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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과와 타인의 영향

꿈꾸는 세상살이 2006. 6. 4. 17:44
 

나의 성과와 타인의 영향 / 한 호철


  사람이 세상을 살아 갈 때에 남을 의식하지 않고, 완전히 자유의사에 따라 살아 갈 수는 없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를 생각하고 그의 보이지 않는 규제와 통념 속에서 살아간다.  그 중 눈에 가장 띄는 부문이 복장이다.  특히 학교에서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통일된 복장으로 묶어두고, 틀 속에 몰아 넣는 것은 잃는 것 보다 얻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한때는 과거 잘못된 관행이라 하여 교복자율화, 두발자율화를 앞서가는 교육의 방법으로 제시한 적도 있었지만 얼마가지 못하여 다시 규제 속에 묻어버렸다.  물론 여기서 이야기하는 규제는 억압과 획일화 같은 절대 규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두발도 길이를 정해놓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며, 교복도 팔 길이, 치마 길이, 치마 통 넓이를 규제하여 절대 준수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의 편리성과 개인의 욕구 해소를 가미한 적절한 정도를 통제하고 있다.

 이 적절한 통제의 범위가 미완의 학생들에게는 애매하고 어렵긴 하지만, 사회인인 성인들은 별로 어려울 게 없다고 본다.  누구나 보아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면 그것이 적절한 것이라고 본다.

 회사에 출근한 사람이 입도록 정해진 근무 복을 입지 않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그 날이 휴일이라든지,  1일 8시간 중 외근을 7시간 실시하고 잠시의 내근을 위하여 귀사한 그 순간이라든지, 업무 내용과 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이것이 적절한 통제의 범위다.  몇 년 전에는 벤처기업을 효시로 복장 자율화, 근무시간 자율화가 근무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생산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주장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경제의 거품이 가라앉고, 경제 분위기가 침체된 오늘 날 다시 복장의 규제가 시작되고 있다.  도이체뱅크와 리먼브러더스 같은 금융기관을 시작으로 유수의 금융기관에서도 주 5일 근무중 금요일에는 복장 자율화를 실시했던 것조차 평일과 마찬가지로, 남에게 보여도 눈살 찌푸리지 않을 적절한 복장을 갖추도록 환원했다.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회사 근무 복을 안 입어도 좋은 날은 아예 지정하지 않았기에 새로이 강조할 필요도 없지만, 평일 근무시간에 근무 복을 입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외근이나 손님 접대 등 상대에 따라 복장이 달라져야 할 경우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하루종일 회사 사원들과 같이 근무해야 할 경우까지의 복장 자율화는 잘못된 것이다.  더구나 그때 복장이 야유회가는 복장이라든지,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에 비추어 보아 어울리지 않는 다면 잘 못된 거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항변이야 들어 보나 마나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가운데, 사고의 유연성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면 생산성이 더 향상 될 거라는 이야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회사에서 무상으로 지급하는 근무 복은 비싼 값으로 구입한 것이니 그 옷은 잘 보관하고, 내가 개인적으로 구입한 저렴한 복장으로 근무하여 회사의 경제적 이익을 확대하자는 어울리지 않는 변명이 있을 수 있겠다. 여기서 한가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자유 분방한 복장이 업무능률향상에 도움이 되는 면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복장으로 인하여 타인이 받을 스트레스를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타인은 그 스트레스로 인하여 업무 능률의 저하를 초래했다면 그것은 어떻게 보상하여야 할 것인가.  특히 그 업무성적으로 각각의 개인을 평가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그것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자신이 얻은 +10의 향상과, 타인이 받은-10의 저하로 결과는 별반 달라질게 없다고 생각 할 수도 있겠으나, 각자의 업무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그 +10의 결과는 단순 가감의 계산으로 표현 할 수 없다.  그 개인이 받은 불이익은 그렇다 치더라도, 회사적인 면에서 보면 당연히 성취해야 될 이익을 얻지 못한 것이므로 그것은 그냥 개인의 고과 성적 저하 차원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어진 복장이나 숫자로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그 회사의 문화에 비추어 볼 때 누가 생각해도 보편 타당한 행동 범위 내에서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미처 회사의 고유 문화가 정립되지 않았을 경우에도, 우리 한국민의 정서나 생활 풍습 등 그냥 일상생활 중에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할 것이다.  여성용 속옷을 생산하는 회사에서 농부들이 신는 검정 장화라든지, 쇳물로 철강을 만드는 회사에서 왕서방의 비단 바지,  유압기계 제작 회사에서 잠자리 날개 같은 저고리는 어울리지 않는다.  대형 유조선을 건조하는데 먼로의 치마를 입고 페인트칠을 한다면 우리는 그를 정신병자 취급 할 것이다.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원색의 티 셔츠와 청바지로 평일 날에 정상적 근무 시간 동안 계속 근무한다면, 자신의 능률 외에 타인과 회사 전체의 능률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서, 그 또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한 행동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입을 피해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고,  목표를 달성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상대방이 받은 회사적인 성과의 저하와, 나중에 평가받은 개인의 능력적인 상대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고방식이다. 또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열심히 일하는 동안 상대방은 회사를 위하여 무엇을 한 게 있느냐고 따지기를 좋아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도 대외적인 생존 경쟁에서 몇 사람은 있어야 하겠지만,  내부적으로는 위화감을 조성하므로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2002. 0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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