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붉은 달

꿈꾸는 세상살이 2006. 10. 18. 09:59

출근 길에 모퉁이를 돌아 나오다가 담 너머로 하늘을 보았다.

 

신호등 없는 삼거리는 차들이 별로 붐비지 않는 길이었다. 그 길가에는 무수히 많은 전봇대의 줄들이 엉켜있었다.  그 속에  커다란 달이 보인다. 어찌나 큰지 전기줄로도 다 막지 못하고 삐져 나와있었다.

 

어느 곳 하나 구겨지지 않은 둥근 달이다.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는 둥근 달이다.

추석때 보았던 그 보름달이다.

정월 대보름에 보았던 그 보름달이다.

내 마음 속에 숨어있던 달이다.

세상을 비추고도 남을 만큼 꽉 찬 둥근 달이다.

 

저 달은 아침부터 왜 나를 보고 웃는 것일까.

그럼 그렇지. 내 생각은 확고하다.

저 달은 아마 간뎅이가 부어있을 것이다.

어제 밤에 마실가다가 그만 길을 잃었을 것이다.

깜깜한 밤중에 여기저기 해메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전기줄에 걸렸을 것이다.

발버둥을 치고 활개도 쳐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둥근 몸은 어디 거칠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쳐 잠들었을 것이다. 

 
게으른 저 달은 오늘 아침 나에게 딱 걸린거다.
아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걸린거다.

태풍과 폭우도 헤쳐 나가던 저 달이 가느다란 줄에 걸린거다.

거침없던 저 달이 가냘픈 전기줄에 걸린거다.

 

날이 밝은 뒤에야 돌아 갈 생각을 하고 있다.
달이 이제 세수를 하고 있다.

흐트러진 머리엔 빗질도 하고 있다.

옷도 가다듬어 단장을 하고 있다.

잠시후 길을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이제사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음을 알았는지

그의 얼굴에는 부끄러움의 빛이 역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