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가 만든 씨앗
앞에서 말했듯이 전 직원이 35명 쯤 되었을 때, 일요일도 출근을 했다. 그런데 현장을 확인하는 도중 처음 보는 얼굴이 있었다. 공장 현장이라면 위험하다며 관리를 해야 한다. 신입 주제에 무슨 말을 하겠느냐마는, 외부인이 왜 현장을 왔다 갔다 하느냐고 따졌다. 무슨 사고라도 일어나면 누가 해결해주겠느냐고 나무랐다. 그는 ‘이름이 뭐요?’ 물었고, 나는 ‘아무게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바로 ‘한형!’ 하며 회사가 궁금하다면서 왔다고 말했다. 나는 무단출입은 회사가 책임을 안 진다며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최고 경영자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외부에서 영입한 상무라고 했다. 내가 실수했었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되었으나, 당당히 그리고 정당하게 대우했다며 떳떳했다.
몇 년 후, 전무실에서 나를 불러들였다. 가보니 내가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급했다며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이번 차장으로 내정된 사람이 나를 천거하여 과장이 되었으니 잘 모시라는 말을 들었다. 하긴 어느 정도 맞는 말은 되겠다.
그 말을 한 김에 차장이 공사를 겸직하게 되었으니, 내가 잘 보필하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내가 공식적으로 반대하겠다고 건의하였다.
전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과장이 전무의 명을 어겼으니 항명 중의 상항명이라고 믿었나보다. 그 상태로 시간이 되자 모두 퇴근하였다.
그날 밤, 12시에 비상을 걸었다. 과장 이상 전 간부를 전무 자택으로 소집하였다. 나만 빼놓고. 일은 알고 있어야 한다면서 조용히 말한 동료가 있었다. 내가 항명하였고, 상급자를 무시했고, 지시를 따르지 않은 파렴치요 배은망덕이라고 했단다.
이 말을 듣자 더 이상 따질 이유도 없고, 재항명을 해보아도 해결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이상 소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시간이 흐르자 앙금이 희석되었고 잠시 기억을 접었었다.
몇 년이 지난 뒤, 불현 듯 떠오르는 기억이 솟아올랐다. 내가 배은망덕이라고 했겠다! 그럼 너는 배은망덕이 아니겠냐? 바로 내로남불이다. 그러나 지난 일을 들춰서 개판을 만드는 것이 정당하느냐 는 생각도 들었다.
사건은 간단하다. 신입사원 때 현장에 불청객이 들락거려서 내가 제동을 걸었었다. 왜 남의 회사에 허락도 없이 나타나서 돌아다니느냐고 시비를 걸었다. 허락을 받았다 하더라도 직원이 수행해야만 가능하지 무슨 말이 되겠느냐고 거세게 몰아부쳤다. 내 말이 정당하여 당시 상무 내정자가 수긍하면서 바로 저자세로 돌았던 일이었다.
내가 조금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자 미안한 감도 들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자 상무가 아직도 상무란다. 그래서 아직도 사원인 나는 최고 경영자에게 무례하게도 건의하였다. 나에게 알려준 상무 내정자가 아직도 상무라니 너무 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그러자 CEO는 무색했는지 한참을 멍하고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아마도 전무 승급에 대해서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사원 주제에 그런 건의를 하다니 하며 속이 뜨끔했었나 보다.
2년 후 아니 만 1년이 지난 후 승급 시기에 전무 승급 공고가 떴다.
나는 전무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고 얘기한 적이 없다. 주위의 간부들에게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내 생각으로는 전무의 내로남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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