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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적체

꿈꾸는 세상살이 2006. 6. 4. 17:54
 

인사적체 / 한 호철


  우리나라의 공무원 제도를 보면, 맡은바 업무 종류에 따라 여러 체계로 나뉘는데 예를 들면 경찰 공무원, 교육 공무원, 일반행정 공무원,  세무 공무원,  소방 공무원 등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각기 다른 직급의 고유 명칭을 부여하기 때문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한다. 그 중에서도 직업군인의 경우는 군 공무원에 속하며, 국민들이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는 기관이므로 그래도 비교적 잘 알려진 편에 속한다. 공무원의 직급은 1급에서 9급까지로 정해져 있는데, 직급의 고유명칭이 업무 특성에 따라 고유한 호칭을 가지고 있어, 무슨 외국 왕조 이름을 외우는 것처럼 생소하기도 하다. 

 어느 관청의 교육직 공무원 9급에서 3급까지 승진하려면, 규정에 의한 진급 소요기간은 22년인데 비해,  실제로 승진한 평균 근속기간을 토대로 현실적인 판단을 하면 56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56년 동안이나 같은 직장에서 근무를 하면 3급에 승진한다는 이론인데, 대부분의 경우는 3급 공무원이 되기 전에 대략 6급에서 정년을 맞게 되는 결론이 선다.

 이러한 현상이 빚어진 가장 큰 이유는 인사 적체인데 상위직급수의 제도상 확보가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모든 9급 공무원이 3급이나 1급 공무원이 된 후 퇴직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차피 승진하고 못하고는 구분되게 마련이고, 승진하게 되면 그래도 어느 정도의 기간 내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어느 광역지자체의 경우 기술직은 대체로 4급까지를 최고 승진 기회로 볼 때,  4급 공무원 수는 3,4명에 불과하므로 나머지 공무원은 5급으로 정년퇴직 할 수밖에 없다는 자조 섞인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한 조직에서 3,4명뿐인 4급 공무원의 정년까지는 10년 이상이 남아 있는데, 정년 전에 그 사람을 명퇴 시키고, 다른 사람을 승진시킬 수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무원 조직뿐 아니라, 최근에는 저 성장기의 모든 사기업들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에서는 입사 후 대략 15년 정도면 부장까지 승진할 수 있는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 소요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추세다. 이는 사업의 확장 속도가 늦어지고, 인력 중심의 업무에서 기술 중심의 업무형태로 바뀌면서, 기존의 보유인력 또는 신규인력들이 계속 승진할 기회자체가 줄어든 데 원인이 있다. 그러다 보니 승진시기가 되면 여기 저기서 웃지 못할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누구처럼, 나를 도와준 사람을 최소한 내가 있을 때 확실히 밀어 주자는 경우도 있고, 누구를 키워주면 나의 현 직장 유지가 가능할지를 판단하여, 의도적으로 행하는 인사도 일어난다.

 어떤 경우는 매관매직까지는 아니더라도 남이야 어찌되든, 상급자에게 잘 보여서라도 승진하고 보자는 보신주의도 나타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사람보다 내가 유능하고, 우수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일수록 상대 경쟁자를 끌어내리는 작업도 열성적이다.  경쟁자가 나를 못살게 굴어서 내가 이 정도 결과밖에 보여주지 못하지만, 나는 탁월한 사람이라는 내용이라든지, 저 사람이 낸 결과는 내가 이렇게 도와주고 지도해준 결과라는 것들도 서슴없이 말한다.  나는 항상 정의파이고, 내가 하는 행동은 항상 옳은 일이며,  내가 모든 민심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생각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나는 내 부하들을 믿고 있고, 그들 역시 나를 믿고 따르며 내가 하라고 한마디하면 반드시 따라 줄 것이라는 등 항상 듣기 좋은 말로 일관한다.  그래서 내가 반대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이므로, 나를 거스르면 곧 민심을 거스르는 일이라는 혹세무민의 행태마저도 보인다. 

 어떤 부인은 여자들끼리 이야기하는 도중에, 남자는 여자하기에 따라 큰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여자가 내조를 잘하면 남자가 크는데, 그 내조 행동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간을 빼주는 척 해가면서 남편 승진을 얻어내야 된다고 했다. 하위직에 근무하는 남편을 계속 두고 보는 것은 여자가 못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자가 남자를 안 키웠기 때문이라는 표현도 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이 아부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아부는 우리 주변의 여기 저기에서 쉽게 나타난다.  정작 아부의 한계는 어디까지이고, 성의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딱 잘라 말할 수 없지만,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다르며 그 사람들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고 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내가 아쉬운 때만 행하면 아부가 될 것이요. 자기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면 아부가 될 것이다. 예의상 해야 되는 일이라든지,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여 나 개인보다는 조직전체의 활동성과를 높이기 위해서였다면, 듣기 거북한 말과 행동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아부라고 하기보다는 정성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어떤 곳에 출장을 다녀와서 기념으로 사온 볼펜을 두고도, `이것은 내가 사온 볼펜인데 유용하게 쓰기 바란다‘ 하면 성의의 선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아주 멋진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내 집도 아닌 주제에 남의 전셋집을 팔 수도 없고, 전세금이라도 빼서 좋은 것을 사오려 했는데, 그러면 각시가 이혼한다고 해서 이것밖에 준비 못했으니 미안하다’ 고 하면 아부성 발언이 될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도 평소에 항상 이런 식으로 농담을 하는 경우라면 좀더 세밀히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주로 전자의 경우에 속하는 행동으로, 결론만 이야기하여 내가 주는 선물이니 그렇게 알고 쓰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자칫하면 다른 사람은 좋은 것 주면서 자기는 싸구려 하나 주는 것 아니냐고 오해도 하고 기분 나빠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약간의 양념이 필요한 것인데, 양념이 많이 들어가면 음식의 제 맛을 모르고 건강도 해치게 되니 지나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얼마 전 TV와 영화에서 자신의 몸을 바쳐서 남편의 승진을 이끌어내고, 남편의 사업을 재기시킨 영화가 있었다. 그 후 당분간은 잘 지냈으나 불과 몇 년도 안되어 파탄을 맞고 말았다. 양념을 너무 많이 넣어서 잘 못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화학조미료 양념은 많이 넣으면 넣을수록 건강에 해롭다.  양념을 안 먹고살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본래의 배추나 무맛이 살아 있는 정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큰길에서 양손에 양념을 아주 많이 사들고 가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양로원이나 보육원 같은 곳,  무의탁 노인 무료 보호소 같은데 지원하러 가는 사람이기를 은근히 기대해 본다.   2002. 10.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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