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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속멋

꿈꾸는 세상살이 2020. 10. 6. 13:09

한국인의 속멋

 

한국에는 신미양요를 거쳐 외국인이 들어왔다. 그리고 기독교가 퍼지면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점차 알려졌다.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고 알 수 없는 미지였다. 쇄국정책과 유생들이 주름잡는 골수주의자라고 본다.

그럼에도 한국인의 멋은 있었다. 번듯한 비싼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멋이다.

한국에는 부자유친이 있고 붕우유신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도 도리가 있고 서로 사랑하는 친밀감이 있다는 말이고, 벗 사이에도 도리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가족 간과 타인에게도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는 말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산비탈이거나 거친 돌밭에서는 소를 쌍으로 멍에를 엮어 두렁을 꾸미지만, 평지와 지름진 논에서는 외멍에를 활용한다. 힘이 센 소라도 혼자 할 수 있는 곳과 둘이 힘을 합쳐도 고생하는 곳이 있다는 말이다. 외국인이 보기 힘든 소 멍에와 두 마리를 동시에 활용하는 쟁기를 보았다. 신기해서 한참 보다가 노인에게 왼쪽 소와 오른쪽 소 중에서 어느 소가 일을 잘 하나요?’ 물었다. 그러나 노인은 못 들은 척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외국인은 화가 났지만 참고 다시 소 두 마리 중에서 어느 쪽이 힘이 센지요?’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한참 지나자 일이 끝났고, 노인은 다가와 귓속말로 오른 쪽이오!’ 말했다. 외국인은 일하다가 거기서 대답하면 되는데 왜 일을 끝내고 대답하나요?’ 물었고, 노인은 하하하, 그것은 당연하지요. 두 소가 들으면 서운한 소가 생길 것이고, 한 소는 우쭐댈 것이오대답하였다. 소도 협동하며 격려하는 친구가 필요하다. 일하는 소에게 말이 통하지 않아서 붕우유신을 가르칠 수는 없으나, 노인 스스로 모범을 보여주는 실천이었다.

만일 쌍둥이를 두도 작은 애가 예뻐요 큰애가 예뻐요?’ 하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될까요? ‘둘 중에 공부는 누가 잘하나요?’ 물으면 정답이 있나요? 누가 착한지를 물어도 될까요? 묻는 것은 자유지만 대답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대답은 하더라도 옳고 그름에 따라 다른 답이 있다는 말이다.

그럴 때 공부는 둘 다 똑같아요!’ 할 수는 없다. 그럴 때 ! 작은애는 수학을 잘하고 큰애는 영어를 잘해요!’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이른바 뜻을 담은 동문서답이다. 키가 큰애는 이래서 좋고 키가 작은애는 이래서 좋은 점이 있다고 하는 말이 신통방통한 대답이다.

두 아들이 있는데 큰애는 나막신을 팔고 작은애는 우산을 판다고 한다. 비가 오면 큰애 때문에 걱정이고 마른날이면 작은애 때문에 걱정이란다. 그런데 비가 오면 작은애 때문에 웃고 마른날이면 큰애 때문에 웃는다고 하면 된다.

한국인의 내면을 잊지 말고 길이 보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