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달챙이를 보았나?

꿈꾸는 세상살이 2020. 10. 6. 13:46

달챙이를 보았나?

 

어머니는 보릿고개를 넘으셨다.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하지만 대충은 알만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마당에 티끌이 있다면 저녁밥 먹기 전에 쓸고, 밤새 눈이 쌓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쓰는 것도 거들었다. 식수가 부족하다면 물동이를 지고 오는 것을 도왔다. 아궁이에 짚풀을 여미면 내가 때는 차례라는 것을 알았다.

여름에는 보리를 한소꿈 끓였다가 대 보퉁이에 담아 걸어놓는 것도 알게 됐다. 보리는 처음부터 논스톱으로 밥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 타임을 주고 쌀과 함께 섞어 밥을 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이때 쥐와 고양이가 빼앗아 먹어버린 적은 한 번도 기억이 없다. 아마 도둑도 보리밥은 뻣뻣하다며 먹기 싫어했을 것이다. 요즘 별미로 먹는 보리밥도 두 번 재치는 것이 정설이다.

밥을 짓다가 한바탕 밥물이 끓어오르면 당사자가 직접 물방울을 세어보다가 멈추는 것도 요령이다. 한눈을 팔다보면 뜨거운 가마솥 주변의 수증기가 말라버려서 가늠하기가 힘들다. 가마솥에서는 더디 끓고 더니 식으니 그것을 조절하는 것이 기술이고 요령이다.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나에게, ‘10분 지나서 다시 때라하고 지시하셨다.

그러나 나는 ‘10?’ 시계를 보고 정확히 세어보는 것도 아니니 대충 짐작하고 불을 땠다. 수증기가 얼마나 나올 때까지 때야 되는지 언제 꺼야 되는지 몰라서 불안함도 들었다. 어머니께서는 정지에서 나가셨으니 언제 돌아 오실지도 모르는 오리무중이었다. 한편으로는 손오공처럼 나타나셔서 동작 그만이라고 하시겠지 생각하였다. 그래도 부엌으로 들어오시지 않았다. 나도 불 때기를 멈췄다.

여기 있는 짚풀을 다 땠으니 더 가져다 때야 되는지 이제 멈춰야 되는지, 궁금하면서도 불안해졌다. 먹을 밥이라 하지만 여름에 뜨거운 불을 때는 남자 아이가 얼마나 알 것이며 얼마나 부엌일을 도울 것인지는 묻지 않아도 기정사실이다.

한참 뒤에 어머니께서 정지에 들어오시자 나는 불안함에 불 다 땠어요!’하고 보고하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럼 됐어!’ 한마디로 마무리하셨다. 내 해석으로는 너는 불을 잘 때는 남자 아이로 들렸다. 어머니께서 이미 정해진 불쏘시개를 주시고, 무사히 때고 나면 임무가 완수한다는 정해진 조건명령이었다.

불을 재치고 나서 한소꿈 더 쉬었다가 밥을 푸는 과정이 남아있을 뿐이다. 커다란 가마솥에는 바닥에 차지도 못하는 솥밥이었다.

어머니는 달챙이를 찾아와라하셨다. 달챙이? 한 번 더 생각해보아도 생소하다. 아니 달팽이집 대문 사촌인가? 꾸어놓은 보리 포대처럼 서고 말았다. 어머니는 아직 왜 그래? 깜밥을 긁는 닳아빠진 것 찾아와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못 찾은 것으로, 나는 몰라서 못 찾아서...

그랬다. 달챙이는 최소 10년 이상 버텨온 몸 고생, 보릿고개 동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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