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도지죄 / 한 호철
중국의 위왕이 거느린 신하 중에 미자하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요즘 말로 일등공신이고 왕도 신임하는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하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이 왔다. 이 소식을 접하자마자 마음이 급해진 미자하는, 옆에 있던 왕의 전용 마차를 타고 곧바로 고향으로 달려갔다.
이때 미자하는 나중에 왕에게 문초를 당하든지 말든지, 우선 어머니가 위독하시니 가고 보자는 심산이었는지, 아니면 어머니가 급하신 데 왕의 마차를 좀 탔기로서니 문제될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알 수 없다. 그것도 아니면 왕으로부터 자신이 받을 벌을 감수하면서, 어머니를 먼저 생각한 것은 오히려 칭찬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왕은 세 번째 경우로 판단하고, 자신이 혼날 줄 뻔히 알면서도 어머니를 먼저 생각한 효성 있는 신하를 칭찬하고, 그를 벌하지 않았다. 또한 훗날 왕이 궐내의 복숭아밭을 거닐고 있을 때, 마침 미자하가 그곳에서 복숭아를 따먹고 있었다. 왕이 이 밭의 복숭아는 맛이 어떠냐고 미자하에게 물었고, 미자하는 먹고있던 복숭아를 냉큼 내어주며, `왕이시여 이 복숭아는 너무 맛이 좋아 비길 데가 없습니다. 특히 벌레 먹은 것은 원래 더 맛있는 과일입니다' 라고 하였다. 왕이 받아먹어 보자 과연 맛이 좋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 강산이 변하고 나자 왕은 미자하의 하는 짓이 미워지기 시작하였다. 때마침 여러 신하들이 공론을 모아 미자하를 탄핵하자 왕도 거들었다. `그래 맞다. 미자하는 모년 모월 모일 나의 마차를 허락도 없이 타고, 자기 집에 다녀온 자이다. 또한 언젠가는 자기가 먹다 만 복숭아를 왕에게 주었던 버릇없는 신하이다. 왕이 물어보면 탐스러운 것으로 골라서 얼른 따 주면 될 것을, 그것도 벌레 먹은 것이 맛은 더 좋다고 하면서 자기가 먹던 것을 왕에게 준 자이다‘ 하고는 그를 벌하였다 한다.
토사구팽과 유사하지만 이 내용을 후세사람들이 여도지죄라고 한다. 같은 사실을 놓고도 보는 시각에 따라,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자신은 별 생각 없이 그 당시에 최선을 다했지만, 훗날 역사 속에서 보면 꼭 잘한 것만은 아닌 일이 많을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같은 사실을 놓고 달리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야될 도리를 지키고, 갖추어야할 예의를 갖추는 것이 좋을 듯 하다. 훗날 질책맞을 것에 대비하여서가 아니라, 혹시나 상대방의 마음에 서운함이 남아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보는 사람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해석해주는 아량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 사람이 진실로 행한 일인지, 아니면 잘 보이기 위해서 한 일 일인지를 판단한다면 훗날에 그 죄를 들추어내서 벌할 일도 없을 것이다. 2001.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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