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교회로 가는 길

꿈꾸는 세상살이 2006. 12. 31. 15:52
 

교회로 가는 길

 

주섬주섬 챙기고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자 휭 하고 차가운 기운이  스며든다. 생각보다 춥지 않다고 주문을 위며 애써 정신을 가다듬는다. 바람이야 그다지 거칠게 불지 않지만 겨울의 한 중간에 서 있음을 실감한다. 아파트 단지 내의 가로등은 벌써 꺼져서 아침이 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주변은 어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린다. 이 좋은 아침에 다들 왜 이럴까. 오늘이 휴일이라서 그런가? 그러고 보니 다니는 사람마다 가방을 들었거나 아니면 두꺼운 책을 들고 있다.

 

어둠 속에서도 틀림없이 하루는 시작되고 있었다. 세상이 만만치 않다고 말하려는 듯이 코끝이 시리고 귀는 시리다 못해 아려온다.

 

2차선 도로를 건너 1차선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 여기에도 가로등은 꺼진지 벌써 오래다. 요즘에 새벽형인간이 유행이라지만 그런 것을 떠나서 오늘 하루를 더 여유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제 다시 담벽 사이의 골목길로 돌아선다. 이곳은 주위의 빛들이 쉽게 들어오지 않는 곳이다. 길이 구불구불하다보니 어둠이 오래토록 버티고 있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인지 이 골목은 아직도 가로등이 나의 갈 길을 훤하게 비추고 있다. 이 길은 나 혼자 걸어가면 딱 좋은 길이다. 누군가 옆에 서 있으면 어깨가 닿아 불편할 길이다. 나는 지금 이 좁은 골목을 걸어간다. 이 길은 인생의 뒤안길이다. 누군가 내 생을 같이 나눠지고 갈 수 없는 그런 길이다. 차들이 앞만 보고 쌩쌩 달리는 차가운 길도 아니고, 길옆으로 차를 세워두어도 주차위반 딱지를 떼지야 않지만 그러나 생존경쟁이 치열한 그런 길과도 다른 길이다.

 

골목길에 들어서자마자 개 짖는 소리가 나고 어디선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렇다 해도 시끄럽지 않으며 귀에 거슬리지 않는 그런 길이다. 항상 내가 젖어 사는 그런 삶이다. 자칫 한 눈을 팔면 담자락에 얼굴을 부딪쳐서 다치기 쉬우나 그래도 편안한 길이다. 한바탕 바람이 불다가도 여기 골목에 닿으면 그만 힘을 잃고 말아 순한 양이 되는 길이다. 낮은 담 너머로 밥 끓는 냄새도 넘어오고, 고구마를 찌는 냄새도 날아온다. 어떤 때는 생선을 굽다가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타는 냄새가 나기도 한다. 어쩌면 여러 집에 나누어줄 생선이 모자라서 냄새로라도 나누려 하는 의도인지 모르겠다.

 

길바닥에 물이 흘러 얼어있다. 누구네 집에서 나온 물인지도 모른다. 신발은 그 얼음길 위에서 쩍쩍 소리를 내면서 완전 기가 죽어있다. 한낮 같았으면 동네 꼬마들이 썰매를 탄다고 몰려다닐 길이다. 이 길은 아무리 좁아도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어른들에게는 대피처가 된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길에는 골목 어귀에서 벌써 가족의 따뜻한 정을 느끼는 길이다. 술래가 뒤쫓아 와도 꾸뻑 고개를 숙이며 큰소리로 인사를 하고 내달리는 길이다. 때로는 넘어져서 무릎이 까져도, 옷이 헤지고 피가 흘러도 일어나 그냥 웃는 그런 길이다. 골목길은 평화를 품고, 안정을 키우는 길이다. 그러기에 여기서 분주한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길이다.

 

이 길 밖에 교회가 있다. 교회로 가는 길은 골목길과 연결되어 있었다. 골목의 어두운 길을 지나야 교회로 갈 수 있다. 교회에 가는 사람들은 밝고 평화로운 사람들이 아니라, 힘들고 고달픈 사람들이다. 교회는 의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서 있는 것이다.

 

교회에 도착하니 이제는 불을 켜지 않아도 사람을 알아 볼만하다. 현세의 고통과 자신의 욕망으로 힘들어하던 사람들이 골목길을 나서니 모두 밝은 얼굴로 바뀌고 있다. 짐지고 수고스러운 자들아 모두 내게로 오라하신 말씀이 맞는 것 같은 느낌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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