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꿈꾸는 세상살이 2020. 2. 19. 09:23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나는 지금 성수감이 오를 때쯤 즐겨 불렀다. 노래를 잘 부르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달고 다녔었다.

마로니에 꽃을 만나고 싶었다. 지금도 꽃이 피고 있다니... 내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쉽게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피어났을 것이다. 흥겨운 곡조가 아니라 그저 밋밋했지만 하고픈 말을 전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호응을 받지 못했더라도 비슷한 동류에서는 무언의 후원자가 꿈꿨을 것이다.

지금 유행하는 보릿고개라는 노래가 있다. 보릿고개를 사전에 찾아보는 사라진 단어이지만 지금 유행하는 노랫말로 어떻게 버텨왔을까? 나에게는 마로니에와 보릿고개라는 단어가 번갈아 오버랩되었다.

마로니에는 높이 30m씩이나 크는 나무란다. 그러니 기둥은 2m가 되어야 견디겠지. 밤빵처럼 냉큼 먹고 싶은 말밤. 반 톨만 먹어도 현기증과 구토를 유발하는 독성을 껴안고 공생했을 것이다.

 

아롱대는 마로니에는 마음을 달래주는 나무, 무지개를 타고 피어나는 꽃, 누가 누구를 잊었다는 노래인가? 입하부터 하지까지 누리는데 지금도 만나보는 꽃인가? 마로니에공원은 동숭동에 있다. 고대하던 그곳에 서면 좌회전해 오가는 길, 분초를 다투며 뛰어가는 길, 거기는 일본산 7엽수 판이다. 그 마로니에는 투박하고 날카로운 7엽이지만 뒷면은 솜털이 많아 비단처럼 부드럽고 우아하다는 사라자(紗羅子)라 불린다. 이중인격성 나무.

누가 몽매 그리던 사람을 어찌 잊었겠는가? 노랫말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는 속내, 누구도 박탈하지 못한다는 울분을 토로한 것이다. 가수가 삐쭉 크면서 화려한 음색과 기교를 부리지도 못했지만 잊은 사람과 지울 수 없는 사람도 보고 싶었을 게다. 싫으나 좋으나 예쁘나 미우나 나를 낳아주시고 가르치신 어머니, 내 나라 내 땅이다.

포도청을 앞세우고 보릿고개로 몰아붙이는 외통수를 막는 비상(砒霜)이 있다. 사즉생, 먹었다고 거짓말하면서 식솔만 먹이는 비상약(備常藥)이다. 자기는 몰래 숨어 먹던 비상약(費常藥)은 누구나 아는 외통수 해독약, 물뿐! 지금도 환생하여 나타나는 어머니. 함자는 잊었지만 도저히 잊힐 수 없는 이름이다.

셜대가 동경을 숭배하라는 동숭동을 떠나 이사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뽑아내지 못한 나무는 부활한 세뇌용 잔재다. 가수가 부르고 싶은 이름은 현재형 마로니에가 아니라 벌써 잊혀진 과거형 나무다. 나도밤나무과 6엽 혹은 8엽인 쌍엽수로 회복시키고 싶은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