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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등장날

꿈꾸는 세상살이 2006. 5. 15. 17:44

 

 

 

황등 장날


오늘이 음력 섣달 열엿새다. 양력으로는 1월 15일이니 설날이 되려면 아직도 보름정도나 남아있다. 그런 중 오늘은 일요일과 장날이 겹친 날이다. 지난 해 설 장보기를 한 후 다시 1년 만에 시장에 들러 보는 것이다. 아직 설까지는 이른 장이라 명절분위기가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간간이 제수품을 준비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시장에는 아직 많은 사람들로 붐비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디서부터인지 몰라도 설 냄새가 서서히 풍겨 나오고 있는 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장에서 파는 물건들은 언제나 변함이 없지만 여기저기 진열되어있는 가게의 물건들과 그들이 쌓여있는 상태를 보아 알 것 같다.


시장 입구부터 줄지어 서있는 자동차 속과, 오고가는 사람들의 짐 꾸러미 속으로 아직 멀찌감치 서 있기만 한 줄 알았던 설이 분주히 오고가고 있다.
설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미리미리 준비하는 모습들이 역력하다. 옛날에도 달포 전이나 보름 전부터 준비하던 설빔이 아니었던가. 이 정도부터는 부정한 일을 애써 삼가는 정도였으니 설을 준비하는 마음들이 대단하였었다.


이러한 시기에 장을 다시 찾아보니 어릴 적의 설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하긴 그때는 설빔이라고 하여도 양말이나 내복 등이 거의 전부였었고, 어쩌다 한 번은 겉옷을 선물받는 행운이 있을 뿐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 같으면서도 이렇게 유독 내 차지는 없는 설날이지만, 어쨌든 우리의 명절임에 틀림없었고 나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었다. 그 기다림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이어져오고 있다.


오늘 장에 들어서는데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에는 노천에서 옷가게가 자리하던 곳에 주차장이 들어섰고, 주차장 뒤로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하여 무릎 높이까지 설치한 철제 분리대가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변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에 없던 인도가 설치되었고, 이 길은 오고가는 사람들이 비를 맞지 말라고 투명한 지붕을 만들어 놓기까지 하였다.

 

 


시장 내부도 확실히 달라졌다. 전에는 낮에 불을 켜 놓고도 어두워서 들어가고 싶지 않던 곳이었는데, 오늘은 우중충한 날씨임에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바닥은 온통 하얀 타일로 되어있고, 지붕도 중간 중간에 채광판을 만들어서 자연 태양광이 들어오도록 개조를 한 것이다. 물론 벽에는 밝은 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전체적으로 황등장의 위상이 높아 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증거로 밝아진 모습을 들 수 있고, 시내의 어느 상가 건물과 다름없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어느 것보다 확실한 것은 시장 건물 바닥 전체에 타일을 붙이느라고 약 3cm 정도나 올라갔으니, 시장의 위상이 올라 간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겨울이 되면 낡은 재래시장은 언제나 화재의 위험을 안고 있으며, 짧은 해로 인하여 더 어둡게만 느껴지던 건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밝고 훤한 느낌이 들며 잘 지어진 시내의 쇼핑센터와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 복잡하던 전선이며 소방시설을 어떻게 처리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분위기가 밝아지니 그러한 위험요소도 동시에 없어진 듯한 생각이 든다.

 

 


그 곳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이 변하지 않았고, 파는 물건이 변하지 않았으며 그 물건을 사러가는 사람도 변하지 않았는데 어쩜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확실히 달라진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모든 일은 이와 같이 마음먹기에 따라 약간의 변화를 가지고도 커다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이러해도 밀려드는 대형 할인매장에 비해 재래시장이 얼마나 경쟁력이 있을까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든든해지고 대등한 위치에 서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일년 전에 가 보았던 상점들을 둘러본다. 아직 명절에는 때 이른 장이라서인지 몰라도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이 더러 있다. 이들은 대목장이 아닌 평소 장날에는 손님이 별로 없다는 것을 얘기해 주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황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 든 것도 아니다.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아니 내가 살던 30년 전에도 지금과 같은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특별히 손님이 줄어 들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때와 지금의 다른 점은 주된 고객의 연령층이 변했다는 것이고, 지금은 그 전과 달리 식성이 많이 변해서 먹고 사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일 게다. 그리고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생활의 편리함을 찾는 사람들이, 더 깨끗하고 더 많은 가게가 모여 있는 백화점이나 대형 통합소매점에 간다는 점이다.

 

 


세월이 흘렀어도 고향의 정을 중히 여기고, 사람과 사람의 대면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여기 시장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전통과 상대방의 안타까움을 안쓰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시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환경의 변화에 둔감하며 현재에 안주하는, 낯설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보수 성향의 사람들만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생각하면 어리숙하게 보이면서도 남을 배려하고 나의 이익을 많이 챙기지 않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남과 같이 약삭빠르게 움직여서 전통이나 문화보다도 나의 이익을 우선하고,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길을 택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는 후자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거기에 문화를 아는 사람들은 전자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막상 평가를 하려치면 전자보다는 후자를 더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대하며, 전자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대응하지 못하는, 변화하는 사회에서는 살아남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으로 치부하기가 십상이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말이 틀린지도 모르겠다. 먼 훗날 나의 자손들이 시장에 가면, 아 우리도 저런 시장에 가 본 적이 있었다라고 말 할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시장은 대형 할인점이나 백화점, 또는 각 분야별 전문상가를 얘기할 것이다. 물론 단어야 다 같은 재래식 시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겠지만, 지금 내가 추억을 되살리는 재래식 시장을 얘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들도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에서 다시 변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냥 할인점이나 백화점을 지키고 있다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사회는 항상 변하는 생물인가 보다. 살아있는 물건이 언제 어떻게 변할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다만 지내놓고 나서 되돌아보아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전자가 무능하고 못났을지 몰라도, 우리는 그들로 인하여 지난 추억을 상기해본다. 그들을 통하여 고향을 떠 올리게 된다. 그들에게는 마음이 편안한 정이 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즐거워지는 묘약이 있다.


시장은 이렇게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 있는 나의 일부분이나 다름없다. 우리 생활의 일부였으며, 삶의 축소판이라고 하여도 될 것이다. 이렇듯 황등시장은 아직도 많은 수의 우리들을 포용하고 있었다. 나의 어릴 적 생활을 간직한 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내가 되찾아 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200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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