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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은 전별금

꿈꾸는 세상살이 2020. 10. 6. 13:16

내가 받은 전별금

 

살다 이별하고 헤어지는 것이 다반사니 이별의 증거로 잊지 말라며, 어느 정도의 돈을 준다는 말이 있다. 정리(情理)로 정리(整理)하는 이론이 타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일견, 목사에게 퇴직금이나 전별금을 주지 않는 경향도 있다. 따진다면 목회자의 본분에 맞는 것 같으나 실상 다른 예가 많다. 떠나는 사람이 받지 않겠다고 공표했단다. 확인해보니 그만큼의 혜택을 모두 받았다는 말도 들린다.

왜 이리 복잡할까? 받을 금액이 많다 보니 세금이 아까워서 그렇단다. 목회자라니 이중적 사상!. 만약 내가 그 상황이었더라면... 나도 이해는 간다. 내가 다녔던 교회 중에서 정년퇴직을 맞아 20억도 넘는 퇴직금이 있었다. 그래도 공식 퇴직금을 받았으니 맞기는 하다.

근무하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전출하면 생소함과 새로운 업무에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적응기의 팍팍한 삶과, 구입하는 물품 등 소소한 비용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지원한다.

그런데 나도 전별금을 받아보았다. 내가 근무한 세월은 10년 남짓, 아직 신출내기 때 일이었다. 업무상 전출에 누구든 보내야 한다면 반드시 가장 적임자가 있기 마련이다. 전출지에 연고를 둔 사람은 나 혼자이었고, 고향으로 가고 싶어서 자청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군대와 회사에서 경험을 쌓은 유일한 적임자였다. 내 생각으로 내부에 없다면 외부에서 영입하여 투입하는 것이 차선이다.

내가 받은 전출금은 돈이 아니라 이사하는 운송용 트럭이었다. 당시는 이삿짐 제도가 성행하지 않아서 그냥 인력으로 나르는 고된 방법이었다. 단출한 살림인데 5톤 트럭을 2대나 지원받았던 일이었다. 당시 트럭 운임은 대략 7,8만 원 수준으로 기억난다. 속셈해보면 내가 받은 금액은 상당해서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니 화물이 적어서 그냥 빈 차로 돌아오는 예가 많아서 울며 겨자 먹기로 운행하는 차가 많다고 들었다. 그러면 미안할 정도는 아니겠지! 아니다. 빈 차로 온다면 처음부터 가지 말아야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에게 왜 전별금을 주었을까? 그것이 문제다. 사실 두 대라고 듣자 바로가서 따졌다. 한 대도 고마운데 두 대는 과잉에 뇌물이라고. 그런데 지원한 업체는 극구 고수하면서 부탁하였다. 수혜자인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원천적인 이유를 물어보았다.

지금처럼 발주자가 직접 협력업체를 지원해준 수혜를 받은 적이 없단다. 하청 업체의 회식 장소에서 지불한 식사비가 14만 원 정도였으나 금액은 물론 응원과 격려하는 호의도 따질 수 없다고 말했다. 생전 처음이라니 그럴만하겠다. 그럼 내가 예측하여 연막을 쳤을까? 그랬더라도 협력업체가 상생하는 정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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