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22일 금요일. 오늘이 동지다.
구내식당에서도 점심 시간에 덤으로 팥죽이 나왔다.
그런데 오늘은 음력으로 11월 3일이라서 애동지에 속한다. 영양사에게 말해서 오늘 같은 날은 기왕에 팥죽보다 떡을 먹으면 더 좋을 것이라고 하였더니, 동지에 팥죽을 먹는 것 아니냐고 한다. 대답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알고 하는 얘긴지 모르고 하는 얘긴지 언뜻 감이 안 온다. 오늘은 음력으로 초순에 해당되기 때문에 떡을 먹어야하는 것 아니냐고 돌려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대뜸 하는 말 애동지가 뭐냐고 묻는다. 하긴 그런 일에 대해서 누가 가르쳐준 적이 없었을 터이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하루종일 일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이런 저런 세상사 면담을 해주고 서둘러 퇴근하기로 하였다. 아파트 입구를 접어드는데 때 마침 연락이 왔다. 일찍 퇴근하여 가족끼리 팥죽을 먹자는 것이다. 가족이야 달랑 세 식구이니 같이 모이고 동짓날에 팥죽을 먹는 것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집에서 끓여 먹는 것도 아니고 사서 먹자고 하니 좀 의아스럽기는 하다.
지금껏 동짓날에 팥죽을 사서 먹기는 처음이다. 예전의 시골은 모두 다 각자가 쑤어 먹었으며, 그러고도 서로 바꾸어가며 나누어 먹던 그런 인심속에서 전혀 느껴보지 못한 삶의 한 단면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팥죽 한 그릇에 3,000원이나 하는 거금으로 겨우 속만 달랬다.
그런데 늦은 저녁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니 동지떡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애동지로 떡을 한 것이다. 아마도 팥죽도 끓이고 떡도 하고 그러는 것이 이중과세인듯도 하고 어쩌면 낭비인 것 같은 생각도 들어서 팥죽은 사서 먹기로 했었나보다. 세상에! 이런 속 깊은 뜻이 있었을 줄이야.
시루떡은 집에서 찌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데 용케도 잘 쪄냈다. 요즘 나이 드신 분들도 떡집에 가서 쪄 오기가 일쑤인데 옛날 시루도없이 젊은? 아낙이 기술도 좋다. 보기야 매끈하고 반질반질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영양은 만점이다.
찌기는 그런대로 잘 쪘는데 자르려니 잘 안잘려진다. 이른바 찰떡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찜통 안에서 그냥저냥 칼질을 하였으나 맘에 들지 않아 별 수 없이 통째로 엎어버렸다. 시루째 엎는다든지 판을 엎는다든지 하는 말이 이런때 쓰는 말임을 처음 실행하여보았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던데 보기에는 영 아니다. 정말 그러고보니 먹기도 안좋다. 찰떡이라서 차지고, 찰기가 식은 부분은 굳어서 딱딱하다. 게다가 쑥까지 넣었더니 쑥 잎이 뾰족하게 나와서 마치 튀김처럼 날카롭다.
그래도 먹기만 하면 영양은 그만이다. 어디 그뿐이랴. 동지니 팥이 빠질 수 없고, 팥만 넣자니 서운하여 돔부도 넣었다. 보통 돔부에다가 집에 있는 굼벵이 돔부도 넣었고, 몸에 좋다는 검정 콩도 넣었다. 찹쌀도 그냥 찹쌀이 아니고 현미찹쌀이다. 자! 이정도면 가히 웰빙이 아닐까. 우리 세시풍속에 게다가 웰빙이라니! 역시 어울리는 맛이 느껴진다.
그러나 찰떡은 각종 재료를 준비하는 것보다 떡을 어떻게 익히느냐 하는 것이문제다. 우리가 해 낸 떡도 5층짜리 찰떡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아파트 5층까지 어떻게 하면 땅의 기운을 올라오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와 같은 이치다. 여기에는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바로 떡을 찌는 사람의 인내와 사랑이 필요하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판째로 뒤집어 엎어 놓은 떡을 썰어 봉지에 나눠 담았다. 물론 이떡은 우리 식구가 나누어 먹을 요량이다. 그러나 제블을 방문하시는 분들께는 그냥 나누어 드릴 생각이다. 값은 받지 않겠지만 조건은 있다.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시면 된다.
동지 파이팅!
메리 크리스마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보기에는 잘 안보이는데 사실은 5층 떡이다.
현미 찹쌀과 검정 콩, 돔부 두 종류, 팥 등이 들어갔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것은 올 봄에 내가 캔 쑥도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색이 푸른 빛이 돈다.
통째로 놓고 잘라보니 잘 안잘린다. 그래도 모든 재료는 국산이다. 직접 시골에서 가져 온 것들과 우리가 준비한 재료이며, 찌는 것도 기계가 아닌 수동 방법이었다.
할 수없이 판을 엎어놓고 다시 잘랐다.
아참!! 빼 먹어서는 안 되는 것. 찰떡을 찔때는 한줄을 넣고 익힌 다음, 다시 부재료를 넣고 한 줄의 주재료를 넣어 찌는 방식을 취한다. 이것이 익으면 다시 부재료를 넣고, 한 줄의 주재료를 넣어 익힌다. 이렇게 한줄찌기를 반복하여야 한다. 떡 한 시루를 한꺼번에 찌려면 찰떡은 실패하기가 백전백패다. 5층짜리 찰떡은 찌기만 5차례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명심하시길.
봉지에 담고보니 그리 많지는 않으나 그래도 나누어 먹을 만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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