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12월이 찾아왔다.
일부러 기다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막을 생각조차 없었던 중에 다시 찾아 온 12월이다. 항상 그랬듯이 이 시간이 되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우선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면서 뭔가가 다 되어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는 다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을 하게한다. 그것이 개인적인 일이든 아니면 가정사나 직장적인 일이든 상관없이 여러 가지 생각들에 싸이게 된다.
그런 중에 항상 느끼는 것은 과연 올해는 내가 하고자했던 계획을 잘 지켰는지 하는 반성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야 누구든 언제든 하는 것이니 뭐 별다르다고 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남보다 특별나게 준비해야하고 시행해야하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니 나도 그냥 평범한 그런 사람임에 틀림없다.
나에게는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우선 시험공부를 더 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나는 지금까지 12월이 되면 거의 모든 해에 걸쳐 시험을 치르는 고비를 맞았었다. 작년에도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남들이 갖는 1년의 마무리에 대한 생각보다는 시험이라는 발등의 불을 끄기에 항상 쪼달려 왔었다. 도대체 이 시험이 언제나 끝나려는지 기약도 없다. 내년에도 끝이 날지 자신이 없다. 이렇게 시험을 보고나야만 1년이 지나가는가 보다. 그렇다면 시험아 제발 빨리 좀 오너라. 한 9월쯤에 오면 안 되겠니?
또 마지막 달력을 남겨놓고는 빨리 내년도 달력을 얻어와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내년 1년의 계획을 세우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1년을 10분 살기로 축소시켜 예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바램은 항상 틀어져 왔었다. 단 한 번도 달력을 빨리 구해온 적은 없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가 달력이 모자라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일쑤였었다. 그리고는 남는 달력들을 모두 모아놓고 보니 넘쳐나서 버리기도 하는 그런 반복이었다. 올해도 아직 내년도 달력을 만져보지 못했다.
내년도 달력을 펼쳐가면서 춘삼월 꽃 나들이를 생각해 보는 것은 해마다 변함이 없다. 화창한 봄날, 찬기가 가신 어느 맑은 날에 조용히 꽃구경을 하려는 계획은 해마다 세웠건만 핑계아닌 핑계를 만들어 한 번도 지키지 못했다. 이런 마음을 부모님이 아시면 불효자식 중의 불효자식이라고 하실 것이다. 즈그들끼리는 편한대로 아무 때라도 쉽게 결정하고 떠나는 꽃구경이라고 하실 것인데, 아직도 떳떳하게 모시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사회의 체면을 위하여 직장의 체면을 위하여는 커다란 문제도 쉽게 결정하고 처리하면서도, 가정사 개인적인 일에는 항상 잠시 기다리다가 기회를 놓치고 지나 간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내년에는 나를 위한 일보다 가족이나 친지들을 위하여 더 많은 시간을 내 보자고 다짐했었지만, 막상 일에 부딪치면 우선순위가 명확하게 줄 서 있었다. 가족의 일보다 직장의 일이 우선이었고, 가족의 일보다 사회의 일이 우선이었다. 옆에 있는 사람이 힘들어 할 때 내가 위로해주지 못했고, 나를 필요로 할 때 내가 거기 있어 주지 못했었다. 해마다 되풀이되듯 내년에는 나를 찾기 전에 내가 먼저 다가간다고 다짐을 해본다. 많은 시간 중에 내년 1년 만이라도 그렇게 해보겠노라고 약속을 해보기도 한다.
내가 더 살면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겠다고 아웅다웅하면서 살 것인가. 이제 중천을 넘어 선 태양이니 내려가는 해에 가속도가 붙을 것도 자명하다. 내가 어려움을 당할 때면 생각나는, 사람들은 서로 베풀며 살아야하지 않을까 다짐했던 약속들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었다. 단지 올해 처음으로 약간의 시간을 만들어 실천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겨우 걸음마 단계이다. 그나마 올해부터 내가 직업적으로 시간을 조절할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 아니었으면 올해도 외상이 될 뻔 하였었다. 내 나이에 벌써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연로하신 분들을 생각하면 한 시가 바쁘다. 내가 베풀고 싶어도 그것을 받을 사람이 없으면 누구에게 베풀 수 있단 말인가. 배품은 할 수 있을 때 조건을 달지 말고 베풀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이처럼 내가 챙겨야 할 것들도 한없이 많다. 그런데 가장으로서 가족들의 문제를 챙겨야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항들을 살펴야 할지 어깨가 무겁다. 어디 그뿐인가. 부모의 자식으로서 섬겨야할 것들을 다 챙겨서 살펴본다면 내가 하여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많다고 하여 누가 덜어 줄 것도 아니고, 적다고 하여 그냥 설렁설렁 할 수 있는 일들도 아니니 이래저래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 해도 오는 시간을 누가 막을 수 있으며, 가는 세월을 누가 잡을 수 있으랴. 오로지 나만이 그것을 부딪쳐 해결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또 다시 시간은 다가오고 달력은 어느새 한 장만 남아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넘어가지 못한 11월의 달력이 나를 원망하듯이 쳐다보는 것 같다. 마치 자신은 열심히 살아 주었고, 모든 이에게 골고루 나눠 주면서 베풀고 살았었다고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편안히 쉬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다.
지난 11월의 달력을 넘기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12월은 왔다. 오라든지 마라든지 하는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내년도 찾아 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뭉그적거리다가 맞는 내년이나, 마당을 쓸고 기분 좋게 맞는 내년이나 정해진 시간에는 어김없이 찾아 올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내년을 기분 좋게 맞이하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어떻게 해야 기분 좋은 만남이 될 수 있을까. 청사초롱도 좋겠지만 그보다 더 우선할 것은 올해의 마무리일 것이다. 내년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하여 내년도의 조건을 다듬으면 좋을 듯하다. 주변의 환경을 그런 분위기로 만들어놓으면 나의 계획에도 쉽게 도달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오늘은 새로운 달력을 받아서 내년의 다짐을 표시해 보아야겠다. 그리고 내년 이때쯤에는 그 다짐의 그림들에 희망표 크레파스로 모두 잘했어요 라는 색칠이 되어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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