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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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명 : 인도에 미치다
김영사. 2007년 4월 11일 초판 1쇄 발행.
저자 : 이옥순
숭실대학교 사학과 졸업. 인도 델리대학교에서 인도 역사공부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음. 현재 연세대 연구교수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는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여성적인 동양이 남성적인 서양을 만났을 때’. ‘위대한 영혼, 간디’.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식민지 조선의 희망과 절망, 인도’ 등이 있다.
개요 :
우리는 흔히 인도는 조용하고 아직도 미개척지가 많은 나라로 알고 있다. 정말 현재의 인도를 보면 어떠한 조건에서도 무력보다는 평화를 사랑하고, 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것을 더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예부터 인도는 풍부한 물적 자원과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풍족하고 부유한 생활을 하는 국가였었다. 따라서 많은 외부 국가들은 인도를 통하여 부를 �기도 하고, 인도의 사상을 통하여 삶을 돌아보기도 하였다.
일찍이 기원전 326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군대를 이끌고 침입하여 대전투 끝에 승리를 함으로서 인도의 수난은 시작되었다. 물론 그 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 없어 아쉬울 뿐이다. 자기들끼리 부족함을 모르고 살아가던 인도는, 좀더 나은 환경을 찾거나 좀 더 많은 부와 명예를 원하는 민족으로부터 항상 공격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988년 가즈니에서 정권을 잡은 마흐무드는 가즈니라는 왕조를 세우고, 인도를 침공하였다. 그는 27년간 재임동안에 무려 17차례나 공격하여, 글자 그대로 인도를 초토화 시키는 그야말로 전쟁의 역사를 쓰고 있었다.
가즈니가 망하고 몽골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에 다시 티무르는 인도를 공략하고 많은 자원을 빼앗았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인도는 부의 보고로 자원이 풍부하고 토양이 비옥하여 농업의 천국이었음을 알고 시작한 전쟁이었다. 1398년 12월부터 시작된 티무르의 인도공략은 1508년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인도는 많은 왕조가 버텨왔지만 외세에 눌려 나약하기 그지없었다. 티무르군대도 인도의 부와 명예를 빼앗기 위하여 부녀자를 납치하고, 재산과 가축을 약탈하고, 문화를 짓밟았으며 역사를 단절시켜 놓았다.
1498년 5월20일, 드디어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에 도착하게 된다. 그는 향신료와 보석, 비단을 실어 날랐다. 인도에서 가져간 제품은 유럽 전역에 중개무역이 되면서 포르투갈은 일약 부유국으로 발돋움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후추는 부의 상징이기도 하였고, 재산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였었다. 이들은 싼 값에 구입한 향신료를 무려 100배에 달하는 금액으로 팔기도 하여 그야말로 황금을 캐는 무역을 하였던 것이다.
1526년 바부르가 인도 델리지역의 술탄, 이브라힘을 정복하고 무굴제국을 세웠다. 무굴이라는 뜻은 페르시아어로서 몽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인도를 정복한 침략자들은 하나같이 금은보화와 향신료, 그리고 비단 등 각종 자원을 약탈하여 실어 나르기에 바빴다. 이렇게 많은 침략을 받고 정신을 가다듬을 겨를이 없는 가운데서도, 천혜의 조건을 가진 인도는 부에 대한 행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렇게 애써 이루어놓은 부를 다시 빼앗기고, 다시 이루었다싶으면 다시 빼앗기기를 반복한 것이 인도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1599년 12월 31일,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인도 공략에 나선다. 그간 포르투갈의 무역에 대한 부러움과, 또 다른 경쟁자 네델란드에 밀리고 있던 영국이 야심차게 출범시킨 회사가 바로 그것이다. 초기에는 원래 목적에 부합하듯 무역에만 신경을 썼으나, 결국에는 인도를 지배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인도에서 생산되는 수제 직물은 매우 정교하여 천년 동안이나 각광받는 물품으로 남기도 하였다. 영국은 이러한 면직물대신 자국의 맨체스타 제품을 판매하기 위하여 인도에서 직물을 짜던 유명 직공들의 손가락을 자르는 악행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무슨 조화인지 이렇게 평화를 전쟁으로 파괴하고, 무력으로 진압하며, 이루어놓은 부를 자국으로 약탈해 가던 침입자들의 말로는 한결같이 비참하였다. 이렇게 서양인들은 인도를 부의 지름길로 이용하였지만, 동쪽에 있던 국가들은 인도를 정신적 모태로 삼기도 하였다.
중국의 현장법사는 인도에서 얻어 간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하기도 하였고, 신라의 혜초는 불교의 성지인 인도를 방문하고, 불교의 참뜻을 깨우치고자 노력하였다. 이들은 하나같이 멀고 험한 길을 걸어서 나아갔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도를 닦는 구도자의 자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서양과 동양이 바라보는 인도는 부와 권력과 명예의 상징인 동시에, 삶을 논하고 인생을 사고하는 철학의 본 고장으로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불경과 진리에 대한 탐구는 바로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목마른 갈증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인도를 향한 욕망은 계속하여 이어져 왔던 것이다.
감상 :
같은 인도를 두고 서양과 동양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서로 달랐다. 서양인들은 인도의 물질적인 풍요와 경제적 가치를 판단하였으나, 동양인들은 인도가 가진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면을 중시 하였다. 인도가 전래부터 가지고 있던 신분제도에 의해, 일부 계층은 호사하며 일부 계층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등의 관습이 있었는데 이를 두고 인도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질서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국가에 대하여 물질적 가치든 정신적 가치든 자기가 필요한 부문을 중시하여 인도로 인도로 몰리는 것은 인도를 위함이 아니라 바로 침략자 자신을 위한 행동이었다.
최근에 들어 다시 인도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있다. 인도는 넓은 토지에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비옥한 토지로 식량을 공급하기도 한다. 한편 많은 인구가 있어 뛰어난 인재도 많으며, 그들은 언제든지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지금 각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인도로 가는 비단길을 찾아 모여 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기까지 인도는 무참히도 짓밟혔던 역사를 견뎌내고, 항상 자기의 본분을 잃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이, 그들은 세계를 향하여 물적으로 베풀고 영적으로 제공하는 역할을 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국가들이 인도에 미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인도가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인도로 가는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그 길이 비단길이든, 황금길이든, 각자가 원하는 바를 구하고자 나서고 있다. 그렇다면 인도는 그럴만한 충분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이 인도의 매력이다. 어리숙한 듯하면서도 평화를 사랑하고 무저항주의의 인도, 나누어주고 베풀면서도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인도, 육체는 배가 고파도 정신은 맑고 배부른 인도가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2007. 0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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