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17 일요일.
시험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시험은 끝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은 마침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해보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래서 중학교에 입학하고 그러니 방학동안에도 쉬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는 소리인줄 알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말의 뜻을 알 것만 같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당시에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지 않았는지 하는 원망성 발언도 해보게 된다.
올해를 끝으로 정말 시험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많지야 않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거의 모든 해마다 시험이라는 마술에 걸려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이래 계속되던 입시와 준비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는 첫 번째 직업군인 경쟁응시로부터 시작하여 전역 후 입사시험, 진급시험, 그리고 그를 대비하는 자격증 시험과 능력을 인증 받는 여러 종류의 시험들, 정말 수도 없이 많은 시험 속에서 부대끼며 지내왔었다.
어떤 시험은 한 번에 쉽게 통과하기도 하였지만, 어떤 시험은 여러 번의 실패를 겪은 후 통과하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그때마다 겪는 성취감과 좌절감은 시험에 대한 자신감 또는 강박관념으로 이어지기도하였다.
그래서 다 늦은 시험에의 도전은 몇 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망설이게 하기에 충분하였었다. 그러나 결국은 도전의 길을 선택하였고, 다시 시험에 대한 멍에를 쓰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하여 많은 시간과 노력을 가해야만 하였다.
나이 쉰이 넘은 상태로는 젊은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실감하였다.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공부하는 것은 기본이고, 가정의 대소사도 일부는 접어가면서까지 공부하였건만 항상 뒤쳐지는 것은 나였다. 그때마다 내가 뭘 어쩌겠다고 이제 와서 공부한다고 하였던가하는 후회도 하고, 공을 들인 만큼의 보상이 없을 때는 남모르게 실망도 많이 하였었다. 그러나 어쩌랴, 내가 못나고 내가 부족하여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주위의 탓으로 돌린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마다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모든 것을 참아가면서라도 공부를 계속하든지, 아니면 당장이라도 접어두든지 하는 두 갈래 중 택일이었다. 누가 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포기한다고 해도 말릴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기왕 시작한 것이니 일단 끝까지 가보고나서 판단하자는 선택이 우세하였다.
과정 과정마다 언급하기 부끄러운 부분들도 많이 있었지만, 정말 꾹 참고 열심히 했었다. 그리고 졸업이라는 또 하나의 목표는 이루었다. 하지만 이제 돌아서서 생각해보니 역시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오늘은 그 마지막이라는 시험을 보러가는 날이었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하여 일부러 평소보다도 한 시간이나 늦게 일어났다. 그래도 마음은 조급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시계는 5시를 넘어가는데 아직 세상은 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작년에는 눈 때문에 시험을 치르지 못한 학생들이 많이 있었는데 올해도 걱정이다.
그런데 시험 날에 왜 이리 많은 눈이 내리는 것일까. 혹시 어제까지의 생활은 눈 속에 모두 묻어두고, 내일부터는 새로운 생활을 하라는 신호는 아닌지 모르겠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지 동창생들은 벌써 뭔가 다른 일을 꾸며야 되지 않느냐고 모의를 하고 있다. 내가 다시 시험의 굴레를 쓰고 따라가야 할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도대체 이 시험의 끝은 어디인지 모두지 알 수가 없는 상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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