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가을 운동회

꿈꾸는 세상살이 2006. 5. 16. 12:47
가을 운동회 / 한호철

봄운동회는 봄에 실시하는 운동회이고, 가을운동회는 가을에 실시하는 운동회라는 것을 그 이름만으로도 다 알 수 있다. 그런데, 여름운동회와 겨울운동회라는 단어는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도 여름과 겨울은 운동하기에 적합한 계절이 아닌 듯 싶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우리 몸에 좋으라고 실시하는 것이 운동인데 여름과 겨울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여 실시하지 않는다면 어딘지 앞 뒤가 맞지 않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히려 늘어지기 쉽고 움추려 들기 쉬운 여름과 겨울에 적당한 운동을 찾아서 권장하여야 하지 않을까.
뛰고 던지고 하는 것과 같은 격한 움직임 자체가 운동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인지, 아니면 여름과 겨울에는 어떤 종목이든 운동하는 것이 몸에 해가 된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할 일이다.
한 여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강이나 바닷가로 피서를 떠난다. 게중에는 산이나 계곡을 찾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그래도 여름에는 물을 더 많이 찾는 것이 현실이고, 그 곳에서는 격한 여름 운동도 곧잘 실시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비치발리볼이있고 레프팅이나 서핑도 있다.
그런데 이런 운동들은 순간적인 에너지 소비량도 폭발적일 뿐만이 아니라 행동 자체가 대단히 빠른 운동으로 극심한 피로를 유발한다. 그러면 이것들이 어느 특정계절에만 실시해야 하는 운동일까 생각해보면 그렇지는 않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가리지 않고 사시사철 행할 수 있는 운동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운동이 여름에만 성행하면 이것은 분명히 여름 운동종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가을운동회의 종목은 어떠한가 생각해보면 누구나 초등학교때의 운동회를 떠올리며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가을운동회는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개인전으로는 달리기가 있고, 공굴리기와 줄넘기가 있다. 단체전으로는 이어달리기와 기마전, 오자미던지기 등이 있다. 이러한 종목들은 마치 어린시절의 나를 설명해 주는 것같으면서도,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의 생활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여도 맞을 것이다.
우선 개인전은 각자의 체력단련도 되고, 해마다 성장하는 아이들의 기록측정도 하겠지만 그 속에서도 경쟁과 승리의 과정을 보여준다. 운동회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 달리기에 있어서 누가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는 선수생활을 하는 사람외에는 별 관심이 없다.
다만 그때 같이 달린 경쟁자들과 어울려 얼마나 공정한 경쟁을 했고, 순수한 경쟁에서 누가 이겼느냐가 문제다. 그렇지만 약간의 규칙을 어긴 아이에게도 모르는 척 넘어가는 면도 있었다. 이것은 여러사람 앞에서 그 아이가 받을 상처를 생각해서 택한 교육법의 하나였다. 그 아이가 크면 자신 밖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일 것이라고 믿었던 지난 일을 기억해 내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개인경쟁만 요구하는 것은 교육의 목적상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공동생활, 협동생활, 단결과 희생정신을 가미한 경기를 실시하곤 했었다. 단결과 협동 그리고 희생정신의 대표적인 종목은 역시 탑쌓기와 인간 기마전이다.
인간 탑쌓기는 보통 6층 정도로 하는데 맨 아래에서 받쳐주는 아이들은 다섯명의 몸무게를 견뎌야 했다. 내가 힘들다고 해서 몸을 사리게 되면 어렵게 쌓은 공든 탑은 무너지고 만다. 기마전 또한 말이 된 학생과 마부 그리고 기수로 나뉘고 이 네사람이 한 조가 되어 상대방과 겨루는 경기다. 물론 덩치가 큰 학생이 말이 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쨓튼 누구도 마다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 들이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냈다. 이것이 희생정신이고 봉사와 협동인 것이다.
우리는 가을운동회를 통해 그러한 사회의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배웠다. 거기다가 경기가 끝나면 이긴 팀은 진 팀 앞에서 승리를 확인했고, 진 팀에게는 반드시 이긴 팀을 축하하도록 하는 교육을 추가로 시키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긴 팀은 자신들이 이겼다고 부르는 만세소리 세 번외에는 부상이나 특별한 상이 없었다.
지금도 가을운동회는 상품에 관해서만은 대단히 인색하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 스포츠가 가지는 참의미라고 생각한다. 이기기 위하여 그렇게 힘들게 노력했지만 정작 이기고 나니 이겼다는 마음외에는 따로 달라진게 없다. 진 팀이라고 해서 비굴해질 것도 없다.
그러나 진 팀은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이라고하여 경기 도중에 꾀를 부리거나, 이기기 위한 무리한 방법을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개인이 각자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기관리마저 소홀히 하도록 할 수 없기에 오히려 개인경기에는 작으나마 상을 주어 격려해 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가을운동회야말로 운동경기를 통한 진정한 체육교육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훌륭한 교육을 놓고 부모님과 마을 어르신을 모셔 지난 1년 동안에 성숙한 교육을 같이 확인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의미있는 산 교육을 마치고 운동장 문을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는 진 팀이나 이긴 팀 모두가 하나가 되어 즐겁게 얘기하며 다시 뒤섞인다.
지금 운동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서의 대화는 그 당시와 별로 달라진 것도 없다. 그때 만약 내가 어떻게 했더라면 이겼을 것이라는게 전부다. 이것은 철저한 자기 반성과 자신에 대한 새로운 각오에 찬 자기 암시다. 그때 만약 내가 넘어지지만 않았어도 이겼을 것이라는 후회는 하지만 이긴자를 비방하거나 시기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씨인가
이렇게 마음씨 착한 아이들과 비교하여 어른들도 뒤질게 없다. 물론 나 어릴적의 생활은 일상에서 다른 볼거리가 흔치 않았겠지만, 고된 일손을 놓고 단순히 하루 쉬는 차원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바쁘기로 말하면 그 당시의 가을은 여름이나 겨울에 비해 몇 배나 더 바쁜 계절인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의 재롱을 구경하는 것이 농사 일보다 더 소중했을까.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아픈 허리를 잠시쉬고 하루를 즐기기 위하여 모이신 것이 아니다. 계절의 농삿 일로 보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형편이지만 열일 제켜두고 기꺼이 참석하신 어르신들이 아니었던가. 이 분들은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꿈을 길러주고, 잘 할 수 있다는 격려와 용기를 주시기 위하여 일손을 쉬신 것이었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이렇게 먹거리인 농삿일보다도 더 중요한 것을 아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훌륭하신 조상을 둔 국민이다.
우리는 예전부터 이렇게 좋은 문화를 가지고 있는 국민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가을 운동회를 통해서 사회생활을 배운다. 내가 이 사회의 훌륭한 구성원임을 알고 내가 하여야 할 도리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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