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가 인간 사열을?
아침 출근길의 동부시장 오거리는 다른데 보다 신호대기중 시간이 더 길다. 더군다나 이곳은 세 방향의 길이 고개를 올라와서 멈추는 언덕마루에 있는 교차점이라서 출발과 멈춤에는 각별히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얼마 후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앞의 차량이 출발할 생각을 안 한다. 요즘같이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운전자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꿈쩍을 안한다. 그러니 뒤에 있던 차량들이 난리를 내고 조급해하는 것은 당연할 일이었다. 신호가 바뀌기만을 기다리던 어떤 차량은 저 멀리서부터 방방거리며 성화다. 게다가 경사진 언덕길을 올라가야 할 차량들은 여기저기서 빵빵대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맨 앞 차량은 꿈쩍도 안하고 있을 뿐이다.
급기야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미는 운전자가 생겨나고 뭔가 금방이라도 벌어질 것만 같은 조짐이 인다. 나는 신호대기가 1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앞쪽에 있던 관계로 정황을 알 수 있었다. 차량 앞에서 조그만 강아지가 한 마리가 쫄랑거리며 건널목을 건너가고 있었다. 아니 걸음걸이로 보아 강아지는 아니고 원래 작은 종인 것 같다. 그 녀석은 주위 사방을 살펴가면서 하얀색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주변에는 길을 안내하는 주인도 없었고, 건너편 신호등에서 그 개를 부르는 사람도 없었다. 졸망졸망 걷는 걸음은 그래도 딴에 바쁘게 움직였고, 위험을 감지하려는 듯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긴 이런 일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잊어버릴 만하면 가끔씩 발생하는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아! 저 미물인 강아지도 횡단보도로 건너가는구나!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였다. 그것도 그어진 선 안으로만 지나가는데 뛰어가는 법도 없다.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주위를 살피며 걷는다. 물론 본능이기는 하겠지만 우리가 운전면허 시험공부 때 배운 그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당혹하게 만드는 이유다. 비록 한 발을 들고 겅중겅중 건너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고개를 흔들흔들하며 신호를 보내는 것은 흡사 고사리 손을 들고 건너는 초등학생 모습과 같다.
그러나 저 강아지 한 마리가 여러 사람의 바쁜 출근길을 막고 있는 것에는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것도 기다려야하는 빨간 신호등에서 건너고 있으니 말이다. 불법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고 교통을 방해하고 있다는 뉴스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어쩌면 사단장 한 사람이 수많은 군인들에게서 사열을 받고 있는 것처럼 늠름하게 행동하는 것에서 얄미운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길게 도열된 차량을 지나가자 그 개는 이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거기서부터는 재빨리 뛰어서 도망을 가버리고 만 것이다. 정말 배운 그대로 행동하는 놈이다.
또 다시 얄미운 생각이 든다. 이번에는 그 개 주인에 대한 원망이다. 개가 혼자서 아무데나 돌아다니게 가르친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기왕 횡단보도와 신호등을 동시에 가르쳐줄 일이지, 왜 편한 것만 가르쳤는지 따지고 싶다.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건너갈 때 같이 가라고 할 일이지, 제멋대로 건너가도 된다고 한 연유를 알고 싶다. 최고의 문명생활을 향유하는 현대인들에게 혈압이 올라가도록 하는 방법을 가르친 까닭을 묻고 싶다. 지금은 내가 가야 하는데 후다닥 나서서 먼저 머리만 끼어 밀면 된다고 가르친 사연도 듣고 싶다. 여러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나왔어도 신호등이나 후미진 곳에 영역표시를 해도 된다고 가르친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싶다.
혹시 어제 본 개를 찾는다는 플래카드가 개 주인을 찾는 것인데 잘못 쓴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아니면 오늘처럼 강아지 사열을 받는 사람들이 개와 동급이라는 말인가. 2006.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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