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과 승진의 과정 / 한 호철
우리나라에서 사법고시 출신자는 매년 1,000명 정도가 늘어난다. 그러나 그중 200여 명이 판사나 검사에 임용되며, 800여 명은 자영업인 변호사를 개업하거나 기업의 자문 변호사로 가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매년 누적되어 이제 그 상황이 더욱 심각한 정도에 이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사법고시 출신이 일반기업에서 전문 분야가 아닌 특정사무를 보는 날도 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실제로 감사원에서 2002년도 5급 사무관에 4명의 변호사를 모집 공고했는데, 60명이 지원하여 15대1의 경쟁을 나타냈다. 산자부 5급 계약직 변호사 모집에서 3대1의 경쟁은 이제 아주 즐거운 경쟁시험이었다고 할 만 하다. 감사원의 2003년도 7급 공무원 공인회계사 모집에는 263명이 지원하여 44대1, 2002년도 6급에는 21대1의 경쟁을 한 적도 있다. 이것은 전문 인력들이 각계 각층에 고루 퍼져 있어 국민들은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좋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각기 맡아서 처리해야할 일들은 다르기 때문에, 적절한 업무에 적절한 인재를 배치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절대 필요한 사항이다. 최근 들어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는 이유는 사회구조 영향이 크다. 국가 금융환난이후에 축소경영을 기본으로 하는가 하면 1인 다기능, 1인 다업무, 소극적인 투자경영방침으로 일자리가 줄어든 데 많은 영향이 있다. 따라서 학력은 높더라도 정해진 일자리는 적어서 이른바 취업전쟁이라고 할만한 경쟁을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이유로 취업이 치열한 경우는 대학입시에 이어 취업마저 조건대비 하향 안정추세로 갈 수밖에 없다.
일반 대학출신 업무에 특정 전문가들이 찾아오게 되면서, 대졸자는 자연히 고졸자들의 업무영역에 침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힘들게 취업을 한 경우에도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예전처럼 만만한 것은 아니어서 승진이 또 다른 경쟁으로 기다린다. 확대경영에서 최근에 축소경영으로 들어선 지금은, 승진보다도 오히려 정년까지 근무가 가능할지가 다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공기업이나 공무원의 정년보다도 일반 사기업들의 정년은 더욱 낮아 주로 55세에서 58세에 정해져 있다. 그러나 이처럼 승진이 안 되는 승진 적체 즉 인사 적체시기가 되면서, 알게 모르게 정년 전 퇴직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조기 퇴직이나, 명예퇴직이라는 단어가 그 사실을 증명하는 예이다. 그래도 전에는 두각을 나타내는 사원이 앞서서 진급하였으나, 요즈음은 모든 사원들의 능력이 고르게 특출하다보니 어느 누구가 앞서서 진급한다는 것은 아예 어려운 일이고 보면, 보편적인 경쟁을 하여서 진급을 기대하기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에 비교할 만하다.
어느 관청에서 이러한 승진 결정에 특이한 방법을 채택한 적이 있다. 5급 사무관 승진대상자는 32명인데, 그중 10명을 선발하여야 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시도했다. 승진심사위원을 선출하는 것부터 무작위 추첨으로 25명을 선출하고, 그 심사위원이 32명을 심사하여 개별 평가점수를 작성한 것이다. 그 뒤 이 점수와 승진 대상자의 기본 요건점수를 합산하여 인사위원회에서 최종 확정짓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복잡하면서도 획기적인 방법들이 제시되는 것은 승진자 결정에 그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반증이다. 만약 승진에서 탈락되면 자신이 열심히 일했고, 능력이 있는데도 나의 능력이나 성과는 알아주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여 직장을 떠나는 경우까지도 이어진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 모두를 포용하기 위하여 승진을 확대하다보면, 직급인플레가 되어 조직의 부작용이 발생하게된다. 이런 저런 상황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승진에 괴로워하는 직장인들만큼이나, 경영자들도 타인의 승진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그러면 모든 직장인들이 같이 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이며, 이것은 세계 어느 국가 어느 기업이나를 막론하고 영원히 해결해야 될 과제인 것이다. 그런데 직장에서 직급이 없다면 승진도 필요 없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들며, 원하는 만큼 모든 직급을 주고, 업무는 직책에 따라 행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모든 것들은 상상일 뿐 어느 것 하나 정답이 없고,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의 장단점은 있게 마련이다. 그중 최소의 문제를 가진 방법은 주변 여건과 사회의 문화, 기업의 문화에 맞는 독특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모든 주변 문화가 직급이 없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면 그에 맞는 방식이 요구되며, 군대 조직과 같은 직급체계 우선 문화권은 역시 승진이 중요한 목표가 된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욕구를 상쇄하더라도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주 중요한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최근 들어 일은 생활의 일부이고, 직장은 그 일을 모여서 수행하는 장소일 뿐이라는 넓은 마음의 노동 신성화가 확산되는 것도 그 이유이다. 일하면서 즐거움을 찾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면, 직급이나 급료에 앞서, 직장을 중요시한다는 이론이다. 그러기 위하여 직장은 즐거움을 찾는 곳이 되도록 하는 것이 경영자들의 몫이다. 버크셔헤서웨이라는 회사는 38년 전 버핏이 설립한 이래, 단 한 명도 다른 직장으로 옮기기 위하여 퇴직한 임직원이 없다고 말한다. 이 숫자의 진위여부를 가리기 전에, 그 정도로 노력해 왔을 것이라는 것은 인정해 주고 싶다. 이런 직장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타 직장으로 옮기기 위하여는 성장에 대한 비전, 승진이나 급여, 복리후생 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근무할 만한 가치가 적어졌을 때 발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을 제공해주고 인재를 묶어두는 것은 경영의 궁극적 목표와도 일치한다. 직급 인플레가 일어나지 않으며, 기득권자의 직급에 의한 강압적 업무진행이 없어지면, 그나마 조금 빠른 시기에 승진 전쟁이 수그러들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2002.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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