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아이들

딸아이가 만든 야채 피자를 먹으며

꿈꾸는 세상살이 2007. 1. 1. 14:30

아파트표 야채피자


오전 11시가 되니 주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도마에서 칼이 움직이는 소리도 나고,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환기가 되라고 살짝 열어 놓은 문틈사이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딸아이의 모습도 보인다. 간혹 냉장고의 문이 열리면서 시야를 가리기도 한다. 하는 양으로 보아 아마도 자기가 먹을 점심메뉴를 직접 고른 모양이다.

 

요사이 딸아이는 직접 요리를 해 먹는 경우가 늘었다. 물론 여러 가지가 복합된 어려운 음식은 아니고, 간단한 두부절임이라든지 묵무침이라든지 비빔밥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음식의 재료는 물론 애 엄마가 시장에서 구해 놓은 것들이지만, 이것을 자기가 먹고 싶을 때 바로바로 해주지 않는다고 직접 해먹는 기회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 정식으로 배운 것도 아니니 재료를 배합하는 순서나 비율이 정확할리 없지만, 그래도 대충 흉내는 내는 것이 대견스러워 맛있게 먹는다. 그런데 오늘은 무엇을 하려는지 조리대가 가득하다. 양파도 썰고, 브로콜리도 썰고, 찐 고구마까지 챙긴다. 냉동실에서 오징어를 꺼내어 다리만 자르더니 그것도 잘게 썰어 놓는다. 이것저것 준비하다보니 어수선하여 보고 있는 나의 머리가 복잡하다. 내 생각으로는 짐작이 되지 않아 물어볼 수밖에 없다. 피자를 만드는 중이란다.

 

 

잠시 후에 밀가루를 반죽하여 도마에 깔고 넓게 편다. 조금 더 참고 있다가 이것만 보았어도 내가 알아맞힐 수 있었는데...

 

어느덧 오후 1시를 가리키는데, 이제는 넓게 차지한 반죽위에 여러 가지 재료를 놓으면 끝이다. 그사이 두 시간이 흘러버렸다. 피자 하나 만드는데 두 시간이나 걸리다니, 점심에 맛있는 피자를 먹기는 틀렸나보다. 할 수 없이 우선 간단한 점심을 챙겨 먹으면서 한마디 이른다. 그 피자가 익으면 나도 맛있게 먹기 위하여 지금 밥은 조금만 먹는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도 힐끗 딸애의 눈치를 살핀다. 만들 때는 거들어주지도 않으면서 먹는 것은 같이 먹는다고 한 것에 대한 반응을 보는데 그런대로 싫지 않은 눈치다. 자기가 만든 음식을 먹기 위하여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만도 자랑스럽고 으쓱해지나 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물어보니 야채가 많이 들어갔다고 야채피자라고 하면 좋겠단다. 이쯤 되면 거들지 않아도 나누어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한 예약은 되어 있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물어보고 분위기를 띄운다. 피자에 고구마를 넣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는 둥,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이렇게 많이 골라 넣고 만든 피자도 없을 것이라는 둥, 위생적이고 값도 싸면서 양도 푸짐하고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피자는 역시 우리집표 피자밖에 없을 것이라는 둥 사설을 늘어놓았다.

 

작은 프라이팬에 놓은 밀가루 반죽위에 특별히 만든 양념을 넣고, 그 위에 정성으로 다듬은 재료를 놓았다. 그리고는 피자가루를 뿌린다. 밀가루 반죽 대신 쌀가루 반죽을 하였더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하는 생각도 든다. 밀가루는 차가운 음식이라고 먹지 않는 식구가 있기 때문이다.

 

 

 

시중에서 구입한 피자보다 쫄깃쫄깃한 맛이야 덜하지만, 밀가루와 재료의 혼합이 적절하기야 못하지만, 분위기야 덜 한 곳에서 먹고 있지만, 그래도 그런 것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을 그 무엇이 있다. 거기에는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내가 먹을 음식, 우리 식구가 먹을 음식을 만드는 손맛으로 이루어진 음식이니 그 무엇에 이보다 더 깊은 맛이 있으랴.

 

 

 

 

오늘 점심 후 특별 보너스로 설거지는 내가 하기로 미리 예약해 놓는다. 다른 사람이 찜하기 전에 선착순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