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과 신뢰 / 한 호철
다 알려진 대로 인사 부서의 장은 조직원의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외우고 있지는 못해도 최소한 자료를 가지고는 있다. 그래서 이들이 혹여나 다른 마음을 먹으면 개인 신상 및 활동 정보를 외부에 노출시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따라서 인사 부서의 담당자들은 본연의 업무목적에 충실하여야 하며, 때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모르면서도 알고 있는 척 해야 하는 경우마저도 있다.
물론 업무처리를 공정하고, 타인과의 형평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업무 담당자들은 자신들의 업무 중요성만큼이나 타인에게 적용하는 일에도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언젠가 마케팅 부서에서 현재 시중에 나가는 물품목록을 작성한 적이 있었다. 마케팅 담당 부서로서는 매일매일 조사하여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사항이었다. 거기에 경쟁사의 대응 품목, 각 품목별 시장 점유율, 고정거래처, 거래처의 메이커 선호도를 조사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자료는 부서장들이 같이 앉아서 회의하고 난 후 회수하였고, 자료를 배포하면 안 되느냐는 질문에 돌아 온 답은 걸작이었다. 전에도 유사한 자료를 배포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다음날 경쟁사에서 우리가 회의한 내용을 알고 있더라는 얘기와 함께, 우리 중에 누가 자료를 제공했는지는 모르지만 회사를 팔아먹는 행위라고까지 격하게 말했다. 자료 성격상 배포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도 충분할 분위기였었는데 너무 지나쳤다.
그때도 그 내용이 우리회사에서 새어 나간 것인지, 아니면 상대회사가 그 정도의 내용은 사실은 자기가 먼저 알고 있었다는 것인지도 모를 정도의 첩보 수준이었다. 거기에다가 경쟁사가 그런 내용을 알고 있다는 것을 그 사람은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하다. 이번 회의는 비록 부서장들이 모였었지만, 그 자료는 며칠 전 마케팅담당 전 직원에게 이미 배포된 후였기에, 어디에서나 흘러 다니는데 부서장들만 모르는 자료중의 하나였었다. 그런데도 그런 식의 표현을 한 것은 매출부진에 따른 심리적 압박으로 신경이 예민해진 탓으로 돌리고 조용히 끝냈었다. 그때 매출은 계속해서 목표에 미달되고 있었고,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러한 자료 정도는 기밀에 속하지도 않는 해제된 비밀이거나, 영업상식 수준이었다. 그래도 듣는 사람들은 우리의 매출을 높이기 위한 우사충정에서 나온 말이려니 하면서, 기분이야 언짢았지만 다들 이해했었다. 그러면서도 저 사람은 항상 답변이 궁하면, 도망가는 요인을 주위에서 찾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회의하고 자기들끼리 의심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 후 언제부터인지 정확한 언급도 없었는데 그 회의 자체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못 믿으면 확실히 배제하든지, 아니면 믿어 주면서 상대방이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든지, 상대방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힘을 합쳐 믿고 밀어 주어도 상대방을 이기기 어려운 경쟁상태에서, 내부 불신을 가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제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사실을 은폐하고 호도하면 정확한 원인을 찾을 수가 없어 그 치유가 명쾌하지 못하게 된다. 2001.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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