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나의 주변 이야기

어머니를 슬프게 하는 것들

꿈꾸는 세상살이 2007. 8. 4. 15:42

시골집에 가 보았다. 벌써 여러 해 전부터 어머니 혼자 살고 계신 집이다. 자주 가서 같이 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모셔다가 같이 살지도 못하고 항상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그러려니 하면서 그냥저냥 살아가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다 하고 살 수 없는 세상인 것은 누구나가 아는 바와 같고, 그 일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내 뜻대로 될 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때문이다.

 

마당에는 가꾸지 않은 화단에서 제멋대로 자란 화초 몇 종이 생을 다투어 살아가고 있었다. 시멘트로 발라 놓은 마당의 갈라진 틈사이로 뿌리를 내린 식물들이 모진 생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 줌도 안 되는 그 풀들을 모두 뽑아 버리고 싶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그대로 두었다. 

 

작년 겨울에는 화분의 선인장을 잘못 관리하여 모두 얼어죽은 사고가 발생하였다. 토방에 가지런히 줄 맞춰 놓고 비닐로 잘 덮어 두었는데 그만 얼어 죽고 말았다. 다른 해보다 덜 추웠던 작년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관리부재인 듯하다. 그 화분을 모두 들어내어 비우려다가 잠시 망설인 후 그대로 두었다.

 화분에서 말라죽은 털복숭이 선인장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잘 표시가 나지 않았다.

 

그런 후 벌써 하지도 지나고 초복 중복도 지나고 말았다. 새 봄이 오면 싹이 나기를 애타게 바라던 희망은 이 토방에 그대로  멈추어 있었다. 살며시 넘겨다보니 선인장 화분에는 물을 준 흔적이 없었다. 그래도 나 역시 선인장을 내다 버리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지붕에서 흘러 내린 추녀 물은 모았다가 화단에 뿌리고, 작은 화분에 물을 주시는 어머니로 보아서는 가시달린 선인장을 가장 미워하신다고 믿고 싶었다. 

 

이제 어머니께서는 동네 회관에도 안 가신다. 거기 가시면 여럿이 모여 재미있는 얘기도 나누시고, 서로 힘도 될 것이지만, 벌써 몇 해 전부터 안 가신다. 가끔씩 회관에 가셔서 같이 놀면서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일렀지만 듣지 않으셨다. 그런데 친구 어머님을 만나 들어보니 그분도 회관에 가지 않으신단다. 혹시 무슨 일로 싸우신 것은 아닌지 물어보았으나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신다.

 

알고보니 다른 뜻이 있었다. 회관에 가시면 그 중에서도 어른 대접을 받는데 그것은 그렇다치더라도 우선 몸을 이기지 못하니 눕고만 싶으시단다. 그런데 기력이 달리니 항상 누워서 젊은 사람들에게 이것 저것 시키고 대접만 받으려니 그것이 마음에 걸려 못가신단다. 마을 회관의 분위기를 깰 수가 없어서 안 가신 것이었다.

 

이제는 누구와 누구만 남고 모두 떠났다고 생각하셨단다. 그런데 알고보니 누구는 이 세상을 떠난지 벌써 몇해나 되었다고 한숨을 쉬신다. 당신보다 연세가 훨씬 많아서 그 분을 보고 마음의 의지를 하셨나보다. 그런데 그분이 가신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또 자신을 슬프게 만드나 보다. 마을 사람들은 좋은 일도 아니니 일부러 알려주지 않은 것이고, 작은 일이라도 기쁜일 즐거운 일로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베푼 것이었을 게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그것도 마음에 걸리시나보다. 그분이 돌아가셨으면 나도 가서 조의를 표하고 거기에 부의금도 전달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에 받은게 있는데 갚을 기회마저 주지 않았다는 것에 대하여 한가닥 짐을 더하게  되었다. 이 세상을 하직 하기 전에 이생에서 진 빚은 모두 갚고 떠나야하는데, 그런 사소한 빚마저 갚지 못하고 가게 될까봐 걱정이시다. 그러나 나는 다른 걱정이 앞선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나풀대던 가느다란 생의 끈이 끊어지는 느낌을 받지 않으셨나해서다.

 

담벽에 붙은 마지막 잎새가 실물이 아닌 가짜라는 것을 알고는 더욱 더 생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던 사람처럼,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바로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면 좋겠다. 그래야 이승에서 진 빚을 모두 갚고 떠나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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