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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치기? 나도 해봤다

꿈꾸는 세상살이 2020. 10. 6. 13:58

새치기? 나도 해봤다

 

원래 새치기라는 말은 일이나 줄의 순서를 어기고 남의 앞자리에 끼어드는 일을 뜻한다. 둘 사이에 중간으로 넣어 자리를 차지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족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고, 내 주장만 믿고 남의 권리를 침해한다. 그러면 나도 새치기를 하고 있는지, 새치기를 했던 일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사실 사람은 누구든지 완벽한 사람이 없으니, 조심스럽게 돌아보며 반성하는 계기로 여겨지면 좋겠다.

나는 새치기를 한 적이 많다. 그 대표적인 내용은 바로 머리카락이 희끗하다는 예다. 젊었을 때부터 머리카락이 새까맣지 않아서 나이가 든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를 보고 ‘0!’으로 불렀다. 굳이 나이를 따지지 않아도, 그저 언뜻 보기에 나이가 든 것처럼 느껴져 만만한 호칭으로 통한다.

머리카락도 형태와 색이 유전의 영향이 크다고 알고 있다. 부모님 대에 혹시 그 위의 할아버지 대에 머리가 희끗했었다면 인정한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세대에는 희끗하지는 않았다. 혹시 까만색으로 염색을 하였었나? 아니다. 그 대에는 머리 염색약이 없었다. 설사 염색약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일부러 비용을 지불하면서 염색하지는 않았다.

내 생각으로는 내가 새치기를 한 결과라고 여긴다. 머리카락이 희끗하려면 나이가 든 것처럼 보여지고, 머리에 든 것도 노련해져 보이라고 검은 머리카락을 밀쳐 그랬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겉멋이 아니라 속멋이 희끗하게 드러난다는 의미다.

내가 가면 상대는 주춤하다가 ‘0!’ 부르고, 드물게 만나는 동년배는 아예 말을 걸기를 망설이기도 하였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나이멋이었다. 그럼 머리에 든 속멋은 어땠을까? 아마도 속멋은 아직 차지 않아서 조금 더 채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래 지켜본 지인들은 속이 깊다고도 했었다. 당최 분간을 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대체로 젊은 어른이라는 말일 것이다. 더 빠른 시간에는 애어른이라는 말도 들었다.

나는 미리 어른 연습을 해보았을까? 기억은 없다. 내가 본 부모님을 따라 행동하는 습관밖에는 없다. 보릿고개를 나 대신 넘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여 보은하려고 노력하였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은혜를 갚지 못하더라도 노력했었다. 지내고 보니 그것은 바로 미흡한 과거라는 자책이 든다. 이것도 애어른이 아직 더 차지 못해서 미완성이라는 증거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나는 모른다. 남의 생각과 형편을 알지 못해서 섣불리 말해서도 안 된다. 남의 인생을 평가하거나 폄훼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그 사람의 능력과 그 사람의 보은을 받을 사람의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속단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은 각자 다른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방식으로 산다. 겉멋도 속멋도 더 익어갈수록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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