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기죽이는 것 / 한 호철
우리 집 아들녀석이 어렸을 때, 울면서 시장을 돌아다닌 날이 많았다.
아파트 단지 담밖에 재래시장이 있어서, 주로 애 엄마하고 같이 시장을 다녔는데, 울지 않을 때 보다 울고 다닐 때가 더 많았다.
그 당시 많지 않은 식구인데다 아이들은 어리고, 나는 아침에 나가면 밤에야 들어오니 매일매일 먹는 음식의 양은 아주 소량이었다. 조금만 많이 준비해도 좀처럼 음식이 줄지를 않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시장에 가서 아주 조금씩 재료를 사 나르는 쇼핑의 재미도 있었나 보다. 물론 그렇게 하면 음식이 남아서 버리는 경우가 훨씬 줄어들어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가 컸다. 거기다가 운동 삼아 아이들을 대동하고 다니는 것이 일과가 되어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었다.
그런 아들은 시장의 2층을 유난히 좋아했다. 계단이 가파르기에 위험하기도 했었지만 굳이 2층에 올라가기를 좋아한 것은, 그 곳은 시장에서 딱 한 군데 어린이 장난감 가게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에 접어들면서부터 2층으로 가자는 아이와, 다리 아프게 살 것도 없는 2층에는 무엇하러 올라가느냐는 애 엄마의 시비가 시작된다. 그러면 아이는 2층에 장난감 가게가 있고, 그곳에 가면 보기만 해도 좋은데 어찌 무심하게 비껴 가느냐는 투다. 그렇다고 넉넉하지 못한 가계에 갖고 싶은 것 다 사주고, 가지고 싶은 것 다 들려 놀게 할 형편이 아니었다. 그러면 절대로 사달라고 하지 않기로 협상이 이루어져 가서 보기만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곤 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굳은 결심은 채 10분도 넘기지 못하는데, 정작 가게 앞에 서면 이 아이는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아예 주저앉아서 만져가며 구경하곤 했다. 그만 가자고 재촉하는 엄마한테 사 달라고 안 할 테니, 그만 보고 다른 데로 가자고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결국 갈 길이 바쁜 엄마는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고, 자그마한 것을 가끔씩 사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올 때까지 그런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콩나물을 살 때면 그 옆에 같이 쭈그리고 앉아서 이것저것 살피기도 했고, 함지박에 담긴 미꾸라지 옆에서는 제대로 눈길도 떼지 못했다.
그러다가 엄마를 흔들며 잔뜩 울먹일 때도 있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옆에 있는 아주머니한테 혼났다는 것이었다. 내용을 들어보면 이러했다. 아들 녀석이 옆에서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또래 아이에게, 가게에 쌓인 물건을 그렇게 만지작거리면 떨어져서 못쓰게 된다며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특히 유리 제품이나 사기 그릇 제품이 깨지면, 그릇을 만진 사람이 다치는 것인데 그것도 모르는 채 이것저것 뒤적이고 만지기에, 그것은 위험한 일이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고 말했단다.
그러나 상대 아이도 그런 정도에 그칠 것 같았으면 처음부터 만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아이는 자기 엄마한테 이르고, 그 애 엄마는 어디서 처음 보는 녀석이 자기 집 아이를 교육시킨다고, 오히려 우리 집 아이를 나무랐었나보다. 이쯤 되면 옛말 그대로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구나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 아이가 물건을 만지작거리다가 잘못되어, 애 엄마가 물건값을 치른 적은 기억에 없다. 요즘 아이들처럼 콩나물 한 움큼을 빼 놓거나, 두부에 손자국으로 못쓰게 만들어서 가게주인과 싸워 본 적이 없다. 유리병이 깨져도 물건값을 물어주면 될 것 가지고 그까짓거 얼마나 된다고 왜 애들 기죽이냐고 싸워 본 적이 없다.
남들 다 하는 거 못해보고 자라 난 우리 아이가 바보인지, 우리 애가 다 아는 것도 모르면서 천방지축 날뛰는 그 애가 모자란 것인지 모르겠다. 그 또래의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배우는 바른 생활 책에는, 분명히 후자가 잘 못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 반대로 행동하고, 일부의 엄마들은 아예 반대로 교육을 시키기도 한다. 그러면 일본 중학교의 왜곡된 역사교과서가 잘못 된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교과서가 잘못된 것일까?
아이들은 아이들다워야 하므로 실수도하고, 잘못도 하고, 다치기도 해야 된다고 말들 하지만, 그렇다고 제과점 케익에 모래를 뿌리는 것도 실수라고 해야 할까 의문이 간다. 초등학생이 횡단보도도 아닌 곳에서, 차가 달려오는데도 유유히 걸어가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을 보면, 지금의 나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것은 우리 기성세대들이 잘 못 가르친 원인이 있겠지만, 먼저 그 부모를 연상케된다.
만약 후자와 같은 아이들이 자라서 위정자가 되고 지도자층에 선다면, 이 나라는 반드시 잘 못 가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경쟁심을 넘어서서 질투와 시기와 이기주의가 가득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이기주의 집단이 되고, 각각을 모으는 협동이라는 것은 항상 어느 누구를 이용해서 얻으려 하는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 어른들은 애들 기죽이는 것과, 바른 생활이 다른 차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2002. 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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