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하는 영산홍
/ 한호철어느 봄날에 영산홍이 이발을 하였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일년 내내 그냥 지내던 영산홍인데 올해는 일찌감치 몸단장을 하였습니다. 하긴 따지고 보니 올해만이 아니라 재작년에도 몸단장을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여름에 옮겨 심어 몸살을 할까봐 걱정이 되는 그런 시기였었습니다. 그래서 나무들이 잘 적응이나 하는지 모두들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발도 하게 되고 울타리를 쳐서 바람도 막고, 여러 가지로 분주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다릅니다. 작년에 옮겨 심은 것도 아니고, 벌레가 먹어서 군데군데 보식을 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이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더부룩하던 모습을 깔끔하게 단장을 해 놓으니 보기에는 좋았습니다. 마치 추석 전날 밤에 내 머리를 깎은 것처럼 준비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옆에 서 있는 목련은 언제 피었는지도 모르게 흐드러졌습니다. 그리고는 벌써 하나 둘 꽃잎이 지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는 활짝 핀 영산홍도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만개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 속에서 나를 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겨우내 찬 바람을 맞을 때도 꿋꿋이 버티면서 봄이 오자마자 나를 기쁘게 해주려고 핀 것 같아 고마웠습니다. 활짝 핀 꽃이 많지 않아 더욱 반가웠고, 그래서 저 꽃은 오로지 나를 위하여 핀 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비록 내가 심고 가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때는 내가 많이 슬플 때였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었나 봅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기업에는 바람이 불었습니다. 차가운 바람을 이기고 정신을 차릴 만 하니까 불어오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바람이 싫었습니다. 바람은 혼자 다니는 법이 없이 항상 뭔가를 몰고 다녔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싫어했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낙엽은 지는데 왜 바람까지 불어서 생가지를 흔들어대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영산홍은 지치고 힘든 몸을 이끌고 나를 찾아 왔습니다. 그것은 마치 내 모습과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영산홍을 좋아하였나 봅니다. 겨우 한 두 송이 핀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하였습니다.
나를 알아보고 반겨주는 것은 자그맣고 힘없는 영산홍뿐인 것 같았습니다. 이런 영산홍을 내가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이국땅에서 동창생을 만난 듯, 미로에서 출구를 찾다가 아내를 만난 듯, 추운 날 뜨거운 차 한 잔처럼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그런 꽃이 바로 일찍 핀 영산홍이었습니다. 그런 영산홍을 올해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올 해 삼월의 화단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영산홍 꽃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고대하는 영산홍은 아마 목련이 지기 전까지는 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다 지쳐갈 쯤 목련이 떨어지는데도 영산홍은 아직 꽃을 피우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양 까까머리가 자라서 늘어진 장발이 되어야 꽃을 피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방금 이발한 영산홍의 모습은 조지훈의 머리처럼 파르르한 빛마저 감돌고 있어 그러고도 남을 것처럼 보입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영산홍이 그리워 따졌습니다. 어찌하여 추운 이른 새벽부터 까까머리를 만들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돌아 온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그냥 보기 좋으라고 단장하였답니다.
그렇습니다. 추석 전날 밤에 이발을 하는 것은 오히려 준비성이 부족하였던 것입니다. 영산홍을 3월 하순에 이발하는 것 또한 준비성이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꽃나무가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과, 내가 꽃나무를 보면서도 꽃은 볼 수 없다는 것은 아주 슬픈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2006.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