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무지가 만든 씨앗

꿈꾸는 세상살이 2020. 10. 6. 13:57

무지가 만든 씨앗

 

앞에서 말했듯이 전 직원이 35명 쯤 되었을 때, 일요일도 출근을 했다. 그런데 현장을 확인하는 도중 처음 보는 얼굴이 있었다. 공장 현장이라면 위험하다며 관리를 해야 한다. 신입 주제에 무슨 말을 하겠느냐마는, 외부인이 왜 현장을 왔다 갔다 하느냐고 따졌다. 무슨 사고라도 일어나면 누가 해결해주겠느냐고 나무랐다. 그는 이름이 뭐요?’ 물었고, 나는 아무게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바로 한형!’ 하며 회사가 궁금하다면서 왔다고 말했다. 나는 무단출입은 회사가 책임을 안 진다며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최고 경영자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외부에서 영입한 상무라고 했다. 내가 실수했었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되었으나, 당당히 그리고 정당하게 대우했다며 떳떳했다.

몇 년 후, 전무실에서 나를 불러들였다. 가보니 내가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급했다며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이번 차장으로 내정된 사람이 나를 천거하여 과장이 되었으니 잘 모시라는 말을 들었다. 하긴 어느 정도 맞는 말은 되겠다.

그 말을 한 김에 차장이 공사를 겸직하게 되었으니, 내가 잘 보필하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내가 공식적으로 반대하겠다고 건의하였다.

전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과장이 전무의 명을 어겼으니 항명 중의 상항명이라고 믿었나보다. 그 상태로 시간이 되자 모두 퇴근하였다.

그날 밤, 12시에 비상을 걸었다. 과장 이상 전 간부를 전무 자택으로 소집하였다. 나만 빼놓고. 일은 알고 있어야 한다면서 조용히 말한 동료가 있었다. 내가 항명하였고, 상급자를 무시했고, 지시를 따르지 않은 파렴치요 배은망덕이라고 했단다.

이 말을 듣자 더 이상 따질 이유도 없고, 재항명을 해보아도 해결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이상 소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시간이 흐르자 앙금이 희석되었고 잠시 기억을 접었었다.

몇 년이 지난 뒤, 불현 듯 떠오르는 기억이 솟아올랐다. 내가 배은망덕이라고 했겠다! 그럼 너는 배은망덕이 아니겠냐? 바로 내로남불이다. 그러나 지난 일을 들춰서 개판을 만드는 것이 정당하느냐 는 생각도 들었다.

사건은 간단하다. 신입사원 때 현장에 불청객이 들락거려서 내가 제동을 걸었었다. 왜 남의 회사에 허락도 없이 나타나서 돌아다니느냐고 시비를 걸었다. 허락을 받았다 하더라도 직원이 수행해야만 가능하지 무슨 말이 되겠느냐고 거세게 몰아부쳤다. 내 말이 정당하여 당시 상무 내정자가 수긍하면서 바로 저자세로 돌았던 일이었다.

내가 조금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자 미안한 감도 들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자 상무가 아직도 상무란다. 그래서 아직도 사원인 나는 최고 경영자에게 무례하게도 건의하였다. 나에게 알려준 상무 내정자가 아직도 상무라니 너무 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그러자 CEO는 무색했는지 한참을 멍하고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아마도 전무 승급에 대해서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사원 주제에 그런 건의를 하다니 하며 속이 뜨끔했었나 보다.

2년 후 아니 만 1년이 지난 후 승급 시기에 전무 승급 공고가 떴다.

나는 전무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고 얘기한 적이 없다. 주위의 간부들에게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내 생각으로는 전무의 내로남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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