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익은 달콤한 것 맞지요?
단 둘인 종업원중의 한 명이 휴가를 냈다. 매주 토요일은 한 사람이 8시간 근무를 하고 교대로 한 사람은 휴무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마침 휴무일을 맞은 한 명이 부친 칠순을 맞아 고향을 가기로 한 날이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휴가라고 할 수도 없는 날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일이 바빠서 휴일을 맞은 사람도 특근을 하는 정도니, 구태여 말을 하자면 휴가를 얻었다고 말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요즘에 환갑잔치하는 사람이 없어졌듯이 칠순잔치도 많이 생략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도 가족끼리 모여 식사를 하는 것으로 칠순잔치를 대신한다고 하였다. 부모님이 보실 때 자식들이 흡족하게 성장한 것을 원하셔서 칠순잔치를 하기도 하고, 여러 사람이 즐거워하기 위하여 잔치를 하는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친지만 모여서 간단히 식사를 한다든지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거창하게 지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 돈 좀 들었겠다고 하는 말이 전부이고, 잔치를 생략하였다고 하더라도 돈이 없어 궁색하더라는 말을 하지는 않는 세상이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간단히 지냈다고 하여 연세가 갑자기 불어나는 것도 아니고, 없던 병이 들어 시름시름해지는 것도 아니니 당사자들의 마음먹기에 따라 결정할 일이다.
문제는 그 날 특근할 정도의 상황에서 한 사람이 빠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같이 즐거워해 주어야 할 날인만큼, 대신 내가 처리하면 될 것이라고 흔쾌히 승낙을 해 주었다. 그리고는 토요일에 계획되어 있던 일들을 가능한 금요일로 당겨서 처리하기로 하였다.
이제는 그 친구의 부친 칠순을 같이 축하해주는 일만 남았다. 그렇지만 내가 흡족하게 해줄 형편도 아니었는데, 본인도 그런 것을 하지 않겠다는 의도에서 간단히 치른다고 하니 일면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들었다.
회사에서 가까운 곳에 25층짜리가 20여 동 이상이나 있는 제법 큰 아파트 단지내 상가로 가서 케익을 하나 샀다. 그 곳에서 가장 크고 폼 나는 것으로 골라서 산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대형마트에 밀려 아파트 단지내 상가가 시들해졌는지, 케익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만 사는 아파트인지 형식적인 작은 것들 밖에 없었고, 그 중에서는 고른다고 골랐는데도 칠순 축하용으로는 왜소해보였다.
돈 봉투라도 쥐어 주면서 축하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달랑 케익을 건네주는 손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그냥 꾹 참았다. 그런데도 받는 사람은 이렇게까지 생각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이 말 한마디를 듣는 순간 전하는 마음도 한결 누그러졌다. 그래, 성의가 문제지 결코 돈의 액수가 문제는 아니라는 위안도 하면서 말이다.
저녁 8시가 넘어서 짧은 문자메시지 하나가 왔다. 아버님이 그 케익을 고맙게 받으셨다는 말이었다. 그 짧은 두 줄의 문장 속에는 멀리 80km 떨어진 어느 곳의 그림도 들어 있었다. 이제 막 촛불을 켠 케익을 둘러서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고, 그 중 어느 분이 반드시 고맙다는 말을 전하라고 말씀을 하고 계셨다.
그 순간 다른 곳에 가서라도 좀 더 크고 멋있는 것으로 골라서 보내줄 것을 잘못했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모를 것이다. 이 케익 값을 마련하기 위하여 며칠간 어떤 노력을 하였는지를. 그러나 나도 이 말은 영원히 전해주지 못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케익은 맛이 달콤하고 부드럽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06.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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