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나의 주변 이야기

셋방살이가 베풀어야 세상이 돌아간다

꿈꾸는 세상살이 2006. 11. 17. 11:03

1982년도 지난 셋방살이를 하던 중에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당시 세를 들어 살던 사람이 전기요금 고지서나 수도요금 고지서를 본 적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대신 볼 수 있었던 것은 가구 총수와 가구별 총 인원수, 그리고 요금 고지서의 총액이 얼마였다는 것과 그래서 각 가구는 얼마씩 분할하여 납부하여야하니 빨리 주인 집으로 모아 내라는 것 뿐이었다.

 

그래도 그냥 그렇게들 내고 살았다. 훗날 집주인은 그렇게 그렇게 살아서 아주 큰 부자가 되었을지도 모른채 나는 이사를 하고 말았으니 더 이상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서글픈 기억은 몇 가지가 더 생생하게 남아있다.

 

집 주인 아주머니는 우리들 세를 들어 사는 사람들에게 가끔씩 찾아 와서 따뜻한 위로를 하고 몇마디씩 말도 붙여주곤 하였다. 올 때는 빈손이 아니고 어떤 것이 되었든 무엇인가를 들고 왔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일이 매일같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돌아 갈때도 그냥 가지 않고 반드시 무엇을 가지고 갔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몰래 훔쳐가는 것은 아니었고 이러저러하니 어떻다는 말과 함께 가지고 갔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지금 전을 부치다 왔는데 밀가루를 반죽해놓고 보니 마침 식용유가 떨어졌으니 좀 빌려 달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장에 가서 사다가 부치려니 그렇고 하니 새댁네 식용유를 좀 빌려주면 전을 먼저 부치고 나서 나중에 사다가 주겠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정말 그런 줄 알았다. 한참 뒤에는 정말 전을 부치는 중이었는지 밀가루을 반죽도 하지 않았는지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얻어 먹어 본 전은 없었으니 말이다. 나중에는 이 식용유 빌려가기 작전이 그냥 1년에 한 번이라야 그런가보다 할 것인데 대략 한 달에 한 번이니 문제라고 생각하였다. 그게 어디 식용유가 떨어진 것을 깜빡잊고 전을 부칠 생각을 하였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우리같이 세들어 사는 사람이 여섯가구였으니 계산기로 두드릴 정도는 아니지만 셈이 복잡해진다.

 

우리는 어느 날 큰 아이가 주인 집 마루에 혼자 기어 올라가 응가를 할때까지 살았다.

 

단 두 식구인 우리는 작은 식용유병 하나만 사와도 아주 오래오래 맛있게 아껴 가면서 먹을 것이다. 그러나 반 그릇이나 따라주고 나면 남는 것은 그 얼마나 될 것인가. 자기가 가져 온 그릇이 식용유 병과 비교하여 얼마나 큰 그릇인지 알기나 하는지 답답할 노릇이다. 자기 식구 기준으로 국그릇을 가지고와서 따라가는 배짱은 역시 수준급이었다.

 

혹시 우리 그릇에 담아 가기라도 하였으면 그릇을 찾으러 가서 슬쩍 떠 보기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이 아주머니는 자기가 가져 온 주발에 담아 갔으니 찾으러 갈 필요도 없어 갚으라고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언제 어떤 것을 얼마큼 빌려 갔다고 적어 놓을 수도 없고, 더구나 차용증을 받을 수도 없는 형편이니 참으로 섭섭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어쩌다 기회가 있어 갚으라고 말을 하기는 하지만 지금 시장에 가지 않았으니 다음에 시장 가면 반드시 사다가 주겠다는데는 더 이상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도 하루 걸러 한 번씩 가는 300미터 정도에 상설시장이 있었는데, 그 주인 아주머니는 왜 그리 시장에 가지 않았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일은 비단 식용유뿐이 아니었다. 시장에서 사다가 사용하는 가벼운 물품들은 대개가 그랬다. 또 다른 대상은 소금이었다. 달랑 두 식구가 사는 집에서 소금을 사다 놓고 먹으면 얼마나 있겠다고 우리한테 빌리러 올 생각을 하였을까. 단칸방에 세들어 사는 사람들은 우리 말고도 모두 단촐한 식구들인데 그들이 무엇을 얼마나 쌓아놓고 먹을 것이 있다고 빌리러 왔을까. 참으로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것도 모르는 사람이 세들어 산다고 했던 것이 상식이 없었던 사람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빌렸으면 갚을 생각은 하는지 안 하는지, 생각은 나는데 마침 돈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나중에 한꺼번에 갚을려고 그랬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간장은 왜 시장에서 팔아가지고 우리에게 빌리러 오게 하였을까. 조미료는 왜 시장에서 파는 것일까. 별의 별 물건들이 빌려져 가고, 갚는다고 말만 하고는 끝이었다.

우리는 가진 것이 없다고 하여도 말이 안된다. 마당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부엌은 소금이 어디에 있고, 식용유는 어떤 메이커이고, 어떤 크기의 통에서 현재는 얼마만큼 남아 있는지 다 들여다 보이는데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런 것들을 방에 숨겨 놓고 먹을 수도 없지 않은가. 안그래도 단칸 방인데 어디에 무엇을 두고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그때 빌려준 물품들을 다 돌려 받았다고 하여도 별반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아주 작은 물품으로도 서로의 마음에 상처가 될 수 있는 처지였기에 더욱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남에게 베풀며 산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옛날의 셋방살이가 당시 집 주인에게 베푸는 것은 어딘가 잘못 된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관행은 상당히 긴 역사 속에서 이어져 왔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약자의 자기 살기 위한 방편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소작인이 내년도의 소작을 위한 사전운동이었고, 피지배인이 지배인에 대한 계속적인 직업의 기회를 주기를 바란다는 사전운동이었다. 이런 때는 자신이 원해서 먼저 일을 만드는 경우였었다. 물론 이런 일을 만들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이 만든 필요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나라가 많이 나아져서 자신이 먼저 일을 만드는 경우는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도 어쩔 수 없이 일을 만들어야하는 경우는 지금도 종종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우선 이런 식으로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왜곡된 베품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진정한 베품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다음에 돌아 올 어떤 댓가를 바라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댓가를 바라는 것은 거래가 되어 결과를 원하는 것이므로 구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