는 애당초 빌미를 없애려고 뒤처리를 정리하고 떠난 신사였다. 벌써 도구를 활용하는 지능이 증명된 에티켓조였다.
코스모스가 지기 전에 떠나려나... 순수머릿결을 닮은 초지일관조.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까마귀는 못들은 척 떠났다.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주지도 못했다.
'내 것들 > 산문, 수필,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0) | 2020.02.19 |
---|---|
첫눈이 늦게 납신 이유! (0) | 2020.02.19 |
발렌타인데이에 먹는 그 맛 (0) | 2020.02.15 |
교회와 절의 조합 (0) | 2020.02.15 |
기생충과 버려진 사람들 (0) | 2020.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