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기러기의 속 뜻은

꿈꾸는 세상살이 2006. 6. 4. 18:37
 

기러기의 속뜻은 / 한 호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잉꼬부부는 부부간의 금실이 좋은 것을 비유하는 말인데,  이때 잉꼬는 새의 한 종이다.  그러나 이 잉꼬는 새장에서 한 쌍이 같이 살고 있을 때는 매우 다정하게 보이지만,  어느 한쪽이 죽거나 헤어지게 되면, 나머지 한쪽이 곧바로 새 짝을 찾고 다시 만난 새로운 짝과 매우 다정스럽게 산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잉꼬부부인 경우  헤어지게 되면 그만이고,  곧바로 새로운 반쪽을 찾아 나서는 것은 역시 잉꼬를 닮은 것 같다.

 그런 것을 알면 지금까지 우리가 사랑하던 잉꼬에 대한 배신감이 들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풍습 중에 신랑 신부가 결혼식에서 들고 가는 새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잉꼬가 아닌 기러기다. 기러기는 무리를 지어 사는 새이면서,  장거리 여행을 하는 고달픈 철새이다.  그러면서 대장이 따로 없어도, 앞장서 가는 기러기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날아가는 모습이 충성스럽고 잘 훈련된 병사들과 같다.  이때 앞장선 기러기가 맞바람을 맞아 힘에 겨워지면 다시 뒤로 가고,  또 다시 힘센 기러기가 앞장서서 무리를 이끌고 간다.  이들이 날아가는 모형은 공기저항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한 대형이다.  여기에 앞장선 새는 자신을 희생하고 무리를 이끄는 숭고한 정신이 있다.

 우리 선조 옛 신랑들이 기러기를 들고 초례청에 들어선 것 역시,  그 순간부터 기러기처럼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그마한 무리, 즉 가족을 위해 평안한 삶을 이끌어갈 책임이 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거기에 하나 더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기러기들의 평생동안 철저한 1부 1처제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미물 새 한 마리도 일부일처제를 철저히 행하며,  무리를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은 우리 인간이 본 받아 마땅하다.

 꼬마신랑이 기러기의 숭고한 뜻을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이 시간이후 평생을 기러기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맹세의 표시로 보면 충분할 것이다.  물론 부모님이 시켜서 그랬든지,  아니면 풍습이 그래서 그냥 해보았다든지는 상관없다.  앞으로 이와 같은 마음으로 살겠다는 각오가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이혼인구가 급증하면서 매년 결혼하는 가정수의 1/4이 이혼한다고 한다.  이것은 단적으로 이혼율 증가가 세계최고이며,  우리나라의 이혼에 대한 개념은 잘못된 문화중의 하나를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성에 대한 인식 또한 너무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는 듯하여 가치관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히히덕거리며 같이 있는 순간을 논할 때는 잉꼬가 적합한지 모르지만,  이제 진정한 가정생활을 위해서는 기러기를 이야기하는 것이 맞겠다. 떨어져있거나  병들어 아프거나를 따지지 않으며,  한 눈 팔지 않고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서, 서로 아끼며 살아가는 기러기 부부가 되어야 할 것으로 안다.

 요즈음 유행하는 기러기 아빠라는 단어는 이것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이 세대의 기러기 아빠들은 아내와 자식들을 외국에 보내 놓고,  혼자 고국에 남아 살아가는 지리적인 외로운 철새를 말한다.   이때 기러기 아빠는 아이들의 유학 교육비를 보내주어야 하고,  아이들이 혼자 살아갈 형편이 안되기 때문에 아내를 동행시켜 내보낸 경우이다.  그러다 보니 교육비와 생활비는 외국에 나가 있는 많은 식구 쪽의 비중이 훨씬 크고,  자신은 돈을 벌어서 보내 주어야 하는 돈 버는 가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기러기 아빠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느끼게 되고,  그러면서 집을 팔아 전세로 간다든지,  더 작은 평수의 월세로 내려앉게 되는 것이 순서이다.  그리고 남는 것은 육체적 질병과 가족에 대한 향수, 정신적 스트레스, 인생에 대한 회한들이다.  이것은 육체적인 기러기 아빠의 모습이며,  진정한 의미의 정신적 기러기 모습은 아니다.  기러기가 자신을 희생하여 무리를 돕는 것은 같은 내용이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서로 위로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다.

기러기 아빠라는 단어가 생겨 날때는 역시 가장 적합한 단어였다고 생각했었겠지만, 혹시나 잘못된 가치관으로 기러기를 욕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2003. 0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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