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그러졌어도 우산은 훌륭했다
동요에 나오는 노랫말이 있다. 파란우산 검정우산과 찢어진 우산이 이마를 마주대고 간단다. 왜 우산이 세 종류나 나왔을까? 그것은 간단하다. 각자 형편에 따라 들고 가는 것이다. 그럼 그렇지! 누가 누굴 탓할 것도 아니다.
어느 여름날 아침이었다. 화창한 날씨에 만족하여 기분이 좋았다. 걸어가기도 차타고가기도 어중간 한 거리를 박차고 나섰다. 성경책을 끼고.
지인들이 모두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허가가 난 환자였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이라면 부지런히 걸어서 기초체력을 아니면 기본 보행이라도 건사할 생각이었다. 내처지에 2km에 30분이라 조금 무리라 하더라도 무조건 도전한 하루였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갈 즈음에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아니 또옥똑 아닌가했더니 똑똑똑 그러다가 갑자기 천둥과 함께 붓는 비, 한여름의 소낙비가 들이닥쳤다. 아침에 맑았었는데... 곧 그치겠지...
그러나 예배가 끝나고도 그치지 않았고, 빗줄이 거세지면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주춤거렸다. 마음속으로는 ‘제발 비를 멈춰주세요!’를 빌고 빌었지만 들어주시지도 않았다. 소원을 포기한 신도들은 차까지 뛰어가서 조금 맞으면 해결되니 비를 멈추는 소원을 들어주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짝지를 찾아서 우산을 같이 쓰면 되겠지... 당연지사. 그런 사람들이 떠나면 현 위치로 다시 돌아올 사람은 없다. 누가 나에게 우산을 같이 써줄 사람은 없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나는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떡하나! 나는 환자인데 비를 30분 맞다니! 정말 이럴 수가...
나는 구세주를 만났다. 동년배 신자가 나타났고, 나는 어려운 처지라며 구차하게 부탁한다는 말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매물 차게 돌아섰다. 말로는 부드럽고 온화하게 그리고 교회일 때문에 지금 가야된다면서...
로비에 남은 사람은 한 명, 나. 교회가 남을 돕는 것이 원칙인데... 하염없이 빗사이로 뛰어가는 공상을 헤매다가 해결사를 만났다. 하나님이 우산을 들고 오실 수 없으니 메시지를 보내셨나보다. ‘형님! 여기 계셔요?’ 6년 늦은 학교 후배, 그러나 교회의 장로가 집사서리에게 그런 말이라니! ‘우산이 없어서 차도 없고...’ ‘알았어요. 차에 우산이 3개나 있어요. 금방 갔다 올게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말밖에 없다. 한참 지나니 아무리 찾아도 없다면서 쭈그러진 우산을 들고 왔다. ‘그럼 나보고 어떡하라고..’는 말도 못했다. 그러나 임낙찬은 ‘걱정마세요. 모셔드리면 됩니다’ 말했다. ‘그렇지! 중소도시 도심이니 아무리 늦어도 그 정도는 되겠지?’ ‘그럼요. 걱정마세요.’ 한참 가는 중에 전화 통화내용. ‘임사장! 왜 이리 늦어?’ ‘알아요. 금방 갑니다.’ 나는 응원을 했다. ‘바쁠수록 천천히! 새옹지마.’
'내 것들 > 산문, 수필,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탈탈무드17-나는 초보운전 (0) | 2020.03.02 |
---|---|
탈탈무드16- 바이어를 모신 그랜저 렌트카 (0) | 2020.03.02 |
14탈탈무드-우울한 삼일절에 생각난 단어 (0) | 2020.03.02 |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0) | 2020.02.19 |
첫눈이 늦게 납신 이유! (0) | 2020.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