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 코스모스 길을 다녀왔다.
그간 언제가 적기인지 때를 잘 맞추지 못했었는데 올해는 마음먹고 두 차례이상 방문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나섰다. 누군가 일찍 다녀 온 사람들 말에 의하면 코스모스 꽃이 피려면 아직 멀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우선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정확한 시기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사람은 같은 사물을 두고도 각자가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르기때문이다.
때는 바야흐로 9월 하고도 늦은 마지막 주.
매번 그리고 수시로 다니는 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근 시 지역으로 가는 것이니 마음을 먹어야 한다. 물론 매일 출퇴근하는 사람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우리처럼 일부러 가야하는 입장에서는 채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별다른 신고할 채비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집사람과 같이 갈 시간만 만들면 되는 것이다.
아내는 코스모스를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코스모스 구경가자고 하면 웬만한 일은 다 제쳐두고 앞장서 서두른다.
물론 이날도 오후에 있는 사회복지관의 요가를 빼먹고 가는 길이었다.
하긴 그 곳은 아내의 친정동네이니 더 앞장서는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꽃 구경을 한다해도 그때마다 친정집에 들르는 것은 아니라서 딱히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닌가보다.
하옇튼 남들 붐비지 않는 평일에 가는 구경은 그런데로 또 다른 맛이 있다.
출발지는 익산시 영등동. 국도 23호선을 타고 김제로 간다.
가는 동안 김제를 알리는 지점에 다다르면 벌써 코스모스 냄새가 난다.
코스모스 냄새는 하늘하늘이다. 간질간질이다. 꺽다리다. 가냘프다. 헤성해진 사이로 동네 개들이 지나다닌다.
그런데 정작 김제에 도착하면 이 냄새가 없어진다. 여기서부터는 코스모스 냄새가 강직한 메주콩 냄새로 변한다.
이 냄새에 의하면 코스모스는 키가 작다. 잎도 푸르다. 굵기도 튼실하다. 바람에 흔들리지도 않는다. 비어 있는 곳도 없이 촘촘하다. 그리고 모두 쌍둥이들이다.
김제시에서부터 지평선 축제가 열리는 부량면의 벽골제까지는 붕어빵 코스모스 일색이다. 언제 누가 어디서 이렇게 많은 빵을 찍어 놓았었는지 많기도 하다. 이것이 이른바 축제용 관광코스다. 다시 말하면 브이아이피 코스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정부지정 우수 지방문화축제에 2년 연속 선발되기도 하였다.
칭찬할 만하다.
김제시에서 지평선 축제장으로 가지 않고 죽산면방향으로 우회전을 하여 꺾어든다. 그러면 전원도시답게 바로 이어지는 것이 논이고 밭이다. 그런가하면 또 코스모스로 이어진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코스모스길은 그 끝이 어딘지 나도 잘 모른다.
다만 가다가 지치면 쉬어가고, 그러다보면 이제 더 이상 갈 수가 없는 바다가 나오고 그러면 그곳이 그냥 끝인줄 안다. 그러나 끝이다 싶으면 되돌아 온다.
그러나 이 길도 저길도 모두 꽃길이니 굳이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일 필요는 없다. 내가 택한 이 길은 김제에서 죽산면을 거쳐 백산면 광활면 진봉면에 이어지는데 가는데만 17km다.
혹시 다른 길을 선택하였다 하더라도 김제시내에서 부량면의 벽골제를 거쳐 죽산으로, 백산면, 광활면, 진봉면까지 가면 20km가 넘는 거리가 모두 코스모스 길이다.
요즘 꽃들이 모두 코스모스만 같다면 세상의 꽃들이 살만하다고 할 것이다.
모종할 자리의 돌을 치우고, 파 헤쳐서 공기도 넣어주고, 거름도 주어 미리 숙성도 시켜주고, 심어 놓은 다음에는 행여 마르지나 않을지 둘러보고, 바람만 불어도 넘어지지 않을까 줄로 묶어주고, 귀하신 몸 잡초에 치일까봐 김도 메어주고, 무더위에 지치지 말라고 보약도 주고, 가뭄에 열사병 걸리지 말라고 물도주고, 추석이 가까워진다고 이발도 시켜주고, 손님맞이 한다고 옷도 갈아입혀주고, 군인들이 오면 창피하다고 줄도 맞춰 정렬하고, 중간에 말도 없이 조퇴하고 간 녀석은 없는지 가끔씩 출석도 부른다. 몸이 아파 정 안되게 생겼으면 대리출석도 허용한다.
이 정도면 코스모스로 태어난것을 고맙게 생각하여야 한다. 어떤 녀석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꽃을 피워 화답한다. 그나마 게으르고 눈치없는 녀석은 아직도 한밤중이다.
어쩌다 매연을 뒤집어 쓰기도 하지만 그 정도야 참고 견뎌야 하지 않을까. 조금만 참으면 여러사람들이 보기 좋다고 같이 사진좀 찍으면 안되겠느냐고 할 텐데 그정도도 못 참는단 말인가.
이만하면 가히 사람보다 귀한 코스모스다.
아니면 코스모스 보다도 못한 것이 사람이든지...
그래도 이런 지자체서는 뒤에서 소외당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코스모스 대하기를 이렇게 떠 받드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어떨 것이랴....
한참을 가다보면 이제 드디어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누군가가 코스모스를 여지없이 베어버린 것이다. 사람이 드나드는 가게 앞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번화가 마을이 형성된 곳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나누어 지는 곳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주위는 온통 허허벌판이다.
이 사람은 역시 사람이 코스모스보다 귀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자기 논에 햇볕이 안 들어온다고 그깟 일로 코스모스를 베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리 믿는다.
매연이 좀 있어도 꽃들은 제 몸매 자랑하기에 바쁘다. 거기에 조금은 응해주어야 내년에 다시 피겠지?
차 뒤로 보면 마을에서도 꽃길은 이어지고 있다.
그러기에 코스모스가 키가 너무 크니까 매를 맞지.
일직선 꽃길의 끝이 잘 안보인다. 그래서 지평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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