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익산! 3000년 세월의 흔적

서동과 선화가 만나는 날

꿈꾸는 세상살이 2006. 9. 14. 17:09

 

 

 

서동과 선화의 축제 열려

 

드라마 서동요 촬영장에 내린 눈

 

 

 

 

 

 

 

촬영현장의 일부

 

 

2006년 9월 28일부터 10월 1일까지 익산시 중앙체육공원에서 서동축제가 열린다. 서동축제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1400여 년 전 백제와 신라의 국경을 초월한 서동과 선화의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를 재현하는 축제이다.


자매도시인 익산에서는 서동왕자를, 경주에서는 선화공주를 선발하게 되며, 행사는 이들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2005년 9월 5일부터 2006년3월 21일까지 55회에 걸친 서울방송의 월화드라마 역사극 서동요에서 보았듯이, 두 사람의 사랑이 개인의 문제뿐 아니라 국가대 국가로서의 어떤 역할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서동요는 삼국유사 백제 무왕편에 나오는 설화에서 비롯된 민요형식의 향가이다. 당시 서동과 선화의 사랑이 어떠하였는지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아주  재치있고 깊이 있는 가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서동을 사귀어 두고, 서동을 밤에 몰래 만나로 간다.'    

   (善花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薯童房乙 也矣卯乙抱遣去如)

   선화공주주은 타밀여가양치고서동방을  야의란을포견거여


역사적으로 유추해보면 서동은 어머니와 함께 백제에서 마를 캐며 살아가는 가난한 소년이었다. 오막살이집에서 누더기 옷을 입고 주위의 냉대를 받으며 살아가는 형편이었지만 예의바르고 총명한 아이였다. 신라 26대 진평왕(재위 579~632)의 셋째 딸 선화가 아주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마를 한 포대 가득 캐어 신라로 간다.

경주에 도착한 서동은 당시 아이들에게 마를 주면서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도록 한다. 이 노래가 서동요이며, 점차 널리 퍼진 노래는 결국 신라 궁궐에까지 소문나고 말았다. 선화가 부정한 행실을 한 것으로 여긴 진평왕은 멀리 귀향을 보낸다. 혹은 사실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그런 소문이 난 것에 대해 용서할 수 없다는 왕실의 체통을 위해서 내린 조치다.

선화는 귀향길에서 서동(580~641)을 만나게 되고 서로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백제로 돌아온 서동은 학문을 연마하고 신망도 얻었다. 백제의 29대 법왕(재위 599~600)이 죽은 뒤 백성들에게서 추앙을 받아 제 30대 무왕(재위 600~641)으로 등극하게 된다.

백제는 무왕이 즉위한 후 정치를 잘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재임기간이 너무 길어 태평성대가 이어지자 위정자들과 백성들은 경각심이 없어지고 나태해졌는지 다음 왕인 31대 의자왕 때인 660년에 멸망하고 만다.  물론 의자왕도 신라와의 전쟁에서 계속 승리하는 등 여러 업적이 남아 있으나 결국에는 패왕이라는 멍에를 쓰고 말았다.


익산에는 지난 방송 때 촬영하였던 장소가 있으며, 무왕이 지었다는 미륵사지와 석탑이 남아있다. 전에도 거론되고 있었던 익산으로의 천도 역시 흔적들이 남아있다. 익산시 왕궁면에 가보면 왕실에서만 사용하던 부품들이 발견되고, 궁궐터나 기와 등 유물들이 산재해 있어 그 신빙성을 더해 주고 있다. 이러한 백제의 유산이 풍부한 익산이지만 그동안 부여나 공주에 비하면 문화재현, 보존 등 역사 교육의 가치 인정이 미흡하였다고 생각된다. 문화재적인 측면에서도 발굴이나 연구에 대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너무나도 빈약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서동요 관련 사진출처 : 익산시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