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적의 캐럴은 겨울철의 백미였었다. 크리스마스가 오기 한참 전부터 거리의 모든 음악들이 같은 곡만 들려주었다고 할 정도로 울리고 퍼져 나갔었다. 흰눈 사이로~~ 하는 음악은 흰 눈이 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하고, 흰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그냥 내 마음의 대변인양 반갑게 들리곤 하였다. 따지고 보면 흰 눈이 내리건 안 내리건,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흰눈 사이로~~ 는 변함없이 흰눈 사이로 일텐데 말이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에 흰 눈을 맞으며 서있는 종각과, 울려 퍼지는 캐럴송은 뭔가 흥겹고, 정겹고, 즐겁고, 축하할 일이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어느 해인가, 인천의 기온은 매서운 추위를 불러들이고, 흰 눈마저 내려 겨울의 절정을 실감하고 있었다. 모든 교회들이 각종 성탄행사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인천의 모 교회 어느 신자도 이브에 밤샘을 하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새벽송을 하여야하는 입장에서는 다반사였던 것이니 특별할 것도 없었다.
이 여자집사님도 평소에 열심히 믿는 신자였었고 새벽기도를 마치고 새벽송에 참석하였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끝낸 후 의식을 잃고 만 것이었다. 그 앞뒤 사정이야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결론은 그런 것이었다. 남편 역시 절실한 신자다. 내가 출장을 갔을 때, 여관이나 호텔대신 그 친구의 집에서 유했던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으니 어느 정도 속마음도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랬던 친구의 부인이 크리스마스에 운명을 달리했던 것이다. 다른 사고도 아니고 크리스마스 날에 벌어진 일이라 다들 말이 많았었다. 이른바 신은 죽었다느니, 헛 믿었다느니, 그냥 하기 쉬운 말들은 모두 한 마디씩 해댔다. 나는 위로의 말로 그래도 새벽기도도 마쳤고 새벽송까지 모두 마쳤으니 다행이 아니겠냐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자 그 친구는 한술 더 떴다. 평소에 병 기운이 있었으나 교인으로서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크리스마스 준비도 하였고, 새벽기도와 새벽송까지 다 끝마치고 갔으니 행복해 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어쩌면 미리알고 있었기에 굳이 나서서 봉사하더니 다 마치고는 편한 곳으로 간 것이 아니겠느냐고 까지 하였다. 독실한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나는 그냥 어렵게 생각해서 만들어 낸 위로의 말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자연스럽게 일상화된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구나하는 차이였다.
그날 인천의 한 교회는 성탄의 기쁨과, 한 교인의 죽음이 뒤섞인 성탄절이었다. 그 전날 흰 눈이 그렇게 내리더니 정작 크리스마스에는 내리지 않았다. 그래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캐럴을 부르며 화이트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캐럴은 기쁨을 알리는 음악이며, 기쁨을 나누는 음악이다. 그런가하면 캐럴은 슬픔을 위로하는 음악이며, 지친 자에게 위로를 주는 음악이다. 그 뒤로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흰 눈이 내리건 내리지 않건 흰눈 사이로~~는 변함이 없다.
요즘은 교회에서도 크리스마스트리가 적어졌고, 캐럴도 적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나 교인들의 인정이 메마르고 상업적으로 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흘러가는 문화의 한 현상 일뿐이다. 우리는 밝은 음악, 즐거운 음악, 경쾌한 음악으로 우리 사회를 밝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훗날 후세들이 판단할 때 조상들이 현명하였었다는 판단을 들을 수 있도록 좋은 문화를 창조, 계승하여 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당면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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