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도 사람인가.
전부터 들어 알고 있던 통상 속담에 예술가는 튀어야 한다고 하는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 예술가는 일반인과 다른 예술 분야의 전문가니까 조금 별나야 한다는 말이라면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예술가가 튀어야하는 이유가 업무가 다르고 일이 달라서가 아니고, 그냥 다른 사람과 구별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굳이 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라면 파이프 담배를 물고 머리에는 둥그런 호떡과 같은 모자를 얹어놓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며, 음악을 하는 예술가라면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옷도 축축 처지는 것이나 바닥에 끌리는 정도의 옷이 떠오른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매일 술에 취해 있으며, 환기도 안 되는 방에 휴지 부스러기가 널려있는 지저분한 모습이 생각난다.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일 것이다. 그러나 예전의 예술가들이 바로 이런 모습들을 보여주었기에 아마도 그런 인식으로 굳어진 것은 아닌지 뒤돌아보게도 한다.
하지만 요즘의 예술가들은 많이 바뀌어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자신만의 공간과 자신만의 성격을 고집하는 경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자신이 혼자 누리고 싶은 어떤 안정 욕구의 표현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것은 누구에게도 간섭받고 싶지 않은 심정의 표현일 것이다. 또는 어떤 일에 혼자서 몰두하고 싶다든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면서 더 심도있는 관찰을 하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거기에는 남에게 지시받고 시키는 대로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술가들이 가지는 고유 특성이 아닌가 한다. 예술은 창작이어야 하기 때문에 남이 하라는 대로 한다든지 주어진 길을 따라서 가는 행동은 이미 그 범위를 벗어난 것이 되고 만다.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자신의 역량을 모두 쏟아 놓은 작품이 바로 예술작품이 되는 것이다. 비록 남이야 알아주거나 말거나 자신이 심취해서 탄생시킨 작품과 작가가 느끼는 만족감으로서의 작품이야 말로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지난 신문 칼럼에서 가슴 아픈 글을 하나 읽었다. 그림을 그리는 어느 예술가는 아침 일찍부터 하루의 작품 활동을 계획하고 준비를 한다고 하였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그리는 대로 모두 내 마음에 드는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의 혼이 담겨있고, 애정이 묻어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작 자신을 방문한 친지나 지인들에게서 화가는 붓을 잡고 색칠만 하면 모두 그림이 되는 것처럼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슬프다고 하였다. 그렇게 그리다보면 하루에 그림 한점씩, 혹은 하루에도 그림 두 점씩 그리게 될 것이고, 그러다보면 집안에 쌓이는 것은 그림뿐일 것이 아닌가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화가로부터 그림 한점 얻는 것은, 대체로 예전의 담배 한 개비 얻어 피우듯 쉽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러다보면 하고 많은 그림 중에 잘 못된 그림 하나쯤 주는 것이 뭐 그리 큰 부탁이냐는 반응을 불러 오게 된다.
하지만 화가 입장에서는 자신의 작품이 담배 한 개비에 비유될 그만큼의 가치밖에 없다는 비유에 다다르면 좋은 감정을 가질 수가 없다. 거기다가 한 술 더 뜬다면, 작품이 바로 나의 수입원인데 그렇게 낮은 가격을 책정하여 주는 손님을 좋게 생각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나마 그 가격마저도 지불하지 않고 거저 달라고 하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화가는 무엇을 먹고 살며, 물감은 무엇으로 사고, 그림은 무엇으로 그리라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생각할수록 슬픈 마음에 공감이 간다.
우리들은 평소 내가 잘 아는 화가로부터 그림 한 점을 얻을 때에도, 정당한 가격을 치르고 받는 습관을 가져야 하겠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얻고 싶을 정도로 작품성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제대도 된 가격을 책정하여 지불하도록 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솔직히 말 해보면 어떨까. 당신의 작품은 훌륭하여 작품성도 있어 보이고 가격도 상당히 높게 생각되지만, 그렇게 높은 가격으로는 나 같은 사람들이 사서 소장 할 수가 없는 그림의 떡이다. 나도 오래오래 보관하면서 볼 수 있도록 좀 편리를 봐주면 어떻겠는가 하고 말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많지는 않지만 책을 낸 적이 있는데 한 권의 출판비용이 서민으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책을 지인들에게 보내주다 보면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서운할 경우도 많이 있다.
경제적으로도 남부럽지 않고, 자신은 책에 관한한 너그럽다는 독서주의자가 아무런 언급이 없을 때에는 책의 종류에 회의를 느끼곤 한다. 경쟁사회에서 경제학이나 경영학, 또는 기술 분야가 아닌 문학관련 책들은 아예 책 축에 끼지도 못하는구나하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아니면 내가 쓴 책은 아직 문학으로 대접받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그도 저도 싫으면 차라리 철저한 상업주의적 오락관련 책을 선택하여야 나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살이 후배 양성은 최고의 거름이 칭찬이며 최고의 방법은 칭찬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며 더구나 사회 지도층에 있다고 하는 사람이 아무런 말이 없으면, 나의 마음역시 그림 한 점을 담배 나누어 피우듯 하는 화가의 마음과 같게 된다.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기 시작한다. 마치 ‘너의 그림도 돈 받고 파는 거니? 이런 그림을 돈 주고는 안 사겠다’ 하는 말을 듣는 것과 같다. 그러면서도 그림 한 점을 달라고 하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우리는 창작을 귀중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창작에 관한 것은 저작권이라고 하여 보호하여야 한다고 한다. 이렇듯 어렵게 탄생한 창작이 남의 손에서는 한낱 휴지에 불과했다는 것을 간파한 때에는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이 벌써 짓밟히고 난 다음이다.
그러고 나면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의 훌륭한 예술가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자라는 싹을 잘라 놓고는 가을에 되어도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이 몸까지 굽어 재목으로도 쓸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마구잡이로 불구덩이에 쳐 넣고, 이런 나무는 땔감으로 밖에 사용할 수 없다고 비웃을 것이다. 이런 증세들이 여기 저기 보이고 있다.
외국의 문학이나 경영 서적은 불티나게 팔리고, 기업에서도 그런 책들을 단체로 구입하여 강제고 읽히고 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역시 외국과 경쟁하려면 우리는 아직 터전이 마련되지 못했으니 앞으로 한참 더 많이 배워야한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 산업사회 구조상 경영에 관한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았고, 기반시설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과 경쟁하라고 하면 이기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그것도 심판의 잣대는 그들의 방식으로 하는데 말이다.
키우고 육성한 후에 경쟁을 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준비된 지원도 있어야 한다. 거기에는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심지도 않고 거둘 수는 없는 것이며, 뿌리지도 않고 수확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제 철마다 적절한 비료와 물을 주며 올 여름 같으면 에위니아처럼 거센 외풍도 막아 주어야 한다. 물론 해충도 잡아주어 쾌적한 환경도 만들어 주어야한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관심을 가져 주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그림 한 점을 값도 없이 달라고 하면서, 가지고 있는 많은 그림 중에서 하나쯤 나누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하면 그것이 바로 안 되는 말이다. 그 말속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현금을 화가에게 먼저 나누어주면 안 되겠느냐고 하는 그런 양면성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림을 그리고 있기는 하지만 화가도 사람이다. 어쩌다 팔리지도 않는 책을 쓰기는 하였지만 작가도 사람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예술가도 나와 같은,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인가 보다. 200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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